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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홍루몽의 페이지들 | 성장 또는 변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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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석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03 20:03 조회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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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이런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써놓고 보니 읽은 소설이 몇 안 되긴 하다) 무더위에서 시작해서는 곧 겨울의 풍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또 얼마간 읽다보면 단오절 잔치준비로 분주한 집안 분위기로 무대가 전환된다. 또, 부채를 부쳐대며 더위 먹을까 외출을 자제하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다가는, 어느덧 국화꽃이 피더니, 눈이 왔다고 신난 아이들이 설경을 즐기겠다고 삼삼오오 모인다. 한 해도 건너뛰지 않고, 반복되는 계절의 흐름을 자분자분 밟아나간다.

   이렇게 근 10년의 시간이 소설 홍루몽의 시간이다. 독자는 계절과 명절의 반복을 통해 시간이 가고 있음을 안다. 그 사이 몇 번의 장례식이 있고, 쫓겨나가는 시녀가 있는가 하면 새로 들어오는 시녀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건강하던 사람이 병을 얻고, 자매들은 점차 커서 시집을 간다.

   내게 홍루몽의 이미지는 첩첩이 펼쳐진 병풍이다. 병풍의 한 폭 한 폭은 계절의 풍경을 배경으로 시간의 흐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120회의 긴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소설 속의 시간의 흐름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오롯이 이 10년을 함께 한 것만 같다.

   남주인공 보옥이가 10세 무렵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19세가 되는 해에 끝이 난다. 내가 계절의 흐름을 이렇게 뚜렷하고 강렬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보옥이의 나이를 셈하면서 읽기 위해서 계절이나 명절이 나오면 모두 표로 만들어 적어가며 읽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명확하긴 하지만.

내게 홍루몽의 이미지는 첩첩이 펼쳐진 병풍이다. 병풍의 한 폭 한 폭은 계절의 풍경을 배경으로 시간의 흐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한 눈에 보이도록 시간을 적어놓고 보니 이 소설은 보옥이가 보낸 십대, 즉 그가 좌충우돌하며 자라고 사랑하고 깨달아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간은 보통 세상을 알아가는 가장 뜨거운 시절이다. 그래서 10대를 관통하는 성장소설류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이다. 왜냐하면 그 시절엔 반드시 깨달음과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보옥이 역시 10년 내리~ 하는 일이라고는 노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그것은 그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공부 따윈 개에게

   우선 10대에 하는 일이라면 지금 우리 입장이나 중국 청나라 소년의 입장이나 공부가 1순위다. 그런데 보옥이는 공부라면 아~주 진저리를 친다. 아버지 앞에 불려가서 시험 볼 것을 생각하면 벌벌 떨며 걸움도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면서도, 죽어라고 공부를 안 한다. 그런데 공부도 안하는 녀석이 폼은 그럴싸하게 잡아서, 그 이유가 자못 패기 넘친다. 보옥은 사서를 제외하면 모두 다 “옛사람들이 성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멋대로 끌어다 묶어낸 것들뿐이라고”하고, “과거 공부하여 출세하려는 사람한테는 ‘녹을 파먹는 벌레 같은 도둑놈’”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도둑놈이나 되는 공부 따위는 더럽게 여긴다는 것.

   말은 당차게 했지만, 보옥의 노는 꼴을 보면 시녀나 자매들이 왜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한심하긴 하다. 하루 종일 여자애들을 쫓아다니며 그녀들의 지분이나 장신구에 심취하여 장난치며 시시덕거리는 것이 주된 일과이니 말이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하나 꼽자면 매타작 사건인데, 보옥이 허구한날 공부는 안하고 나쁜 짓거리만 일삼다가 아버지에게 딱 들켰다. 그날 꼭지가 돌아버린 아버지에게 피떡이 되도록 매를 맞았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할머니와 어머니에 의해 가까스로 구출이 된 것이다. 보옥은 간신히 침대로 옮겨져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슬쩍 깬 상태에서 자매들이 너도 나도 병문안을 와서 한숨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보옥은 통증이고 뭐고 다 잊고 황홀한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단지 몇 차례 매를 맞았을 뿐인데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이처럼 가련히 여기고 슬퍼하는 자태를 드러내는구나. 그야말로 참으로 재미있고 볼만하며 가상하고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설사 어느 순간에 죽는다고 해도 저들의 한 가닥 동정을 얻게 된다면 내 일생의 사업이 모두다 물거품이 되어 흘러간다고 해도 하나도 아까워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1권, 315쪽)

   재갈을 물고 곤장질을 당했으니 아랫도리가 붓고 터진 정도가 처참할 지경일 터인데, 보옥이 생각하는 꼴 좀 보소.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눈물이 날 지경이다. 니체가 말하길 형벌은 사람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거나 그 행동에 대해 뉘우치게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형벌로써 탕감 받았다는 후련함을 느끼고, 다음부터는 더 조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보옥이 역시 마찬가지다. 보옥은 아버지가 어디 멀리 출장갔다가 돌아올 때가 되면 부랴부랴 몰아서 글쓰기와 글읽기를 하는데, 여러 시녀와 자매들은 자기들이 열심히 해서체를 쓰고 시를 지어가지고는 십시일반으로 분량을 채워주는 것이다. 보옥이보다 훨씬 더 가슴 아팠던 자매들과 시녀들이 보옥이 대신 영리해졌다.

여러 시녀와 자매들은 자기들이 열심히 해서체를 쓰고 시를 지어가지고는 십시일반으로 분량을 채워주는 것이다. 보옥이보다 훨씬 더 가슴 아팠던 자매들과 시녀들이 보옥이 대신 영리해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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