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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이야기 동의보감 | 충(蟲), 내 삶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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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석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17 09:37 조회2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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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복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식당에서 참치알 같은 음식이 나오면 “이거 먹으면 뱃속에서 참치가 생길 거 같아 못 먹겠다!”고 말해 우리를 웃긴다. 본인도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 안 먹는 건 아니다. 그런데 『동의보감』엔 놀랍게도 이런 유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도념이 병을 앓았는데 저징이 진찰하고 나서 말하기를 냉증도 아니고 열증도 아니며 이것은 삶은 계란을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것이다.”고 하였다그리고 마늘 한 되를 삶아 먹이니 어떤 것을 토했는데 크기가 됫박만 한 것이 침에 쌓여 있었다그것을 헤쳐 본 즉 병아리였는데 깃털과 날개발톱과 발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그리고 얼마 있다가 병이 나았다. (내경편, 469)

어떤 사람이 요통으로 가슴까지 당겼는데 매번 통증이 이를 때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이에 서문백이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발가(髮瘕)이다” 고 하면서 기름을 먹이니 곧 머리카락 끝 같은 것을 토했는데 잡아당겨 빼내어보니 길이가 3자나 되었고 머리는 이미 뱀처럼 되어 움직였는데 문에 걸어서 물기가 다 빠진 것을 보니 한 올의 머리카락일 뿐이었다. (위의 책, 470)

날계란도 아닌 삶은 계란을, 그것도 통째가 아니라 씹어 먹었는데 병아리 모양새를 갖추고 나오다니 헉! 잘못 먹은 머리카락이 뱀처럼 눈도 달리고 움직이다니. 설마 하다가도 이 정도면 모든 물질은 다 생명이 되려고 하거나 물질 자체가 생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몸에 있는 작은 생명들, 즉 미생물들을 통틀어 한의학에선 충(蟲)이라 일컫는데 우리 몸은 다른 생명체들, 충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인가 보다. 머리카락까지 살 수 있는. 왜 안 그러겠는가. 습하고 열이 있고 영양물질이 듬뿍한데. 그러니 옛날은 교룡이 교미한 정액이 흘러든 물을 먹어 충이 생기거나 미나리에 붙은 거머리를 모르고 잘못 먹어 몸의 피를 빨아 먹는 거는 다반사였다.

하긴 옛날 회충을 박멸하기 위해 학교에서 대변 봉투로 검사하고 회충약을 해마다 먹었던 걸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기분이 언짢은 건 어쩔 수 없다. 그 작고 기괴하게 생긴 놈들이 내 안에 우글거리고 있다니. 옛날엔 입으로 까지 나올 때도 있어서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지 않았는가. 우리 언니는 회충을 토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장내의 세균 덕분에 소화가 되어 음식물을 섭취하고 살아갈 수 있는 걸 알면 어떤 놈들은 고마운 존재 같기도 하고 그야말로 애증이 헷갈린다. 양적으로도 우리 몸의 세포수의 10배가 된다니 이들이 우리를 장악한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이들은 우리 보다 훨씬 먼저 생긴 선배(?)이다. 『동의보감』에서도 이들은 계속 알을 낳아 새끼를 치므로 없앨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주인인지 그들이 주인인지, 내가 충인지 충이 나인지 계속 헷갈린다. 우리가 그들에게 더부살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들과는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이것이 면역계가 할 일이다.


우선 삼시충(三尸蟲). “첫째는 상충(上蟲)으로 뇌속에 있고 둘째는 중층(中蟲)으로 명당(明堂)에 있고 셋째는 하충(下蟲)으로 뱃속에 있다이것을 팽거(彭琚), 팽질(彭質), 팽교(彭矯)라고 하는데 사람이 도()를 닦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이 뜻을 굽히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하였다상단전(上丹田)은 원신(元神)이 거처할 궁인데 오직 사람이 이 관문을 열지 못하여 시충(尸蟲)이 살게 되므로 생사의 윤회를 마칠 기약이 없는 것이다. (내경편, 467)

우리가 도를 닦지 못하고 생사의 윤회를 거듭하는 게 삼시충의 짓이라니. 뇌와 명당, 뱃속까지 골고루 장악하여 우리를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기가 죽고 만다. 생물학 용어로 말하면 숙주조정 당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저지르는 문제점들, 감기가 잘 낫지 않는 것도 시충이 조종하는 건 아닌지. 흑~

노채충(勞瘵蟲)도 무시무시하다. 장부의 기름을 파먹고 피와 살을 파먹는다. 병자를 죽음으로 이끈 후에도 가족들에게 옮기를 계속하여 멸문지화를 부르고 만다. 그래서 ‘전시(傳尸)’라고도 불린다. 증상은 조열과 도한, 각혈, 유정, 설사를 한다. 남의 흉을 잘 보고 늘 분노의 감정을 품는 것도 특징이다. 원인은 ‘소년시기, 즉 혈기가 안정되기 전에 주색에 손상되면 그 열독이 쌓이고 뭉쳐서 괴상한 벌레가 생기게 되는데’ 기혈이 손상되어 허해진 틈을 타서 사기가 침입하고 충이 생긴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구충(九蟲)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회충이나 요충은 여기에 속한다. 오장충(五臟蟲)도 있는데 오장마다 고유의 충이 있어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어느 충이건 우리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충들이 우리가 미워 이러겠는가? 다 살려고 하는 일이다. 그들에겐 삶일 뿐인데 우리에겐 병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살아야 한다. 우리라고 전략이 없을쏜가? 우리는 우선 약으로 대응하는데 만드는 법이 특이하다. ‘약을 만들 때는 소리를 내어 말을 하지 말아야지 약을 만든다고 말하면 기생충은 곧 아래로 도망가는데 이는 경험으로 안다.’(475쪽)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어떤가? 이 정도면 우리도 대단하다. 병자에게 약이라는 걸 모르게 하고 먹이고 있으니 서로의 기 싸움이 대단하다. 우리 몸이 한바탕 전투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충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증거이다. 동의보감은 충이 신령스럽고 특이하다는 걸 강조한다. 그래서 약 만드는 것도 비밀로 했던 것이다. 아마 이는 어떤 강력한 약으로도 충을 박멸할 수 없다는 걸 동양인들은 알았던 게 아닐까? ‘노채(勞瘵), 전시(傳尸)의 병을 훈증하여 치료하는 약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효과 본 사람은 드물다. 오직 마지막에 죽은 사람을 태운다면 병이 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이다.’(475쪽)

 

그래서일까? 『동의보감』에선 상생의 유화책을 주로 쓴다. 예를 들면 노채충을 죽이는 대신 경옥고와 같은 보약으로 몸의 허기를 보하는 방식을 병행한다. 또 회충이 심할 때는 ‘위를 따뜻하게 하여 안정시킨다.’ 충은 단맛을 좋아하고 신맛에는 멈추며 쓴 맛에는 안정한다는 걸 알고 단맛 나는 감초는 약에 쓰지 않은 것도 그렇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회충약으로 제주에서 많이 나는 비자를 자주 까주셨는데 맛이 무척 떫었다. 입 안이 다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마 회충들도 오그라들지 않았을까?^^ 응성충(應聲蟲)을 치료하는 법은 아예 충과 교감을 하는 것이다. 응성충은 목구멍에 있으면서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따라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본초』를 외우게 했다. 그랬더니 약물마다 소리가 응하다가 ‘뇌환’이라는 약재를 외울 때만 소리가 없어서 뇌환 몇 개를 복용케 했더니 나았다는 것.^^

그 무서운 노채충의 최종 치료법은? “노채병 36종은 오직 음덕(陰德)이 있어야 떼버릴 수 있다. 이 병에 걸리면 산림 속으로 들어가거나 조용한 방에 거처하며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히 앉아서 치아를 맞쪼고 향을 피우며 음식을 조절해서 먹고 욕망을 끓는 등 보양에만 전심을 기울인다면 아마도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금기사항을 따르지 않는다면 비록 약을 먹는다고 하여도 효과가 없다.”(475쪽)

충을 마음 수양으로 다스리라는 이 치료법은 항생제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무척 낯설다. 충을 진정시켜 서로가 살자는 전략이다. 우리가 수양하는 삶을 살면 충도 우리를 만만히 보지 않아 날뛰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들을 진정시킬 수도 있고 날뛰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오래도록 충을 병원체로만 알고 충에게만 병의 책임을 지우며 충만 없애려 해왔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우리의 삶에도 문제가 있으므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 저런 전략으로 충과 관계 맺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우리 삶의 활력이다. 면역계의 활동인 것이다. 만약 약으로나 위생으로 충을 다 몰아내면? 면역계는 관계할 대상이 없어져서 충 대신 자신을 대상으로 착각하여 공격하게 된다. 이른바 면역계 질환들. 아토피, 류머티즘 등이다. 충은 피할 수 없기도 하지만 우리를 살리는 필수적인 존재이다. 내 삶의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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