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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카렌 암스트롱 전작 스케치 | 야훼! 이스라엘의 유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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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두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07 11:07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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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5)『신의 역사』



 

야훼! 이스라엘의 유일신

  


김지숙

 

  ‘신’이라는 것에 역사가 있다고? ‘신’하면 일단 하느님을 떠올리는 나로선 '신에 역사가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번 하느님이면 영원한 하느님이지 그 하느님이 중간에 바뀌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카렌은 신의 역사란 “인류가 아브라함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에 대한 역사”(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동연, 1999, 22쪽)라고 말한다.  같은 신이라도 다르게 인식되었다는 것, 즉 신의 관념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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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인간이 창조해 낸 개념이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달라지거나 또는 누구의 관점이냐에 따라 신에 대한 관념은 바뀔 수밖에 없다. 『축의 시대』를 읽으면서 신의 이중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친절하고 자애롭기까지 하니 ‘신’이 이래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것은 예언자들의 열망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던 것이다. 실제로 성경을 읽다보면 같은 사건이 다르게 진술되어 있는데 그것 역시 기록자의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성경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의 역사』는 인간의 관념에 따라 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예를 들면 철학자와 신비주의자의 신 관념은 다르다. 그래서 무신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을 믿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 관념의 신을 안 믿는다는 뜻이다. 결국 유동적이고 잠정적이며, 절대로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 바로 신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니 신이 왜 이랬다 저랬다하느냐고 투덜댈 필요가 없다. 탓하려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바꾸는 인간을 탓해야 할 뿐이다. 신의 관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유용성이기에.

 

 

나는 스스로 있는 나


  그렇다면 인류는 신이라는 관념을 어떻게 해서 만들어냈을까. 카렌에 따르면 인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경이와 신비를 느꼈을 만큼 영적인 존재였다.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친근함을 나타내기 위해 그것을 인격화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 카렌의 결론이다. 말하자면, 인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세계가 신의 세계이며, 이것이 인간 삶의 원형이자 실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대인들은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건립된 성전인 ‘지구라트’에 대해서도 천상에 있는 궁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요컨대 인간의 삶은 신성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 역시 신에서 유래되었다는 통전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비록 인간이 가장 어리석고 바보 같은 신에게서 나오기는 했지만 신과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신이 불멸이라는 것만 빼고는 그들 사이에는 어떤 간극도 없었다. “신들은 인류로부터 차단되어 분리된 별도의 존재론적 영역에 거하지 않았고, 신성은 본질적으로 인성과 다르지 않았다.”(38쪽) 물론 신은 익숙한 존재였지만 인간의 삶에는 개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통전적인 생각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이 신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의 「창세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담은 흙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신과 인간을 확실히  분리시켜 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신이 멀리 있지는 않았다. 아브라함의 신, 엘은 아주 친근하고 가까운 존재였다. 때로는 나그네로, 때로는 친구로 현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꿈속에 나타나 자상한 충고를 해주었다. 신은 어디에서든,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보았다는 생각은 후대 유대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브라함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모세의 신, 야훼에 의해 해방되고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야훼는 이스라엘 신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지만 아브라함이 그랬던 거처럼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신이 아니었다. 야훼는 '소리'로만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야훼가 나타나는 곳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거나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바람이 불었다. 초월적 신의 기미가 나타나고 있었다. 야훼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고, 자상은커녕 오히려 잔인할 정도로 광폭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할 때 이집트인들에게 내린 무시무시한 재앙이 그것을 말해준다. 피로 물든 나일강, 메뚜기와 개구리로 뒤덮인 대지는 약과다.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고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아온 군대와 파라오를 바닷물에 수장시켜버렸다. 훼는 “심히 편파적이어서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단적으로 부족적인 신이었다.(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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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아브라함 때에도 저런 신의 모습을 볼 수는 있었다. 신은 아브라함에게 다 늙어 얻은 아들 이삭을 자신의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했다. 시험이기는 했지만 신은  잔인하고 냉정했다. 사실 신이 인간을 곤경에 빠뜨리고, 인간을 희생물로 삼아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입하라는 것은 고대 세계에는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었다. 신은 무엇이나 요구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모세가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나(56쪽)라고 야훼는 답한다. 해석해보면 “나는 내가 의지하는 바대로의 내가 될 것”(57쪽)인데 이것은 신이 인간의 삶에 강력하게 개입하겠다는 의지의 다름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야훼만을 믿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야훼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모세와 야훼와의 언약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방인의 다른 신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산과 풍요, 폭풍의 상징인 바알에 사람들은 더 마음이 갔다. 언제든지 야훼는 다른 신들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었다. 어떻게 야훼만을 믿게 할 것인가. 기회가 왔다.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자 예언자 엘리야는 바알과 야훼를 시험하자고 제안했다. 누가 비를 불러올 수 있는지 말이다. 일단 각자의 신들을 부르기로 했다. 바알은 자고 있는 건지, 다른 일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여행을 떠난 건지 도무지 깜깜 무소식이었다. 반면, 야훼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말라붙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우가 쏟아졌다. 야훼의 완벽한 승리! 이제 야훼는 전쟁만이 아니라 폭풍의 기능까지 갖추면서 바알을 누르고 이스라엘의 민족적 신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엘리야는 바알을 따르는 성직자들을 모두 죽이는 일을 감행한다. 확실히 야훼 신앙은 잔인한 데가 있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이런 이미지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가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해서 야훼는 이스라엘의 유일신이 될 수 있었을까. 

 

 

정의와 사랑의 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해서 간음, 살인, 사기, 도둑질 등 도덕적 타락이 넘쳐났다. 야훼가 해결해야 했다. 신이 인간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인식이 당연했으니 그런 일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야훼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이상 그 책임도 야훼에게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백성을 야단치고 가르치는 것은 야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야훼는 만연한 사회적 문제에 극도로 예민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던 야훼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고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경고했다.

 

  사실 계시는 선지자들의 마음이 야훼에게 투여된 결과였다. “선지자들이 자신의 인간적 감정과 경험을 아훼에게 적용시킴으로써 그들은 중요한 의미에서 그들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신을 창조한 셈이 되었다.”(99쪽) 선지자들의 분노, 모욕, 부끄러움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야훼의 것이었다. 선지자들의 고통이 클수록 계시는 아주 세게 나타났다. 이사야는 “죽을 것 같은 공포”(88쪽)로서, “예레미야는 관절을 마비시키고, 심장을 쪼개고, 마치 주정뱅이마냥 비틀거리게 만드는 고통으로서 신을 체험했다.”(111) 야훼는 억압받는 사람들, 고아, 과부등 사회적 약자에게 눈을 돌릴 것을, 땅에 떨어진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형식적 제의보다는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민족이기에 야훼가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선지자들은 그런 인식의 틀을 가차 없이 깨버렸다. 야훼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했을지라도 똑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은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제 야훼는 거칠고 강한 전쟁의 신에서 정의와 사랑의 신으로서 바뀌고 있었다. 출애굽 이야기도 억눌린 민중들의 봉기로 변주되면서 약자 편에 서는 야훼를 강조했다. 

 

  그런데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 사상’은 타종교에 대한 배척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보통 중동지역에서는 이방인의 종교에 대한 관대함이 있었지만 야훼 종교는 그 반대편에 있었다. 타종교에 대한 거부를 신성시하고 경건하게 묘사하면서 배타적인 신학의 길로 들어서 버렸다. 이방인의 종교를 우상 숭배로 몰아가며 죄악시 했다. 선지자 제2이사야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함락한 이방인들의 신을 망설임 없이 공격했다. 출애굽 신화와 바알 신의 창조 신화를 재구성하여 야훼가 바빌론으로 추방당한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야훼를 갈망하도록 했다. 마침내 야훼는 이방 종교의 유혹을 누르고 유일신이 되었다. 유대교의 탄생이다. 제2이사야는 이집트, 아시리아에서도 야훼의 복이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민 사상에 대한 편협한 해석이 궁색하고 부적절하게 보일 만큼 야훼는 이제 명실공히 초월적 실재의 상징이 되었다.”(121쪽)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당한 후에 유대교는 새롭게 변모했다. 해방당한 자의 여유인지 아니면 바빌로니아 왕 퀴러스의 이방종교에 대한 관용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야훼는 훨씬 세련되어지고 고상해졌다. 성경기록자 P는 야훼가 지상에 나타나는 것을 ‘야훼의 영광’으로 불렀다. 이는 신에 대한 거룩함과 고귀함의 표현으로 우상숭배를 통제하는 효과로 작용했다. P의 작품으로 알려진 「창세기」에서는 이전의 창조 신화와 달리 폭력성을 완전히 제거했다. 뿐만 아니라 P는 안식일에 대해 신을 모방하는 행위로 해석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신적인 삶을 살 것을 제안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신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종교가 실천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상적 신비주의


  유대인들이 종교에 대한 관념이 실천적 행위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이 컸다. 그리스인들은 이성을 통해, 말하자면 노력을 통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성의 연마를 통해 신 자신을 모방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이다. 사실 이것은 신과의 간극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유대인들에게는 낯선 얘기다. 하지만 매력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참된 지혜란 어떤 것인지 묻기 시작했다. 하여 “철학적 성찰보다는 참되게 사는 법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지혜문학”(129쪽)이 등장할 수 있었다. 성경의 「잠언」이 바로 그것이다. 잠언의 저자는 지혜가 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며 신의 섭리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드러낸 신의 모습이 바로 지혜라고. 결국 지혜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자 신과의 합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런 인식은 유대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일상의 소소한 것에도 신이 임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키워나갔다. 그리하여 ‘남이 자신에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것, 즉 자비와 공감을 토라의 핵심 계율로 정리해 낼 수 있었다. 이제 야훼는 저 먼 곳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인간과 함께하는 존재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신은 교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랍비들은 신에 관한 정식 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거의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존재로서의 신을 경험했다. 따라서 그들의 영성은 “일상적 신비주의”라고 표현되었다.”(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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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인간의 행위로서 드러나는 것, 이것을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내 안에 신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내재적 관념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인간을 성스러운 대상으로 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렇게 야훼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자애와 겸손, 공감을 가르치는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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