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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청년니체 | 세상에 적응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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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석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01 14:34 조회1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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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하라! 정직하라!> - 3

신근영 (남산 강학원 연구원)

시대에 적합한 존재, 미숙한 인간

   지식화된 앎은 우리를 약한 인격, 요컨대 미숙한 인간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대체 왜 교육은 이런 쓸모없는 유형의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런 미숙한 인간이 시대에는 쓸모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인간이란 쓸모 있는 지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 자체를 미숙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그래서 스스로 자기 삶의 길을 만들어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대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간난 아기 같은 존재, 이런 존재야말로 역사든, 국가든, 민족이든, 자본이든, 시대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모든 권력이 바라는 인간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간난 아기 같은 존재, 이런 존재야말로 ... 모든 권력이 바라는 인간이다.

   시대가 이런 인간 유형을 원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게 시대의 입장에서는 편하기 때문이다. 떼찌라는 한 마디에 화들짝 놀라 움츠려드는 아기들처럼, 과자 하나에도 방실대는 아이들처럼 약한 인격은 시대에 쉽게 휘둘린다. 시대는 이런 미숙한 인간들 속으로만 편안하게 침투할 수 있다. 더욱이 미숙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의탁할 거대한 힘을 원하고, 거기에 의존하려 든다. 아기가 엄마 곁에 붙고 싶어하고,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해하듯이. 시대에게 미숙한 인간이란 손대지 않고 코푸는 격이다.

지식 교육, 시대의 경찰

   하여 시대는 우리가 성숙하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조형력을 갖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렇게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도록 강요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게 만듦으로써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술을 쓰게 된다. 거기에 앎의 지식화가 있다.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하도록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성숙하기 못하게 만드는, 자기 인격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일례로 역사 교육은 위대한 자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다. 하지만 한편으로 조형력을 뒤로 감춘다. 바꿔말해 그것은 그 지식을 실행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자, 나아가 그것을 실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맘껏 머리 속에 담고 굴려라. 하지만 그것을 삶으로 직접 가져와서는 안된다, 라는. 그래서 니체는 지식 교육을 “경찰”이라 말한다.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려는 삶의 예술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경찰.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하도록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성숙하기 못하게 만드는, 자기 인격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지식교육을 통해 우리는 시대에 적합한 사람들로 생산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는 더 적은 삶을 가졌지만, 시대적으로 참으로 유용한 사람,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이런 삶은,……훨씬 더 적은 삶이고, 미래에도 훨씬 적은 삶을 보증하[며]…… 이미 말했듯이 그것은 완성되고 성숙해지고 조화를 이룬 인격의 시대가 아니라 가능한 한 유용한 공동 노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것을 뜻한다. 인간은 시대의 목적에 맞게 길들여짐으로써, 가능한 한 제때에 노동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성숙하기 전에, 아니 오히려 성숙하지 않도록 보편적인 공리의 공장에서 일해야만 한다-왜냐하면 성숙은 “노동 시장”에서 상당량의 힘을 빼앗는 사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아름답게 노래 부르도록 어떤 새들의 눈을 멀게 한다. 나는 지금 인간들이 그들의 할아버지보다 더 아름답게 노래 부른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들이 알맞은 때에 눈이 먼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그들의 눈을 멀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 그 악독한 수단은 너무나 눈부시고 너무나 급작스럽고 너무나 변화무쌍한 빛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2부, 이진우 역, 책세상, 350쪽)

   시대는 자신들이 맘대로 휘저을 수 있으며, 나아가 스스로 시대적 흐름에 자신을 바치는 약한 인격을 원한다. 더욱이 그런 약한 인격은 노동 시장에 적합하다. 약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은 간난아기들과 비슷한 상태다. 간난아기들을 보라. 좀 다르기는 하지만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 구별불가능한 인격, 그래서 언제나 대체 가능한 인격들은 노동 시장에 잘 들어맞는다. 낡아버리면 손쉽게 다른 것을 갈아 낄 수 있으니 말이다. 모름지기 독특한 인격, 대체불가능한 존재들은 비싼법이다.

우리 안의 시대성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한 시대가 약한 인격을 만들어내는 일은 일방적이지 않다. 요컨대 약한 인격이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과도 맞닿아 있다. 앎이 곧 삶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지난한 훈련과 연습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지식화되지 않는 앎이란 부담스럽다. 앎의 지식화는 바로 이런 우리의 부담을 덜어준다. 지식을 가짐으로써, 그 지식의 내용을 이루었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적당히 우리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양방향에서 함께 작동하고 있다. 시대는 자신들이 멋대로 할 수 있는 미숙한 인격을 원하고,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갖는 그 어려움을 피하고 싶다. 이 둘이 만나는 곳에서 앎은 지식화되고, 내면성을 가진 약한 인격인 근대적 인간 유형이 탄생하는 것이다. 더 적은 삶, 더 약한 인격, 더 작은 나란 존재. 하지만 더 손쉽고 더 편안한 삶. 시대는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시대에 적합한 인간이 된다. 자기 존재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대에 소용되는 존재로 만들면서, 그리고 이 시대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위로하면서 약한 인격, 왜소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교양이 없으며, 게다가 우리는 삶에 소질이 없다. 다시 말해 올바르고 단순하게 보고 듣고, 가장 가까운 것과 자연스러운 것을 행복하게 포착하는 소질이 없으며, 이제까지 한번도 문화의 토대를 가지지 못했다. 이는 우리 스스로 진정한 삶이 우리 안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무너지고 산산이 부셔졌고, 전체적으로 내면과 외면으로 반쯤 기계적으로 분해되었으며, 용의 이빨처럼 개념들로 뒤덮여서 개념-용들을 생산하고, 게다가 말의 병에 괴로워하고 아직 말의 낙인이 찍히지 않은 자기 감각은 어떤 것이라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명은 없지만 무척 활동적인 개념 및 단어-공장으로서 나는 나 자신에 관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살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꽉 차서 푸른 “삶”이 아니라 공허한 “존재”가 내게 허용되었다. (같은 책, 382~383쪽)

우리는 그렇게 시대에 적합한 인간이 된다. 자기 존재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대에 소용되는 존재로 만들면서, 그리고 이 시대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위로하면서 약한 인격, 왜소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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