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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글소식]인류학과 의역학 | 습(習)과 습(濕)의 기묘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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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9-04 11:15 조회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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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習) 습(濕) 기묘한 동거




임경아


지난 번 글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뇌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습관을 만들었는데 정착생활을 하면서 이전 유목생활보다 대뇌에 가해지는 부담은 적어지면서 정해진 회로대로 움직이는 습(習)만 더 견고해졌고, 결국 우리는 지루해졌음을 살펴보았다.


일정 정도의 위험을 돌파할 때 우리의 뇌는 활성화되고 그로 인해 살아있음, 즉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삶에서 어려움은 겪고 싶지 않고, 살아있다는 생동감은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우리는 각종 중독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라이프”에서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성과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사장에 맞선 예진우(이동욱分)라는 의사의 다음과 같은 항변이 흥미로웠다.


‘줄 세우는 경쟁이 싫어서 성과급 도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같은 병을 가진 환자라도 의사 재량에 따라 30, 40만원을 부담할 수도 100만원을 넘게 지불할 수도 있는데 환자의 처지와 상관없이 병원의 이윤창출에 기여한 순으로 가치가 매겨질 수 있는 제도를 반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제도에 길들여지면 과잉진료는 물론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매뉴얼을 위반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에게 적절한 처치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심지어 의료행위 대비 수익이 높지 않은 위급 환자는 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세대간 소통의 어려움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인식 체계나 문화의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다른 종족으로까지 보는 상황인데, 개인적으로 나는 직장에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답답하다고(?) 느끼는 지점이 바로 매뉴얼적인 업무처리 방식이다. 단순하고 사소해 보이는 일도 앞뒤 맥락을 따져보고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특히 타팀과 협업할 때는 내가 할 일을 정확히 끝내는 것 이상으로 상대의 상황까지 살펴야 업무가 제대로 마무리 되는데도 그런 고려가 전혀 없을 때 '왜 저리지?' 싶은 거다. 신기한 건 그렇게 회사라는 공간에서의 발생하는 일에 크게 정성을 들이지 않는 사람일수록 일에서 재미를 못 느끼고, 그 무료함을 보상받기 위해서인지 여가시간에 강렬한 레저를 즐긴다는 거다.


이런 세태를 앞서 언급한 드라마에 적용해보면 여러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여 환자에게 가장 최선인 처치를 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안전하게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병원 일을 하는 의사는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의 상당부분을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에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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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activity, 서핑


그런데 의역학적으로 감정과 생활양식 두 측면 모두 이렇게 냉온탕을 오가면 몸에 노폐물이 생긴다. 이렇게 적체되거나 울결된 것들은 기혈의 순환을 가로막고 몸 안에 습(濕)이 정체된다. 습은 무겁게 가라앉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습에 상하면 몸이 무겁고 피곤해서 아래로 처진다. 오장육부(五臟六腑) 중에서 습사에 가장 영향 받기 쉬운 장부는 비(脾)다. 비장이 건강해야 위에서 충분히 섞인 음식물이 우리 몸에서 에너지로 쓰일 수 있도록 기화(氣化)시킬 수 있는데 비가 습해지면 비기가 약해지면서 전반적으로 순환이 잘 안된다.


이처럼 외부의 습사나 내부에 정체된 습(濕) 때문에 비가 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와 반대의 벡터로 생각이 지나치게 많거나 해서 비의 기능이 약해져서 습이 정체되는 경우도 있다.



비위는 사 思, 곧 생각이다. 생각도 감정의 하나다. 비위가 활발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고 친화력도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생각이 많아서(잡탕으로 뒤섞이는 것)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된다. 생각이 많은 것이 왜 능력이 아니고 병증인가? 이때 생각은 사고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질없는 눈치와 견제, 자의식과 인정욕망 등을 의미한다. 이런 식의 잡념에 사로잡히게 되면 비위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소화불량에 관계불량까지 겪게 된다. 현대인들한테 신경성 위염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과도한 서비스 정신, 콤플렉스의 과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얄팍함 등등으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그린비, 254쪽>

생각도 감정의 하나라는 것도 놀라운데, 생각이 많다는 게 대부분 부질없는 눈치와 견제, 자의식이라는 것. 결국 외부로 시선이 과하게 가 있는 것이 비위의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말에 상당히 뜨끔했다^^;; 니체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고 결국 명확하게 정해진 가치를 외부에서 찾게 된다. 이들과 달리 이른바 ‘고귀한 자’는 일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얼마나 독특하게 발현되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기에, 바깥에서는 자기 힘을 고양시킬 수 있는 타인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다른 것에는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다. 마치 중국 무협영화에서 무술을 수련하는 주인공이 자기보다 뛰어난 무공을 소유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과 같다.


재미있는 건 자기 자신에게서 행동준칙을 찾지 못했던 평범한 ‘왜소한 자’는 이런 ‘고귀한 자’의 우월하고 거침없는 행위를 이기적이라고,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규정하고 이에 반대되는 자신들을 비이기적이고 선하다고 말한다.


원한 자체가 창조적으로 되어 가치를 낳을 때 도덕에서 노예 반란이 시작된다. 여기서 원한이라고 하는 것은 행위에 의한 실제적인 반응을 할 수 없어서 상상의 복수를 통해서만 자위하고 마는 자들의 원한이다. 모든 고상한 도덕이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 데서 생겨나는 반면, 노예 도덕은 애당초부터 ‘외부적인 것’, ‘다른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 부정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이다. 이처럼 가치를 정하는 시선을 바꾸는 것, 이렇게 시선을 자신에게 되돌리는 대신 반드시 바깥을 향하는 것이 사실 원한에 속한다. 즉 노예 도덕이 생기기 위해서는 언제나 먼저 반대 세계, 외부 세계가 필요하다.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연암서가, 43쪽>

이렇게 원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무리들은 평준화를 원한다. 누구도 자기 존재 양식을 탁월하게 가꾸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들도 계속 자기들 쪽으로, 아래로 잡아끈다. 이때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상대를 무섭고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치고 피로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주인이 되어 행동하는 것을 의욕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외부의 평가나 시선이 두려워서 몸을 움츠리면 그것만으로 이미 피곤해져서 어떤 것도 의욕 하지 않게 된 경험이 있지 않던가?


이런 약자의 전략은 습사(濕邪)가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습사도 일정 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천천히 사방으로 퍼지면서 만성화, 장기화되고, 또한 앞서 살펴보았듯이 습에 상하면 몸이 무겁고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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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유 없이 너무 피로하다면 내 몸에 습이 낀 것은 아닌지, 그 습은 내가 일상을 마주하는 태도 어딘가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때라고 알려주는 지표일 수 있다. 너무 습관에만 의지해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시선이 과도하게 외부로만 향해있어서 내 삶을 고귀하게 만들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지점을 뚫어지게 봐야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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