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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글소식]『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36)에필로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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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0-15 20:28 조회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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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꼼꼼히 읽기 | [조설근 평전](36)에필로그 2


김희진

이런 배경이 창조되고 책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말하자면, 홍루몽의 출현은 분명 하나의 각별한, 또는 우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문학사에서 조설근과 같은 가세(家世), 일생, 재능이 있는 작가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적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루몽과 같이 전세계적인 명작의 작가는 그 한사람 뿐이다. 조설근은 불행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행운아이다. 이 소설은 작가 개인이 창작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결코 조설근 한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한 시대에 속한 것이고, 한 민족에 속한 것이고, 한 문화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위진시대에 나올 수 없고, 당송시대에도 나올 수 없으며, 명대에도 나올 수 없다. 단지 오래된 제국의 패망 전야에 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문학이라는 것이 스스로 발전해가는 규칙과 그 시대의 수많은 사회문화적 요인과 개인의 독특한 시절인연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천재의 손을 거쳐 한 민족의 문화와 예술의 정수를 펼쳐놓으며, 중국 고대소설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그 이전시대 소설의 발전이 밑바탕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성공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한 방울의 물로도 전체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을 통하여 중국소설의 민족적 특색과 예술의 품격을 꿰뚫어볼 수 있고, 중국전통문학예술과 민족문화의 거대한 매력을 이해할 수 있다.


홍학을 연구하는데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일부 연구자들의 규범을 어지르는 행위들로 그 학문분야의 존재할 필요성까지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주류 홍학자들의 끝장을 내보자는 류의 호언장담은 조회수를 얻거나 상업적 이익을 얻는 이외에는 학술적 층면에서는 어떤 실제적인 진전도 없다. 이 소설 자체든, 소설을 둘러싼 각종 사회문화현상이든, 모두 진지하게 탐구할 가치가 있다. 실제로 홍학연구는 이것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야말로 홍학이 성립할 수 있게 하는 전제이자 초석이다. 훌륭한 홍루몽이 홍학을 만들어내었지, 홍학이 홍루몽을 띄운게 아니다. 매우 경박한 논리가 홍학연구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시끄럽게 떠돌고, 학술윤리마저 결여된 지금, 어찌된 일인지 그것이 매우 불명확해 보인다. 비록 옛사람들이 일찍이 만약 이야기를 나눌 때 홍루몽을 얘기하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시서를 읽었다 하더라도 모두 헛된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지만 홍루몽이 진정으로 명예와 지위를 얻은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조설근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늦은감이 있지만 말이다. 비극과 희극이 동시에 교차했던 세기에, 조석으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던 통속소설이 혜성처럼 문학가족의 핵심으로 성큼 들어왔을 뿐 아니라 대학의 강의실로 들어갔으며, 현대학술의 체계에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왕국유, 호적, 루쉰, 유평백 등의 선각자들이 끊임없는 노력을 거쳐, 홍루몽은 문학사상 숭고한 경전의 지위까지 얻었으며, 그것을 둘러싼 홍학 역시 결국 사람들이 주목하는 전문학으로 되었다. 또 중국현대학술건립의 과정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학술계에서 일종의 시대적 풍향계가 되었다. 전체 사회를 통틀어 전대미문의 중시와 수많은 학자들의 참여는 홍학을 돈황학, 갑골학과 함께 병칭되는 저명한 학설이다. 줄곧 왁자지껄하게 흥성해왔으며, 격렬한 분쟁도 끊이지 않아 꽤 두터운 성과를 얻었다. 이것은 먼저 끊임없이 발견되는 대량의 홍학관련 중요한 문건을 근거로 하고, 몇 무더기씩 줄줄이 출현하는 우수한 학술저작을 또 그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현대 중국학술사에, 홍학연구는 대대적으로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고한 경전의 지위에 오른 동시에 홍루몽은 아주 무거운 대가를 치뤘다는 것이다. 한 번씩 고심하며 거칠게 덧칠하고 치장하는 중에 그것은 점차 본래의 면목을 잃어갔다. 그리하여 심각하게 왜곡되고 소외되었으며 모호해지고, 낯설어졌다. 20세기를 뒤돌아보면, 이 소설에 대한 독서와 연구는 이미 문학과 문화의 범위를 넘어섰다. 전 인민이 참여하는 일상적 행위이자 거국적인 관심사로서, 정치 경제적 요인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교대로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이 소설은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전문가나 아마추어 홍학가들에 의해 마음대로 꾸며졌다. 길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교과서로 꾸며지기도 하고, 중대한 역사적 내막을 숨기고 있는 암호본으로 꾸며지기도 하며, 만병통치를 장담하는 백과전서로 치장되기도 한다. 이 소설과 관련한 해독은 사공 많은 배와 같다. 의견이 분분하여 떠들썩하기가 과도해, 무슨 기기괴괴한 이론과 상식 밖의 해석들이 다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괴함에 깜짝 놀라지를 않는다. 개각각 모두 그 이유가 충분하여 정당하기 이를 데 없으며, 기개가 산을 삼킬 듯하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소동 가운데, 문턱이 없는 홍학은 점차 학술연구에서 일종의 행위예술로 탈바꿈했다. 홍루몽은 무엇도 될 수 있다. 그것은 소설이 아니다. 무척 황당하지만 이것이 눈앞의 생생한 현실이다. 학술규범에 대한 경시와 유린으로 인해, 홍학은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공용쓰레기통이 된 것은 피할 수 없다. 죽도 밥도 아닌 해몽파(解夢派) 홍학이든, 모래로 쌓아올린 성과 같은 진학(秦學)이든 간에, 또 이것이 새로 건립되는 투모로우 홍학이든, 주류홍학에 대한 끝장을 선포하는 것이든 간에, 모두 홍학이라는 브랜드를 이용하여 남들의 이목 앞에서 과시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다.


한 편의 문학작품으로서의 우수한 소설을 끝없이 아득하게 추켜올려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왜곡한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그것을 매우 중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작가에 대한 작품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종 문헌에서 벗어난 끝없는 추측들을 보면, 작가가 자간과 행간에 응결해놓은 빛나는 재주와 그가 궁리한 지점을 놓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한 발 물러서서, 이런 사람들의 관점이 성립해서, 홍루몽이 확실히 역사적인 교과서이며, 확실히 암호본이며, 확실히 백과전서라고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방법이 홍루몽을 기형을 가진 태아로 변질시키는 것 이외에 이 소설에 다른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은 이 소설의 광휘를 증가시킬 수 없으며, 그 가치에 손상만 입힐 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홍루몽과 같은 우수한 소설이다. 홍루몽이 문학사상 이렇게 숭고한 경전의 지위를 얻은 이유는 거대한 문학적 성취와 예술적 매력 때문이다. 다른 것은 없다.


텍스트로 돌아가고 소설로 돌아가고 문학으로 돌아가서, 기본적인 학술 규범과 방법을 따라야 한다. 모든 것은 작품에서 출발하여 실사구시하고 과도하게 상세히 해석하는 것을 거부해야한다. 조설근으로 돌아가고 홍루몽으로 돌아가서, 처음의 순박함으로 돌아가서 작품을 본래의 면목으로서 대하고, 문학적 아름다움과 언어의 아름다움과 재주의 아름다움을 그 가운데서 만나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입장이다. 홍학 연구가 새로운 학설이 분분하여 어지럽기 그지없는 오늘날, 이렇게 너무나 간단한 주장을 하는 것이 지금의 사정에 적합하지 않고, 구매력이 떨어지는데다가, 전문적으로 센세이션 효과를 생산해내는 매체들의 관심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홍학연구의 정확한 방향이며 이것이 반드시 우리가 노력해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천재 작가가 창조한 한 편의 뛰어난 소설이 아무 상관도 없는 우승컵이나 꽃다발로 미화되고 그 광채가 더해지랴. 문학예술상의 거대한 성취와 걸출한 공헌만으로 이 작품은 불후하기에 족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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