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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글소식]쿠바리포트:집 개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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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0-02 23:17 조회13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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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개조 프로젝트

김해완

학교를 시작한 지 꽉 채워서 3주가 지났다. 이 21일은 굼벵이보다 느렸고 또 화살보다 빨랐다. 이 이상한 시간 감각은 내가 숨 쉬는 시간만 빼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아, 물론 이것은 비유다. 사람은 공부만 할 수 없다. 부실하지만 밥도 먹고, 부족하지만 잠도 자고, 스페인어가 딸려서 어버버거리는 나와 현우를 챙겨주는 쿠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대접도 했다. 참 많은 일을 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는 나는 남은 모든 시간을 공부에 콸콸 쏟고 있다. 쿠바 친구들이 공부하는 시간의 세 배 정도를 해야 따라갈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은 다 예상했던 바다. 단지, 매 수업 시간마다 진도를 전 시간의 1.5배씩 늘리는 교수님들이 살짝 원망스러울 뿐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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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대접한 음식!

인성 과다가 찾아준 집

아마도 학교 이야기가 궁금하실 것이다. 학교에 대해서 풀 썰이 한 보따리 있다. 하지만 오늘은 집 이야기부터 하려고 한다. 지난 3주간 내가 공부에 시달리면서도, 꼭 따로 시간을 내서 해 왔던 일이 바로 집 개조이기 때문이다.

이 집을 찾은 것은 히론 의대에 등록을 하고 이틀 뒤였다. 그 사이 나는 학교 사무실 직원이 추천해준 집을 하나 보고 왔는데, 예상했던 대로 너무 비싸서 (쿠바에서는 집을 소개해주면 소개비를 받기 때문에 렌트비가 더 비싸진다) 실망하고 있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조건 좋은 집들은 이미 다른 의대생들이 차지한 후였다. 그날 나는 고샘과 통화를 하면서 고충을 털어놓았다. 뒤늦게 집을 찾기 시작해서 과연 수업 시작 전에 이사를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고샘은 말씀하셨다. “인성과다가 별 걸 다 걱정하네.”

사주에서 인성은 부동산을 뜻한다. 실제로 나는 뉴욕에서나 쿠바에서나. 집을 찾을 때 별 어려움 없이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공간을 발견하곤 했다. 역시나, 고샘의 예측이 맞았다. 그 다음 날 나는 곧바로 월세 180페소짜리 (20만원) 집을 찾았다. 이 집도 인터넷에서 발견했는데, 포스팅에 써 있기를 에어컨도 없고 세탁기도 없다고 해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동네야 쿠바의 청담동이라고 할 만큼 좋은 동네였지만, 학교에서는 4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쿠바는 버스로 20분 걸리는 거리를 이동하려면 한 시간은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언제 마을버스가 올지 모를 뿐만 아니라, 제때 버스가 왔다고 하더라도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몸을 밀어 넣는 지옥의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린다. 이런 저런 조건을 고려했을 때 이 집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일단 보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집주인과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월척이 걸렸다. 집을 보는 순간, 이 집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집이 깨끗했다. 관리가 잘 되어 온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유혹했던 것은 널찍한 공간이었다. 이 집은 면적 자체가 크지는 않다. 현관문을 들어가면 일단 작은 거실이 나온다. 구석에 부엌이 있고, 또 다른 구석에 화장실이 있다. 그렇다면 방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이층이다. 면적이 작은 대신에, 한 층을 더 올린 것이다. 일층이 여러 공간으로 분할되어서 답답한 느낌을 준다면, 이층 방은 통째로 터져 있다. 있는 것이라고는 침대와 책상뿐이었다. 창문도 커서 환기도 잘 되었다.

누구는 휑하다고 할지도 모를 풍경이겠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너무 너무 그리웠다. 바닥에서 뒹굴거리면서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 말이다. 내가 지금 월세의 세 배를 더 내고 살았던 외국인용 아파트에서도 그런 공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쿠바는 사람들이 전부 공간을 쪼개서 쓰는데다가, 없는 공간에 온갖 물건들을 꽉꽉 채워놓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집에는 추가적인 장점이 있었다. 180페소라는 싼 가격 때문에 불법 카사일 줄 알았더니, 합법 카사란다. 덕분에 학교에 서류를 제출하기가 훨씬 더 수월해졌다. 그리고 동네가 살기 좋았다. 가까운 거리에 주요 마켓들이 있었고, 앉아서 글 쓰기 좋은 조용한 카페도 있었다. 고기를 깨끗이 손질해서 파는 정육점도 있었다. 돼지고기를 사는데 돼지털이 안 붙어 있더라. (쿠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정육점이다.) 물론 가격은 다른 로컬 장소보다 비싸지만, 혼자서 공부하면서 밥까지 해먹어야 하는 팍팍한 유학생의 입장에서 차라리 돈을 쓰고 시간을 아끼는 쪽이 더 나았다. 인성과다의 팔자는 이번에도 나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싼 비지떡까지는 아니지만......

물론 이 집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쿠바에서는 문제가 없는 집이 없다. 한 달에 100만원을 내든 10만원을 내든, 각각의 집은 자기만의 고질병(?)을 안고 있다. 물이 이틀에 한 번만 들어온다든가, 온수를 쓸 수 없다든가, 전기가 자주 나간다든가......

내가 새로 찾은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물이었다. 알고 보니 이 동네는 물이 이틀에 한 번만 들어왔다. 그것도 한나절만 들어온다. 12시간 동안 물이 들어올 때 물탱크를 채워놓고, 나머지 36시간을 이 물탱크에 차 있는 물로 버텨야 한다. 우리 집 물탱크는 크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 살면서 쓸 만큼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집 물탱크가 1층 바닥에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화장실의 샤워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샤워 호스+샤워기’의 조합이 아니라, 물 파이프를 벽으로 끌어와서 파이프 끝에 샤워 헤드를 달아놓은 형태였다. 이 샤워기-파이프의 위치는 물탱크가 놓여있는 높이보다 훨씬 높았다. 그래서 수압 때문에 물탱크에 물이 차 있어도 샤워기까지는 물이 닿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집주인은 말했다. “이틀에 한 번씩만 샤워해요! 물이 들어오는 날에는 수압이 좋아요.”

쿠바처럼 사시사철이 여름인 나라에서, 그것도 에어컨도 없는 집에 살면서 이틀에 한 번 샤워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다. 그렇지만 나는 이틀을 기다려보았다. 그리고 샤워기를 틀었다. 물이 졸졸졸 나왔다. 샤워기 헤드에 구멍이 20개라면 그 중 3군데에서만 물이 졸졸졸 흘렀다. 수압이 좋기는 무슨. 집주인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또 물어보니, 우리 집이 이 단지에 모여 사는 여러 세대 중에 가장 안쪽에 위치해서 물도 가장 늦게 닿는다고 했다. 앞집들이 물을 많이 쓰면 그만큼 수압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보고 또 밤까지 기다렸다 씻으란다. (오호라, 물 끊기기 직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다음에는 물탱크에 문제가 생겼다. 물탱크에는 물의 높이를 측정하는 작은 통이 있다. 화장실 변기가 작동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물을 많이 써서 이 통이 내려가면 파이프에서 새 물이 들어오고, 탱크에 물이 가득 차서 이 통이 올라가면 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물탱크가 넘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이 통이 아래로 내려가 있어도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36시간을 물 없이 보내게 생긴 것이다. 나는 내 키보다 조금 작은 물탱크로 기어올라가서, 텅 빈 탱크에 머리를 처박고 이 문제의 통을 떼었다가 붙여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호스를 끌고 와서 부엌 수도꼭지와 연결하여 수동으로 물을 채웠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를 갔다 와서 보니 물탱크가 또 텅 비어 있었다. 이게 뭔 일인가. 알고 보니 이번에는 변기 물탱크에 문제가 생겨서, 마개가 꼭 닫히지 않고 졸졸졸 물이 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노무 물탱크 자슥들....... 쌍으로 나를 엿먹이다늬......

그 다음 문제는 세탁기의 부재였다. 내가 더위를 잘 안 타는 체질인데다가, 날씨도 점점 시원해지면서 다행히 에어컨의 부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탁기가 없는 것은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이사를 처음 했을 때는 이래저래 손빨래를 했지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손빨래를 할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근처 세탁방에 옷을 맡기자니 가격이 너무 비쌌다. 에이씨, 그냥 내가 세탁기를 산다고 할까? 그런데 또 이 집을 둘러보니 마땅히 세탁기를 놓을 곳이 없었다. 물이 나오고 또 배수를 하려면 물 파이프 및 하수구와 가까운 곳이어야 하는데, 화장실은 너무 좁았고 나머지 공간은 모두 부엌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엌 밖에 바로 붙어있는 빠띠오(쿠바의 집에 붙어 있는 작은 야외 공간)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으나, 그러려면 비가 올 때 세탁기를 보호해줄 수 있는 차양막도 같이 설치해야 했다. 큰 공사가 될 것이었다.

그 외에도 이 집에는 일상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것들이 없었다. 화장실에는 휴지 걸이가 없었고, 거울도 없었다. 부엌에는 수납공간이 부족했고 식기도 없었다. 내가 뉴욕에서 공수해 온 무쇠 프라이팬과 어머니가 이번에 챙겨주신 뚝배기 냄비로 근근히 요리하고 있다.

아,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솔직히 말하면 비지떡까지는 아니다. 외국인으로서 합법 카사에 살면서, 그것도 아바나의 부촌에 살면서, 한 달에 180페소만 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이 집을 만나기까지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가격이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쿠바인의 삶의 향기를 맡아가고 있었다. 늘 문제와 맞닥뜨리는 삶, 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 삶.

창의성은 처량함에서 시작 된다

생각해보면 뉴욕에서는 살림하기가 참 편했다. 뭐가 없으면 사면 된다. 뭘 고쳐야 하면 유투브에서 검색하면 된다. 그리고 필요한 건 모두 아마존에 있다. 클릭 몇 번이면 우리 집 앞까지 배달이 온다. 아바나에서 나는 인터넷 대신에 두뇌로, 키툴 대신에 플라스틱 물병과 철사와 바가지로 집을 개조하고 있다. 엄청난 변화를 꾀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 달 간의 노력 끝에 내 생활은 확실히 편해졌다. 집도 나도 서로에게 적응을 하게 된 느낌이랄까. 뉴욕에 갈 때는 ‘살림 개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았었지만, 이제 그 꼬리표를 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감히 자평한다. 그만큼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첫 번째로 내가 풀었던 문제는 ‘어떻게 샤워기 없이 샤워를 할 것이냐’였다. 답은 간단하다. 양동이에 물을 채워서 바가지로 하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양동이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부엌에서 썼던 호스는 안타깝게도 화장실 수도꼭지와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세면대는 너무 작아서 거대한 양동이를 밀어 넣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의 유일한 수원이 세면대 수도꼭지라면, 이곳의 물을 양동이로 옮기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곰곰이 고민한 끝에 나는 바가지를 활용하기로 했다. 이 바가지는 손잡이 부분에서 확 좁아지기 때문에, 물을 가득 채워서 흘러넘치게 하면 이 물은 손잡이 부분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나는 이 손잡이 부분을 세면대 밖에 걸쳐놓았다. 그리고 쪼르르 떨어지는 물 아래에 양동이를 놓았다. 문제 해결! 요즘 나는 한쪽에서는 바가지를 활용해 양동이에 물을 받으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또 다른 바가지로 이 물을 퍼서 샤워를 한다. 익숙해지니까 그럭저럭 할 만하다. 누군가에게 호스를 받아 쓰기 전까지는 임시방편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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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고민한 끝에 나는 바가지를 활용하기로 했다.

두 번째 과제는 부엌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부엌에는 총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공간이 좁다. 둘째, 식기 건조대가 거의 부서져서 제 구실을 못한다. 셋째, 철로 만들어진 선반 윗면이 굽어져서 소스병을 세워둘 수가 없다. 넷째, 냉장고 안에 계란을 둘 곳이 없다.

나는 부엌의 첫 번째 문제와 두 번째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일단 부서진 건조대는 치워버리고, 냉장고 안의 선반 받침(아시다시피 이 받침은 빈 틈이 많다.)을 빼서 싱크대에 얹어놓는다. 그리고 이 받침을 건조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공간도 절약되고, 건조대도 새로 구하지 않아도 되고, 그릇에서 떨어지는 물이 곧바로 싱크대로 흐르니 물이 고일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석삼조! 특히 마지막 효과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열대 기후인 쿠바는 조금만 물이 고여도 벌레들이 꼬인다.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자도 그 다음 날 바닥에 고인 물에 날파리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건조대 받침에 고인 물에서 모기 유충이 태어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냉장고의 선반 기부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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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 건조대로 활용 중인 ​냉장고 안의 선반 받침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되었다. 나는 집 청소를 하다가 구석에 세워져 있는 쓸모없는 나무판을 보았던 것을 기억해내었다. 그리고 휘어진 선반에 올려놓았다. 이제 나는 판판한 새로운 면을 갖게 되었다. 문제 클리어. 달걀 보관함을 만드는 것은 조금 더 창의성을 요구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활용하려고 모아두었던 플라스틱 1.5리터짜리 물통을 발견했다. 나는 이것을 정말로 재활용하기로 했다. 물통에 네모난 구멍을 내어서 그 안에 달걀을 집어넣은 것이다. 냉장고에 눕혀 놓으면 사이즈도 딱 맞았다. 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주범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쿠바 같은 환경에서 살림을 할 때 플라스틱만큼 좋은 재료가 없다. 가볍지, 방수되지, 구하기 쉽지, 변형하기 쉽지, 뚜껑도 있지, 물통 같은 경우는 모두 규격 사이즈라서 여러 개를 모아 쓸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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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병을 세워두는 나무 선반과 물병을 재활용한 달걀 보관함

세 번째 미션은 물탱크와 세탁기였다. 물탱크, 이제 나는 이 문제아의 원리를 완전히 꿰기 되었다. 물조절 통을 마침내 제자리에 제대로 부착했을 뿐만 아니라, 수압이 낮아서 물이 다 안 차는 날에는 호스를 끌어와 수동으로 물을 채워놓는다. 그리고 화장실 미니 물탱크가 또 다시 모든 물을 낭비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를까봐 아침에 볼 일을 볼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렇게 나의 매의 눈과 같은 감시 하에서 우리 집 물은 다시 원래의 사이클을 되찾았다.

또, 빨래의 경우에는 세탁기를 가지고 있는 이웃집에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빌려 쓰기로 했다. (왜 처음부터 이 생각을 못했을까? 왜 꼭 세탁기를 사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역시, 나는 자본주의 사회 출신인 게 맞다.) 이웃집 아줌마는 몹시 기뻐했다. 다만 내가 몰랐던 사실은 이 세탁기가 내가 알고 있는 ‘세탁기’와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수동세탁기였다. 이 세탁기에는 두 가지 기능만 있다. 빨래와 탈수. 헹굼 기능이 없다. 심지어 물도 수동으로 채우고 또 배수해야 한다. 그 말인즉, 빨래가 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다가 다 건져내어서 밖에서 헹구고, 짜고, 다시 세탁기에 넣고 탈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 내가 상상했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빨래를 하는 것보다 더 나았기 때문에 오케이를 했다. 그래서 요즘 주말마다 아줌마와 함께 빨래를 한다. 아줌마가 세탁기에 돌아가고 있는 내 빨래를 손으로 더 깨끗하게 부비는 동안, 나는 옆에서 호스에 물을 틀어놓고 그 빨래들을 행구는 식이다. 이렇게 같이 빨래하는 시간 동안 이웃들의 얼굴도 익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 외에도 나는 뉴욕에서 가져온 튼튼 철사(이게 공식 이름은 아닌데, 뭐라고 부를 이름이 없어서 이렇게 부른다)로 벽걸이도 만들고, 휴지걸이도 만들고, 칫솔걸이도 만들었다. 여기까지 작업을 마치고 나자 어느 새 삼 주가 흘러 있었다. 샤워기도 세탁기도 없이 처량하게 살기 시작했던 나는 이제 이 집의 ‘주인’이라고 해도 될 만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뛸 뜻이 기뻐했고, 또 스스로에게 놀랐다. 나는 내가 이렇게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몰랐다. 그저 나 자신을 ‘살림에 서툰 사람’이라고 규정지어 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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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져온 튼튼 철사로 벽걸이도 만들고, 휴지걸이도 만들고, 칫솔걸이도 만들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창의력은 처량함에서 시작된다는 것. 처량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짱구를 굴리지 않는다는 것. 내가 한국이나 뉴욕에 살면서 이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곳들의 처량함은 딱 하나밖에 없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손을 뻗을 수 있는 온갖 해결책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호주머니에 어떻게 돈을 채울지만 생각하게 된다. 처량함의 종류가 딱 하나 밖에 없다니, 이 얼마나 빈곤한가! 아바나는 온갖 버라이어티한 처량함을 내게 선물로 준다. 샤워기가 없는 서러움, 세탁기가 없는 서러움, 식기 건조대가 부서져도 어디서 새로 살 수 없는 서러움. 그래서 나는 부자다. 이런 처량함들을 영양분 삼아, 나의 창의력도 나날이 커져가는 중이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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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놀러온 쿠바 친구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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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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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활용법이 귀여워서 웃고 말았다는... ㅎ~
샘의 창의력에 저도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