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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홍루의 꿈, 석두지몽 | 리뷰쓰기 ⑦ 가부의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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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두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7-24 10:23 조회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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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리뷰쓰기 ⑦-上



가부의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





김희진(감이당 금요 대중지성)


오랜만에 보옥이 얘기를 해보자. 보옥은 이제 어엿한 청년(!), 아니 청소년(?)이 되었다. 영 어감이 이상하다. ‘어린이’라든가, ‘청소년’과 같은 단어는 근대와 함께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그땐 그 연령대의 사람을 무어라 지칭하고 분류했을까? 사실, 무엇을 인식하고 분별하는 것은 언어로부터 나온다. 원리로 보자면 언어 이전에 그런 분별이 먼저 생기는 것인데 그것을 불교에서는 ‘명언종자’라 하니, 인식과 언어는 그렇게 동시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근대 이전에 그런 단어가 없다는 것은 그런 나이대의 사람을 특별히 분류하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보옥은 그냥 보옥이다. 청년이 되지도, 청소년이 되지도 않았지만 왠지 말투는 조금 점잖아졌고, 누나들에게 존댓말을 쓰기도 한다. ‘좀 컸다.’ 두 시녀가 쫓고 쫓기는 장난을 치다가 이홍원에 들어서는 보옥과 부딪혔는데 보옥은 ‘나 없는 동안 재미있게 놀고 있었구나’ 라고 하면서 왼손에 한 명, 오른손에 한 명을 붙잡고 즐거워하며 집에 들어선다. 아주 사소한 장면이지만 나는 이 장면을 눈앞에 그리며 ‘어머~ 컸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올 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봄을 지나면서 나보다 키가 커졌다. 이 나이가 되면 몸이 갑자기 커지고 무거운 것을 스윽~ 들기도 해서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보옥의 말투가 갑자기 달라지거나 힘도 세지는 등, 컸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하는 장면을 마주칠 때마다 자꾸 깜짝 놀란다.



음지사건1. 이홍원의 밤잔치


보옥의 생일날이다. 보옥은 여기 저기서 들어오는 축수를 받고, 집안 어른과 유모까지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린다. 잠시 쉬고 있는 틈에 영국부의 시녀들이 우루루 몰려든다. “어서 국수 한 그릇씩 내놓으세요!”라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잠시 후에는 희봉의 시녀인 평아가 보옥의 특별 초청에 응해서 꽃처럼 단장을 하고 찾아온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평아도 이 날이 생일이다. 가부에 사람이 워낙 많으니, 생일이 겹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 날 생일을 맞은 사람은 이 둘 말고도 보금과 형수연이 더 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고 계속 먹고 마시고, 청하고 찾아온다. 그래서 도대체 생일 날 몇 번이나 상을 차리고 놀았나 가만히 세어봤더니 세상에, 셀 수가 없다. 영국부의 주방에서 국수 삶고 요리 하는 동안, 탐춘 등의 자매들은 자기들 끼리 돈을 모아서 대관원에서도 따로 조촐하게 차리자고 한다. 먼저, 아침은 영국부의 대청에 나가니 국수가 차려지고, 정작 보옥은 거기선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설씨네 집에 가서 국수를 먹었으며, 술도 한 잔 한다. 곧 대관원으로 다시 돌아와 작약꽃밭의 홍향포에서 온 집안 사람들이 함께 간단한 공연도 보면서 잔치를 연다. 이것이 점심. 빠지지 않는 주령놀이. 모두들 벌주에 기분이 흥청망청이다. 상운은 취기를 못이기고 바깥의 꽃나무 밑 돌의자에서 잠이 들어버렸는데, 떨어지는 꽃잎에 몸이 반 쯤 덮였다. 모두들 상운을 놀리는데, 나는 그림처럼 예쁜 이 장면을 왜 놀리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보옥은 잠시 후, 이홍원에 들어가 심심해하는 시녀들을 달래며 밥을 한 번 더 같이 먹고는, 밤에 화끈하게 놀아보자고 기대하라고 한 후, 또 다시 홍향포. 이제는 저녁이 차려졌다. 윽! 보옥의 배가 남아날까? 역시나 “보옥은 차에 밥을 반 공기 말아서 먹는 흉내만 내다가 식사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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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먹고 마셨으나, 보옥이가 기대하고 있는 본격적인 잔치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이홍원, 즉 보옥의 처소에서 보옥이의 시녀들과 몰래 여는 잔치다. 시녀들은 너무 신이 나서 보옥의 이번 밤잔치 주안상을 자기들이 돈을 모아서 낸다. 집사 어멈이 밤 순찰을 돌러 왔을 때는 모두 시치미를 뚝 떼더니 그녀가 나가자마자 주안상이 차려진다.



다들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머리 장식을 풀고 웃옷을 벗었다. 격식에 맞는 치장을 벗어던지고 모두들 머리는 적당히 묶어서 늘어뜨렸으며 몸에는 긴 치마와 짧은 저고리만 걸쳤다. 보옥은 붉은 면사 적삼을 입고 아래는 초록색 바탕의 검은 물방울무늬 겹바지를 입었는데 대님은 풀어버렸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매괴꽃잎과 작약꽃잎을 넣은 옥색 베개에 기대어 방관과 화권놀이부터 시작하였다. (홍루몽 4권, p.86)


원래도 권위의식이라고는 1도 없는 보옥이지만, 이 자리에서 보이는 보옥이의 모습은 자유로운 영혼인지, 주색잡기의 한량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그저 재밌게 노는 것 하나에만 집중한다. 40개의 찻잔 크기의 접시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져있다. 시녀들과 보옥은 문득 보차와 대옥, 탐춘을 불러다 같이 놀자고 하는데, 몰래 노는 애들치고는 꽤나 대담하게 “당장 대문을 열게 해서 각자 아가씨들을 부르러” 갔다. ‘끕’이 낮은 시녀를 보내놓고서 마음이 안 놓이는지 습인, 청문 등은 자기들이 직접 가서 끌고오자며 (감히 아가씨들을!) 뒤따라 집을 나서기까지 하니... 이건 정말 한창 때 좀 놀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고 그대로 묘사할 수 있는 분위기 아닌가! 사실 조설근은 대단한 주당이어서 취해서 미친 사람처럼 구는 주정을 자주 했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친구들은 그런 모습을 사랑하여 시로 읊었다.^^


아가씨들까지 불러와 이어지는 재미난 밤잔치는 주령놀이와 함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경(새벽 두시)까지 이어졌다. 더욱 웃긴 것은 다음 날 술이 깨고나서 시녀들의 반응이다. 자기들이 노래를 한 곡조씩 했다는 걸 상기하면서 얼굴을 싸쥐고 부끄러워하고, 다른 처소 시녀들에게 자기들이 몇 시까지 놀았는지, 술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를 떠벌리며 즐거워한다. 이런 거... 너무 익숙하잖아.^^


이렇게 《홍루몽》에서 보이는 과하게 자세한 서술기법은 이전의 통속소설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언젠가부터 이 책장을 넘길 때, 조급증이 사라지고 무목적적인 독서상태가 된다. 포기한 채로 책의 속도만큼 느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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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밤잔치는 아무리 몰래 논 것이고 밤의 사건이라고 해도, 음지라 명명할 정도의 어두움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흥겨운 잔치에도 내리막의 암시들이 등장한다. 시녀들과 주령놀이를 하다가 보옥이가 뽑은 산가지에 “도미화가 피어난 곳에 꽃의 일은 마무리 되도다”라는 시구와 “좌석에 앉은 사람이 모두 석 잔을 마시고 봄을 보내시오.”라는 주령이 써있는 것이다. 보옥은 이 산가지를 얼른 감추고 얼버무려 버린다. 이 산가지가 나오면 꽃이름 뽑기 놀이를 그만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1권에서 ‘호료가好了歌’로 이 소설이 시작했고, 또 홍루몽을 끝남의 철학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옥이 가장 못견뎌 하는 것이 바로 끝남과 헤어짐이다. 천리 길 차려진 잔칫상도 끝날 날이 있다더니, 이홍원의 밤잔치도 새벽 2시를 못 넘기고 모두 쓰러졌다. 끝남은 애석해 할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보옥이가 그것을 깨닫는 날, 보옥이의 봄날도 끝나는 것이겠지.



_하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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