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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발견 한서라는 역사책 | 왕자들의 ‘버닝썬’, 그들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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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석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23 09:03 조회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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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숙

1. 버닝썬, 21세기 신종 아귀들

얼마전 ‘버닝썬’ 사건이 터졌다. 버닝썬이라는 클럽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이 시작이었다. 폭력사건의 가해자로 억울하게 몰린 이가 버닝썬의 그 끔찍하고 음침한 진실을 폭로한 것이다. 아이돌의 어마어마한 성공과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화려하고 스웩 넘치는 사생활! 그 뒤에 감추어진 술, 마약, 폭력, 강간, 성접대, 횡령, 돈세탁! 그리고 또 다른 아이돌들의 강간 동영상! 물론 돈과 권력의 유착도 빠지지 않았다. 

미투, 빚투, CEO들의 갑질 사건, 버닝썬의 대환장 대환락 난장 파티로 인해 대한민국은 연일 충격의 도가니였다. 사건들이 줄지어 터지고, 그 강도가 날로 더 세지는 바람에 경악을 넘어 사고 정지 상태에 이른 듯 멍할 뿐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사건들은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이 사건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돈과 성공을 향해 불타오르다, 돈과 성공을 거머쥐고는 술과 마약과 성이라는 쾌락을 향해 불타오르고, 여기에 더해 다른 이의 고통을 즐기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 쾌락을 위해 더 강력하고 더 강렬한 자극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모습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와 다를 바가 없다. 아귀는 탐욕이 심한 자가 사후에 다시 태어난 존재로, 먹으려 하면 그 먹을 것이 불타고 말아 영원히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름 끼치게 비슷하지 않은가. 자극적 쾌락은 불타오르는 즉시 사라진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쾌락의 불을 찾아 헤매는 신종 아귀들! 그러다 자신까지 불사지르고마는, 그야말로 버닝썬의 생명체! 21세기 버닝썬의 생명체들처럼 저 너머 지옥계의 아귀들도 배를 채우지 못하는 고통을 오히려 쾌락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까?             

쾌락을 위해 더 강력하고 더 강렬한 자극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모습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사건이 터지기 전, 하나라 걸임금이나 은나라 주임금의 잔혹한 정치와 주지육림(酒池肉林) 따위의 방탕한 행각은 야만 시대의 산물이라 여겼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 군주 시대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라 치부했던 것이다. 사실 특별한 시대, 특정 기질의 인간이 벌이는 행각으로 조금은 과장된 먼먼 옛날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책에 등장하는 이 이상한, 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끔찍한 행위들이 지금-여기 내 옆에서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사실 말하자면, 지금이야말로 예전보다 더한 주지육림의 시대 아닌가? 차이라면, 이 탐욕과 폭행이 일인 전제 군주가 아니라 다수에 의해 벌이진다는 것! 그러나 오늘의 사건으로 역사책의 그 끔찍한 사건들이 진실이었음을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가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극도의 쾌락으로 휘몰아치는가 따져볼 일이다. 

2. 한나라의 왕자들, 환락을 향한 질주

 『한서』를 읽다, 현대판 버닝썬과 같은 사건을 만났다. 최근 사건들의 종합판 같은 이야기를 『한서』에서 읽게 된 것이다. 하드코어 중의 하드코어요 19금의 이야기들. 엽기적 인간들의 비행으로 점철되어 있는 경제의 아들 14명과 그 후손들의 열전! 한나라 무제의 아버지 경제는 아들 14명을 두었다. 무제는 경제의 11번째 아들로 황제에 올랐고, 나머지 13명의 아들들은 제후왕으로 봉해졌다. 이들은 모두 태어나 보니 왕자로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상태였다. 제후왕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은 부여받지 못했지만 대신 넓은 영토와 재산을 하사받았다. 제후왕들은 나라를 다스릴 걱정도, 먹고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문제, 경제, 무제 시기의 한나라는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으므로, 제후왕들의 삶도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안락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이들은 일생을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경제의 넷째 아들 노공왕 유여는 별다른 일 없이 취미 생활에 치중했다. 궁궐과 정원을 꾸미고, 사냥개와 말을 기르고, 음악을 향유하며 일생을 보냈던 것이다. 그 아들 안왕 유광도 마찬가지였다. 수레와 말을 모으거나 음악을 즐기는 취미에 치중했는데, 말년에는 재물이 부족할까 걱정하여 절약을 외치며 인색하게 살다가 갔다고 한다.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재산이 풍족하면 집 늘리고 꾸미고, 값비싼 자동차 사들여 전시하고. 그러면서 돈 없다고 인색하게 굴고. 향락과 소비, 아니면 인색한 삶! 그래도 유여는 천만다행(?)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더구나 2세대인 유광에 이르러는 재물이 줄어들어 그 이상의 향락과 사치를 부리지 못해 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아 천수를 누렸으니, 천운을 타고났음에 틀림없다.  

경제의 다섯 번째 아들 강도 역왕 유비에서부터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유비는 오초칠국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이 있었다. 유비는 힘쓰기를 좋아하여 흉노 정벌에 나서겠다고 스스로를 천거했지만, 동생인 무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힘을 쓸 데가 없었던 유비는 궁궐을 크게 짓고, 사방의 호걸을 불러들이며, 교만과 사치를 심하게 부렸다. 시간과 힘과 재물이 넘쳐나는 리치맨들의 에너지장은 그 방향이 비슷한 것 같다. 집 짓고 넓히고 고치고. 그리고 사교에 치중하기. 안일과 교만, 사치와 방탕은 늘 연대한다. 

 
시간과 힘과 재물이 넘쳐나는 리치맨들의 에너지장은 그 방향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경제 후손들의 사치와 방탕은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강도 역왕 유비의 아들 유건은 쾌락의 끝을 향해 달렸다. 유건이 바로 한나라판 ‘버닝썬’의 주인공이다. 유건은 태자시절에 이미 아버지 역왕에게 바칠 여인을 먼저 차지한 뒤 그 여인의 아버지가 고발할까 두려워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포악무도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역왕이 죽어 장례도 치루기 전에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인들 10여 명과 간음하고, 여동생과의 근친상간을 자행하는 등 한계를 모르는 인간이었다. 금지된 선을 넘는 것에서 더 큰 괘락을 느끼는 엽기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유건의 엽기적 행각은 그칠 줄 몰랐다. 스너프 필름을 찍고 그것을 돌려보는 인간들의 심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죽어가는 고통을 즐겼으며 죄의식이라곤 느끼지 않았다. 여인 4명을 태우고 뱃놀이를 하면서 배를 밟아 이 여인들을 호수에 빠뜨리는데 이 중 두 여인은 익사한다. 또 바람이 몹시 불어 물살이 거센 날, 낭관 두 사람에게 조그만 배를 저어 가운데로 가게 했다. 이 두 사람은 물에 빠지고 마는데, 이 두 사람은 배를 잡고 살기 위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유건은 이들을 보며 크게 웃었고, 두 사람은 끝내 물에 빠져 죽고 만다.

흉측하지만, 유건의 하드코어 엽기 행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궁인이나 후궁이 잘못을 하면 바로 벌거벗겨 북을 치게 하였고 가끔은 나무에 올라가게 했는데 오래 벗겨둔 여인은 한 달이 지나야 옷을 입게 했다. 때로는 머리를 깎은 다음 목에 쇠태를 두른 뒤, 납 절굿공이로 방아를 찧게 하였는데, 규정에 안 따르면 바로 매질을 하거나 혹은 늑대를 풀어 물어뜯게 하고서, 유건은 구경을 하며 크게 웃거나 혹은 가두고 굶겨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이 모두 35명이었다. 또한 사람이 짐승과 교접하여 새끼를 낳게 하려고 궁녀를 벌거벗겨 손발로 기어다니게 하여 숫양이나 개와 교접하게 하였다.

온갖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의 극한에서 쾌락을 느끼는 유건은 구제불능의 싸이코임에 틀림없다. 쾌락의 고리에 갇힌 유건은 폭력과 살인 충동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다른 사람들을 그토록 잔혹하게 학대하고 죽인 자도 자신이 죽게 될까봐 너무나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유건은 죽지 않기 위해 황제를 저주하는 굿판을 벌이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불안한 마음에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에는 저자에서 처형당하는 최후를 맞이한다. 탐욕에 갇힌 이 어리석은 인간은 처형당할까 불안에 떨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돌아볼 줄 몰랐다.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멈추지 못하는 인간! 기가 막히지만, 이 질주의 끝은 죽음밖에 없다.

 

3. 살인마 광천왕과 그 왕후, 소유욕이 빚어낸 대참사

이번에는 경제의 10번째 아들 광천혜왕 유월의 손자 유거를 이야기할 차례다. 유월의 아들 유제가 병으로 죽자 광천국을 없애기로 했다가 무제는 형 유월을 생각하여 손자 유거를 광천왕으로 봉한다. 그런데 이 유거가 후궁 양성소신을 총애하면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후궁 양성소신은 유거가 병이 났을 때 정성을 다해 시중을 들어 유거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된다. 그러나 왕의 사랑은 변하는 법, 양성소신은 유거의 총애를 독점하려 했다. 유거가 다른 후궁을 총애하면 온갖 모함을 꾸며 그 후궁을 반드시 죽여버렸다. 양성소신의 모함도 문제지만, 양성소신의 말에 따라 후궁을 잔인하게 죽이는 유거도 문제였다. 양성소신은 왕후에 오른 뒤에도 모함과 살인을 멈추지 않았다. 유거와 양성소신의 행각은 읽기만 해도 스릴러물 이상으로 소름끼치게 무섭다. 

유거와 양성소신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너무나 잔혹했다. 옷을 벗겨 돌아가면서 때리게 하고,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온몸을 지졌다. 고통을 못 이겨 우물에 뛰어들어 죽으면, 시체를 끄집어 내어 음부에 말뚝을 박고 코와 입술을 자르고 혀를 잘라내었다. 이도 모자라 사지를 찢어서 큰 가마솥에 넣은 다음에 복숭아나무를 태운 재와 독약을 넣고 삶으면서 여러 궁녀들을 불러 구경하게 했다. 시신을 완전히 문드러지게 해서 귀신으로 나타날 수조차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 양성소신에게 죽임을 당한 후궁이 꿈에 귀신으로 나타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처리했던 것이다. 물론 양성소신은 그 후궁의 시신을 파내어 모두 태워버렸다. 얼마전 제주도에서 일어난 전남편 살인사건과 흡사한 데가 있다. 유거와 양성소신이 죽인 사람은 14명에 달했다. 이보다 더 참혹한 죽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유거와 양성소신은 극악하기 짝이 없었다.     

양성소신은 시신을 완전히 문드러지게 해서 귀신으로 나타날 수조차 없게 하였다

 양성소신은 그 많은 살인에도 후궁들을 용납하지 못했다. 유거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후궁들을 궁에 가두고, 큰 잔치가 아니면 왕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왕은 이들을 불쌍히 여겨 슬피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도, 양성소신의 뜻대로 후궁들을 처소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유거가 양성소신에게 미혹되어 그 말에 따랐지만 유거 또한 마찬가지로 막장 인간이기에 이런 끔찍한 일을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유거는 14,5세 때 역경을 배우면서 스승이 잘못을 바로잡아주며 타일러도 듣지 않았고, 장성해서는 간언하는 스승 부자를 미워하여 노비를 시켜 죽인 전력이 있었다. 같은 종류의 막장 인간들이 만들어낸 업장이라고밖에 달리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유거나 양성소신이나 환락과 방탕과 소유욕에 눈이 먼 인간들이라는 점에서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선제 때에 이르러 유거와 양성소신이 저지른 악행의 전말이 드러나, 유거는 자살하고 양성소신은 저자에서 처형당하게 된다. 또 한 번 말해야 하리라. 이 무시무시한 충동 또한 죽음이 아니고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 기막힌 건, 광천국의 이 황음무도한 행위 또한 이들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제가 유거의 형 유문을 광천왕으로 책봉했으나 2년 만에 죽고, 아들 유해양이 뒤를 이어 즉위하게 된다. 유해양에게 유건과 유거는 교훈이 되지 못했다. 유행양 또한 패망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유해양은 천장에 남녀가 나체로 교접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술자리에 친지들을 초대해 위를 쳐다보게 하고, 결혼한 여동생을 자신의 신하와 간음하게 하고, 일가 3인을 살인하는 등,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로 세상을 놀래켰다. 그 결과 폐위되었고 나라는 없어져 버렸다. 

이런 행위의 뒤끝은 뻔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멈추지 못하는 건 쾌락에의 충동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인가? 들키지 않을 거란 자신감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으로 최소한의 심성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상 초월의 일들을 벌인 것일까? 경제의 후손들은 뭐가 부족하여 이렇게 미쳐 돌아간 것일까?  

 

4. 악마는 풍요와 안정 속에 있다.

예전에 노 애공이 말했다는 ‘과인은 깊은 궁궐에서 태어나 부인들의 손에 자라면서 근심도 두려움도 알지 못했다.’는 이 말은 정말 사실일 것이다. 위기를 당하거나 멸망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연안(宴安;편안함)을 짐새의 독이라 생각했으며 덕행도 없이 부귀한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이 흥기한 이후 평제 때까지 제후의 왕은 수백 명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교만하고 음란하며 도덕을 따르지 못했다. 왜 그러했는가? 방자한 생활에 탐닉하였고 처한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들도 일상생활에 젖어 타락하는데 하물며 노 애공같은 사람이야! 다만 높은 덕과 재주를 가지고 탁월하여 다른 사람과 달랐던 사람이라면 하강 헌왕(유덕)만이 이에 가까웠을 것이다.

『한서』4권, 명문당, 230쪽

역사가 반고는 즉문즉설로 시원하게 진단을 내려준다. 경제의 후손들이 타락을 일삼아 멸망에 이른 이유는 편안했기 때문이며 덕행도 없이 부귀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애공의 고백에 의거하여 제후왕들의 문제를 짚어낸 것이다. 많은 제후왕들이 교만하고 음란한 이유는 여인들에 둘러싸여 그들의 완벽한 보살핌을 뱓으며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부유하고 안온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반고는 제후왕들이 타락한 원인을 제후 한 사람의 문제로 돌리지 않았다. 궁실의 환경을 가장 큰 문제로 본 것이다. 경제와 무제 때 한나라는 성장의 최고치를 달리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이 만물을 성숙시키며 열매를 맺어가는 시기, 그 혜택을 온전히 누렸던 왕자들은 오히려 삶이 너무나 평안하고 평화로워서 상상불가의 역대급 사고를 치며 자기 명을 재촉했던 것이다. 한나라 초기, 선조들이 천하의 양생을 위해 실천했던 청정하고 검소하며 절제하는 삶의 비전은 성장과 풍요와 함께 후손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반고의 진단에 의지하면, 가장 풍요롭고 평안한 생활을 구가하는 오늘날, 상상 불가의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이유 또한 이 안정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고의 말대로 제후왕들이 위기를 원하고 멸망을 원해서 그런 엽기적 행각을 벌인 것은 아닐 터. 무료하고 권태롭고 공허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져 애쓸 필요도 없고, 보고 배운 것은 환관과 궁녀들의 습속 뿐, 에너지를 어디로 전화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궁궐 안에서 안전하고 안락하게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비전과 이치를 깨칠 필요도, 의욕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반고의 말대로 제후왕들이 그런 엽기적 행각을 벌인 것은 무료하고 권태롭고 공허하기 때문이었다.

안전하고 안락하지만 권태롭고 무료한 생활. 모든 걸 다 가진 제후왕들은 한마디로 이 심심함을 견딜 수 없었다. 딱히 비전도 의욕도 일도 없을 때 제후왕들이 에너지를 쏟을 데는 감각적 쾌락과 성욕 말고 다른 것은 있지 않았다. 쾌락에 물든 신체는 더 큰 쾌락과 더 쎈 자극을 원했다. 그 자극이 위험한지 멸망에 이르는 것인지 두려움도 가지지 않았다. 궁궐에는 왕을 감싸고 돌보는 사람들뿐이므로 오만방자한 마음으로 사람들과 교감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의 환락에만 집중하여 닫힌 신체로 살았기에 끝내는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른 채 죽었던 것이다. 이들은 최후의 순간에도 무지했다. 탐진치(貪瞋癡)의 고통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니 선현의 말씀대로 “편안함이 짐새의 독이요, 덕행없는 부귀가 불행”인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은 옛날 제후왕들이 누린 것보다 더한 풍요와 안락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생의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 버닝썬의 그들처럼 우리들은, 재물과 미모와 명성을 있는 대로 다 가지려 욕심을 부리고, 그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과 권태로움을 어찌하지 못해 온갖 자극적인 쾌락에 자기 전부를 던진 채 위태롭게 달려가고 있다. 온갖 엽기적인 사건의 그들처럼 우리들은, 사람을 한낱 장난감처럼 여기며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그것이 위기인지 멸망인지조차 생각지 않은 마비된 신체와 영혼이 되어 좀비처럼 떠돌고 있다. 악마는 부족함과 결핍에 있지 않다. 악마는 풍요와 안락에 있다. 한나라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관건은 생의 에너지를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그 방향을 찾아, 훈련하고 또 훈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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