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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세포들로 이루어지는 유기체, 그리고 사회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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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2-23 22:55 조회2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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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들로 이루어지는 유기체, 그리고 사회 - (3)

 

 

 

 김태진

 

 

 

 

 

옛날 사람들은 심(心)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
혹자는 복부(腹部)에 있다고 하고,
또 혹자는 두부(頭部)에 있다고 해서
끝내 의견을 통일할 수 없었다.
이는 인신(人身)의 생리(生理)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야마구치 마츠고로(山口松五郞), 『사회조직론(社会組織論)』(1882)

세포설과 정치사상

 

세포설과 정치사상. 이 둘이 연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스펜서의 논리는 바로 세포설이라는 당대의 자연과학적 사실로부터 개개의 시민들이 자율적인 유기적 사회를 도출해내고 있다. 생물에서는 감각을 갖는 세포와 그렇지 않은 세포로 나뉘지만, 사회유기체 내에서 세포에 해당하는 시민들은 모두 각각 감각을 갖는다. 이를 통해 자유롭게 결합하는 과정이 사회라고 스펜서는 파악한다.

그런데 스펜서의 논리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그는 사회 유기체와 생물 유기체 사이의 유비를 상세히 기술하고, 통합된 신경계, 신경중추, 그리고 두뇌 자체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의 진화를 국가의 증대하는 통합으로 설명한다. 그가 제시한 생물학적 세계에서 두뇌의 끊임없는 발달과 통제력의 증강이야말로 진화 과정의 거의 모든 목표가 된다. 이는 유기체 전체의 진화는 부분이 전체의 복지에 종속되는 정도를 점점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서도 엿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유비가 도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은 국가의 역할이 부단히 증대되는 것과 사회의 모든 하위기관이 국가의 목표에 종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논의는 이러한 예상을 엇나가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것이 스펜서를 논하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그의 자유주의 철학과 유기체 이론 사이의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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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의 논의는 이러한 예상을 엇나가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는 점은 그가 돌연 개체 유기체와 사회 유기체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논하는 쪽으로 논점을 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적 전환은 분명 이상한 면이 있다. 생물학의 발달을 통해 일반 유기체와 사회 유기체간의 공통점이 파악될 수 있음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반 유기체와 사회 유기체의 차이가 어떻게 해서 정당화되는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스펜서의 말대로 사회에는 따로 ‘감각중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즉 사회 유기체가 생물 유기체와 유사한 듯 보여도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들이라 할 수 있는 단위인 개인들에게 감각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생물학에서 곧바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 생물을 보는 관점에 개입된 것이라 보아야 할지 모른다.
 
스펜서가 『사회유기체론』에서도 밝히고 있듯 그의 유기체에 대한 생각은 당시 생물학의 발달에 기인한 것이었다. 당대의 새로운 생물학 발전 중에서도 세포설(cell theory)이 핵심이었다. 세포설은 1830년대 후반 테오도르 슈반(Theodor Schwann, 1810–1882), 마티아스 슐라이덴(Matthias Schleiden, 1804–1881)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세포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세포가 동물과 식물에 공통적인 것으로서 생명의 기초단위라고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 후반부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근대적 생명관의 제일 요건이 되었다. 모든 생명의 근본이 기존에 주장되었던 것과 같은 유기체(organism)나 기관(organs) 혹은 조직(tissues)이 아니라 개별적 세포(individual cell)라고 주장한 논의가 당시의 정치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피르호의 세포국가론

당대의 의사이자 정치가였던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1821–1902)의 논의는 스펜서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는 세포야말로 살아있는 것으로, 모든 세포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른 세포에서 비롯된다(omnus cellula a cellula)는 유명한 말로 학계를 뒤집었다. 이러한 이론에 따라 그는 몸 전체가 병들 수 있다는 개념에 회의적이었고, 당시의 체액병리학과 고체병리학을 ‘전제적 독재’라 부르며 개별 단위에 대한 치료를 선호하였다.

그는 모든 병리현상은 세포의 현상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세포병리학자였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평등주의의 독일진보당을 창설해 프로이센 하원의원으로서 군비증강을 실시하려는 비스마르크에 끝까지 대립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질병이란 연구실에서의 연구뿐 아니라 사회정책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역시 그가 이후 정치적 활동에 매진하게 한 이유였다. 비스마르크의 군비증강에 쓰일 돈은 당연히 위생 사업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고등동물, 특히 인간을 복합체로서 파악, 이러한 특징이 이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활동의 공동의 결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피르호는 사회적 은유와 유비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인간의 신체를 독립적이고 협동적인 시민들의 사회로 유비한다. 명성을 얻게 된 저작 『세포병리학』(Die Cellularpathologie, 1858)에서 그는 생물학과 정치학을 연결지어 ‘세포국가’(Zellenstaat)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그는 인체를 동등한 능력을 갖춘 ‘세포 민주주의’(cellular democracy) 또는 ‘세포 공화국’(republic of cells)이라는 생각을 개진한다. 피르호는 생명의 중심이 다양해짐으로써 생명체의 통일성이 상실될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비록 개별 존재들이 똑같은 능력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지만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개인들의 자유국가를 구성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세포설에 의한 것이었다. 이처럼 세포국가라는 유비는 단지 수사가 아니라 그의 생물학 이론의 핵심적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세포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조직된 전체라는 개념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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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등동물, 특히 인간을 복합체로서 파악,

 이러한 특징이 이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활동의 공동의 결과로 보았다. 


 
당시 피르호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에게 현미경을 통한 관찰들이 이러한 생각들을 가능케 해주었다고 평가된다. 이는 신체의 각 부분을 이루는 세포들이 놀랄만큼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정자세포가 활동적인 단일 세포였다는 것이 발견되거나 백혈구의 아메바운동, 배아의 발전 등이 하나의 세포인 난자에서 반복된 세포분열의 결과라는 점들이 속속 발견된 것들이 이 시기 과학사의 새로운 발견들이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과학적 발견들이 그의 의학관을 만들었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피르호는 생물학적 사실들을 공화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사상에 끼워맞추어 다세포적 유기체로서 개인들의 자유로운 국가를 그려낸다. 물론 그가 세포설을 통해서 공화주의자가 되었다거나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에 세포의 특징들을 그렇게 파악하였다거나 확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자연의 연구자로서 오직 공화주의자밖에 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서도 이러한 일관성을 발견해, 인체생물학에 대한 견해가 자신과 다를 경우 정치적 입장 역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처럼 그는 정치적 신념이 필연적으로 몸에 대한 과학적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역으로 자신이 가진 신체관을 모형 삼아 이상사회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에게 세포이론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역으로 생각하자면 그러한 신념을 통해 세포설을 해석한 것이었다. 세포가 각각 생명력을 가진 개체라는 이론 속에서 그는 따로 중앙에 집권화된 통제, 즉 군주가 필요 없는 신체와 정치체를 그려낸다. 이로써 단일지배라는 생명력 원리에서 떨어져 나온 통치권은 생명체의 개별 기본입자로 이양되었으며,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나 개인적 차원에서 신체를 해석하는 데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가 개체적인 것(individual)을 생각할 때 이는 완전히 독립해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세포들은 생명을 위해 서로 의존관계에 있으며, 이는 사회에 있어서의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가 비판한 것은 전체주의적 집중 형태였지 개체들의 고립된 모델은 아니었다. 피르호는 국가유기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비판한다. 이 용어가 목적의식적으로 수립된 전체와의 관련성 속에서만 부분들을 이야기하게 만들어 부분들이 전체에 종속되어 국가나 사회 밖에서는 아무런 목적을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서 생각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유기체란 반드시 중앙적 통제나 수직적 위계성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스펜서 역시 피르호와 마찬가지로 개인에 대한 국가의 통제에 명백히 반대하며 국가를 무시할 개인의 권리까지도 주장한다. 스펜서가 사회 내에서는 개별 세포들이 모두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며 사회유기체의 수직적 모델을 거부한다고 할 때 피르호의 자유주의적 신체관과 정치관과 겹쳐지는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피르호와 스펜서의 연관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기반을 두고 있던 당시 신체에 대한 관점은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공통적인 에피스테메(episteme)를 보여주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스펜서의 유기체론의 자유주의적 측면이 논리적 정합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나아간 형태가 피르호의 신체관/국가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펜서에게 유기적인 것이란 개별 세포들의 독립성을 기반으로 그것들 간의 자유로운 협동관계로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스펜서에게 자유주의와 유기체는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뇌와 소화기관

사회유기체에 대한 논의는 스펜서가 사회이론을 집대성한 『사회학원리(Principle of Sociology, 1876)』에서 이어진다. 그는 ‘군사형 사회’(the militant type of society)와 ‘산업형 사회’(the industrial type of society)를 구별하며 ‘평화로운 산업형 사회의 특징은 중앙권위가 비교적 약하고, 개개인의 사적 활동에 거의 전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중앙집권화된 통제, 통일된 행동이 더욱 유기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면 스펜서에게도 군사형 사회가 산업형 사회보다 더욱 유기체에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회유기체설은 사회를 가치적으로 개개인의 상위에 두는 ‘실체개념’이 아니라, 사회 내부에서 개개인의 자발적인 협동관계를 의미하는 ‘관계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적 협동에 기초한 군사형 사회보다도 자발적 협동에 기초한 산업형 사회야말로 더욱 고도의 사회유기체라 할 수 있다.

스펜서에게 군사형 사회가 ‘두뇌’가 지배하던 시기라면 이는 아직 산업형 사회로 넘어가기 전의 단계로 산업형 사회에서 두뇌는 점차 위축되어 흔적으로만 남는다. 두뇌와 대비해 그는 산업 체계를 자율적인 소화기관으로 유비한다. 동물의 진화는 신경계의 승리로 향하지만 사회 유기체의 진화는 소화기계의 승리로 향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군사형 사회에서는 사회의 유지가 주요한 목적인 한편 각 성원의 보호는 이차적인 목적이라는 점에서 산업형 사회와 다르다. 이때 군사형 사회는 권위에 대한 복종이 최고의 덕이 되며, 주변의 적대적인 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적 기구는 집권화되고 통제적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모든 부분이 완전히 종속되어 ‘강제적 협동’(compulsory cooperation)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는 개체유기체에서도 외부적 조직이 주요한 신경중추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스펜서는 말한다.

반면에 산업형 사회는 국민의 의지가 최고로, 지배자는 단순히 국민의 의지를 수행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사회의 다양한 활동으로 행해지는 ‘자발적 협동’(voluntary cooperation)이 이뤄지며, 개체유기체에서 부양적 조직과 마찬가지로 통제장치로서가 아닌 대리적, 분권적 권력을 통해 구성된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이념형으로서 이처럼 두 가지 사회로 확실히 구별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사회진화에 따라 군사형의 우위로부터 산업형의 우위로 변화한다고 스펜서는 보았다.

이러한 대비는 근대 일본의 사상가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는 『장래의 일본』(1886)에서 ‘무비주의’-‘귀족사회’-‘완력사회’와 ‘생산주의’-‘평민사회’-‘평화사회’의 대비 속에서 ‘군비주의’로부터 ‘생산주의’로의 역사적 진화를 설명한다. 그가 군비주의 사회에서 결합은 강박의 결합이고, 생산주의 사회에서 결합은 자유의 결합으로 구별하고, 무비기관이 발달한 사회를 불평등이 지배하는 귀족적 현상임에 비해 생산기관이 발달한 사회를 평화적, 평민적이라 할 때 이는 정확히 스펜서의 구도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앞서 보았듯 스펜서는 국가를 개인을 위한 ‘인위적’ 기관으로 규정, 국가를 인민의 상호보호를 위한 그들의 자발적 단결의 결과물로 상정한다. 대리의 개념 속에서도 신체의 목적은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의지보다 각각의 개체적/개인적 감각을 더욱 잘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신경’이 위치한다. 이는 개체를 강조하면서도 중앙의 집권화를 부정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던 스펜서의 고민의 결과였을지 모른다. 따라서 스펜서의 이른바 ‘이중의 혼’은 그의 유기체의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개인주의적 혹은 국가주의적 모습의 스펜서를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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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의지보다 각각의 개체적/개인적 감각을

더욱 잘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신경’이 위치한다.

그러나 도쿠토미 소호는 이후 스펜서의 유기체를 국가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 이는 토쿠토미가 청일전쟁 이후로 급격하게 전향하는 사실이 잘 보여준다. 그는 『대일본팽창론』에서 일본의 국가생존을 위해 그리고 일본이 새롭게 점한 지위를 유지, 확장하기 위해 군비 확장을 금지해서는 안 되고, 무비기관의 확장과 함께 생산기관의 발달을 ‘병행병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 넘어가지 못한 당시의 일본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발언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스펜서의 유기체로서의 사회가 수평적이면서 각 개체들의 자율성을 보완하는 신경시스템의 강조를 통해 개체주의적, 자유주의적인 성격을 보인다고 할 때 이러한 논리가 일본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신체관의 불일치 역시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과학과 사상의 분리

앞서 보았듯이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유기체(organism)의 개념은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에 주목해, 이를 주권의 소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해 왔다. 그들에게는 세포설이 의미했던 정치사상적 맥락이 사상된 것이었다. 스펜서에게 보이는 유기체와 자유주의간의 이중성이라는 측면이 세포설을 기반으로 할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일본에서 세포에 대한 논의는 189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1890년 이전에 메이지 일본에서 세포설은 이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단지 사실로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즉 세포설은 ‘발안’되어야 할 학설이 아닌 ‘발견’되어야 할 객체로서, 세포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논리구조보다 오히려 다른 무엇 가령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적 차원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세포설이 갖고 있는 기계론적 사유방식, 즉 각각의 독립된 단위들로 구성된 전체라는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은 일본에서는 낯선 것이었다.
 
이는 스즈키 사다미(鈴木貞美)가 일본 진화론 수용의 특징 중 하나로 서구의 진화론이 바탕을 두고 있는 생명관과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진화론 사이의 괴리를 들고 있는 점과 관련될지 모른다. 그 논의의 기반이 되는 생명에 대한 서구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개별적 과학이 과학으로서가 아니라 인생관, 세계관 수준에서 수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사상 수용과정에서 나타나는 한계로 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어쩌면 서로 다른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대 동아시아에서 스펜서의 social organism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일종의 변형과 굴절의 양상이 보인다. 그것은 역사적 맥락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기저에 깔린 신체관의 차이, 좀 더 넓게는 생명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펜서에게 사회를 유기체로서 설명하는 논의는 단순히 유비나 은유 차원으로 생각했던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개체와 사회 양자의 구성원리는 동일한 생물학적 논리에 기반을 둔다고 믿고 있었다. 그의 ‘종합철학체계’(synthetic philosophy)는 그런 점에서 모든 분과학문을 아우르는 하나의 정합적이자 완성된 이론체계였다. 그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차치하고 이는 당시 19세기 철학의 하나의 중요한 핵심 테마였다. 생물학은 모든 학문을 바라보는 기본적 시야 내지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었으며 이는 사회나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적용되었다. 따라서 스펜서에게 생명을 보는 관점과 사회를 보는 관점을 둘로 쪼개어 나눌 수 없다. 그러나 근대 일본으로 이것이 수용될 때 이 둘이 함께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생명을 보는 관점이 사회를 보는 관점과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동아시아에서의 유기체 개념의 수용 과정에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는 ‘organism’과 ‘유기체’라는 개념어 사이의 간극, 두 세계가 갖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일지 모른다.

※ 이 글은 『Trans-Humanities』 9권 2호(2016)에 실린 글입니다. 자세한 주석이나 참고문헌은 그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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