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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홍루몽의 페이지들 | n개의 음과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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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석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16 09:31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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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희 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루쉰이 이미 말했다. 경학가들은 책에서 역경의 원리를 보고도학가들은 책에서 음란함을 보고재자가인들은 책에서 애정의 얽힘을 보고혁명가들은 책에서 만족(滿族)에 대한 배척을 보고이야기 지어내는 사람은 책에서 궁중비사를 본다고. 이는 『홍루몽』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말은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다. 우선, 각자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반면, 무엇을 찾으려고 하든지 간에 홍루몽은 누구에게나 훌륭한 텍스트가 된다고도 읽을 수 있다. 홍루몽을 직접 읽기 전이라면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 문장은, 홍루몽을 읽고 나면 후자로 읽을 수밖에 없다.

   홍루몽은 다양체다. 물론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처럼 어느 고원부터 시작해도 무방한 것은 아니다. 긴긴 장편소설을 중간부터 읽어서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즉 루쉰이 말한 것처럼 어떤 주제로 접근해도 홍루몽은 각각의 문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홍루몽을 다양체로 여긴다.

   하나의 문, 또 하나의 문을 지나 지금 우리시대의 페미니즘 이슈로 홍루몽을 만나면 어떤 새로운 주제가 가능할까? 아마도 최고의 페미니스트 가보옥의 여성예찬이 아닐까? 정말 놀랍지 않은가? 성담론과 젠더문제로 홍루몽을 들여다보면, 이 책은 곧장 훌륭한 페미니즘 참고서로 변모하는 것이다. 챠쟈작!

루쉰이 말한 것처럼 어떤 주제로 접근해도 홍루몽은 각각의 문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홍루몽을 다양체로 여긴다

변발의 페미니스트

   남주인공 보옥이가 맨날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여자아이는 물로 만들어졌고 남자는 진흙으로 만들어져서, 여자아이를 보면 마음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더러운 냄새가 진동한다는 둥의 우스운 말들이다. (헉… 냄새!) 또 남자 시동들에게는 ‘여자아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고 혼을 내기도 하면서, 여성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남녀평등을 뛰어넘어 여성상위, 아니 여성의 신격화다. 가히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볼만하지 않은가?

   보옥이는 십대 소년으로서 한 가문의 금지옥엽 같은 후계자다. 그러나 그는 대를 이어 가문을 이끌어 갈 공부는 하지도 않고, 그런 책임감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오로지 자매나 시녀들과 어울려 놀면서 그녀들의 면면을 추켜주고 사랑하는 존재다. 게다가 감수성은 또 얼마나 예민하고 세심한지, 어떤 여성보다도 더 여성적인 마음의 결을 지녔다. 그러나 처음엔 이런 보옥이의 모습은 낯설고 또 웃길 뿐이었다.

   예전에 중국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불편했던 장면이 있는데, 여자가 막무가내로 토라지면 남자가 완전 바보같이 안절부절하고 알랑대며 달래주는 모습이었다. 무협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현대극을 봐도 여전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여자는 소파, 남자는 주방으로 가는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는데, 이런거 저런거가 다 걸려서 드라마를 기피했더니 중국어를 공부하는 동안엔 생활용어보다 뉴스멘트가 더 익숙하게 다가왔었다.

   홍루몽을 읽으면서, 그 많던 중국 드라마의 바보남자들이 모두 홍루몽 속 보옥이의 분신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옥은 자매 둘이 싸울 때, 두 누이의 마음이 혹시나 다칠새라 양쪽 눈치를 보는데, 결국 그 둘에게 모두 욕을 얻어먹지를 않나, 시녀아이가 부채를 상하게 해서 핀잔을 주었다가 시녀가 도리어 화를 내자 나중에는 그녀로 하여금 더 많은 부채를 찢을 수 있게 해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지를 않나, 그냥 그렇게 마냥 절절매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중국적 특징, 즉 과장과 유치함이라고 생각 했다.

그 많던 중국 드라마의 바보남자들이 모두 홍루몽 속 보옥이의 분신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더 아래의 층위에서는 일종의 모욕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여자에게 그토록 자신을 낮춰 절절매는 태도는 상대를 오히려 말이 안 통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으로 굴 때, 남자가 그것을 말로 따지거나 합리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빌고 빌어서 여자가 ‘흥, 한 번만 용서해줄테야’ 할 때까지 감정에 호소하는 것! 나는 이성적 여성으로서 변발의 페미니스트의 이러한 점이 못마땅했었다.

여성성 규정하기

   하지만, 모택동이 말하길 홍루몽은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고 했던가. 반복해서 읽을수록 보옥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특히 보옥이가 사랑한 것이 모든 여성이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보옥이는 훌륭한 여자아이도 결혼만 했다하면 나쁜 물이 들어서 사람이 변해버린다고 한탄한다. 늙어버리면 탐욕에 속임수까지 늘어난다. 그래서 심부름하는 할멈들은 보옥의 방에 얼씬도 못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나서의 나쁜 변화라면 무엇일까? 뚱뚱해지는 것? 뻔뻔해지는 것? 아들들을 키우면서 목소리가 매우 커진 것? 화를 내는 것? 음, 이건 모두 나의 경우이다. 그런데 보옥이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보옥이에게 여성의 결혼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경애하는 여성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결혼을 하면 가정이라는 최소단위의 사회구성체의 일원이 된다. 결혼 전에는 그저 ‘소속 없음’의 자유로웠던 영혼들이 결혼과 동시에 책임감이 생기고, 가정경제를 고려하여 짠순이가 되고, 시댁과 친정에 도리를 챙기는 등, 사회의 질서에 곧바로 편입되는 것이다. 외적인 조건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질서에 들어가는 순간 욕망이 변하고, 욕망이 변하면 ‘말’이 바뀐다. 사회의 질서를 수호하는 말, 가문과 후손에 대한 계획적인 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말…. 보옥이가 봤을 때, 결혼을 하면 여성도 ‘꼰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성이 사라지고 새로 장착되는 이런 것들이 남성성이란 말인가? 맞다. 이건 명리(命理)의 이치로 보면 여성이 결혼하면서 생기는 요소들로서 ‘남편’과 ‘책임’과 ‘권력의지’는 같은 욕망의 벡터로 움직인다.

사회의 질서를 수호하는 말, 가문과 후손에 대한 계획적인 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말.... 보옥이가 봤을 때, 결혼을 하면 여성도 ‘꼰대’가 되는 것이다!

   나는 홍루몽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여성의 문제를 언급하길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슬쩍 꼬리를 내리며 물러났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젠더(성 역할)에 대한 견고한 고정관념 때문이었고, 형식적인 측면에선 얘기하면 할수록 꼬이기만 하는 언어표현의 문제였다. 여자와 여성성, 남자와 남성성이라는 단어는 모호하고 뒤섞여있다. 말을 하다보면 언제나 우리의 민감한 성평등 문제에 걸리기 일쑤였고, 그것을 해명하다보면 나의 편견과 맞닥뜨리고 결국 홍루몽은 옛날 소설이니까…하면서 물러나버리곤 말았던 것이다.

   젠더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핫한 들뢰즈의 ‘n개의 성’이라는 개념으로 살펴보면, 여성 안에도 다양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요소들이 있으며, 남성 안에도 수많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요소가 뒤섞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로 규정되는 성은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성이 뭔지 남성성이 뭔지는 밝혀놓지 않았다. 단지 암호처럼 ‘소녀’라고 언급해놓긴 했다. 들뢰즈는 또 성의 횡단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면서는 ‘남자는 여자에게서 남성적인 것을 찾으려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여성적인 것을 찾으려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남성적인 것’은 무엇이고, ‘여성적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보같은 질문일까? 그건 그냥 우리 모두가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크고 강하고 힘센 것과 부드럽고 약하고 섬세한 것, 앞서가는 것과 뒤따르는 것, 공격하는 것과 방어하는 것,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기쁨과 슬픔, 빠름과 느림, 건과 곤…. 이건 뭐지? 결국 양과 음? 맞다, 양과 음! 陽적인 것이 남성성이고, 陰적인 것이 여성성이다. 이것들은 서로 합쳐지지도 않고 나라는 전체로 환원되지도 않는 ‘부분대상’으로서 내 안에 있다. n개의 성이란, 나를 구성하는 이 수많은 음양의 요소들이다.

陽적인 것이 남성성이고, 陰적인 것이 여성성이다. 이것들은 서로 합쳐지지도 않고 나라는 전체로 환원되지도 않는 ‘부분대상’으로서 내 안에 있다. n개의 성이란, 나를 구성하는 이 수많은 음양의 요소들이다.

홍루몽의 여성성

   홍루몽에서 여성성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남자인 보옥이라는 점도 특이한데, 그와 대비되는 왕희봉은 여성캐릭터로서 남성성의 상징이다. 권력욕과 지배욕, 잔혹함, 유능함, 인정욕망, 정확함 등이 그녀의 것이다. 반면 보옥이는 무능하기 짝이 없으며 누가 자기를 무서워하는 것을 싫어하고, 지배담론이 그에게 내재화하기를 요구하는 모든 가치를 거부한다. 심지어 가끔씩 정신 팔린 듯 흐리멍덩한 상태로 있는다. 이성은 명확한 가치와 잣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남성적(陽)요소요, 비합리적으로 보였던 감정적인 것들은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여성적(陰)요소다.

   보옥이가 언제나 끌리는 정서는 기쁨보다는 슬픔이다. 슬픔은 가라앉는 기운으로 음적인 것이며, 홍루몽의 여성적 정서의 핵심이다. 지배담론의 정서는 패기 넘치는 기상이다. 조선 문체반정 때 정조는 소품문이 초쇄가 심해 선비들의 씩씩함을 해친다고 해서 금지하지 않았던가.

   보옥이 여자아이를 예찬하고 여자아이의 물건에 집착을 보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주류가치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다. 규중 소녀들의 웃음소리, 화장대의 연지에 자동으로 뻗는 보옥의 손이야말로 지배질서라는 견고한 틀에 포획되지 않는 미시적 흐름들이다. 집안에 큰 잔치가 있는 날 대문을 몰래 빠져나가 휴가 간 시녀의 집에 놀러 가는 것처럼, 거대한 중심에는 언제나 미끄러지는 도주선이 있기 마련이다. 홍루몽의 여성성은 늘 이 도주선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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