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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공동체의 토대, 효율적인 공산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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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1-24 22:30 조회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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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물교환 신화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해 이른바 행동 경제학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학만큼 대접받는 학문도 없기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고 그 합리성이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 합리성은 이기적이라는 말과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것이 인간을 바라보는 경제학의 기본 프레임이기에 행동 경제학은 주류경제학에서 상당히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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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었기에 가장 합리적인(?!) 결혼을 할 수 있었던 드라마 주인공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 감정이나 명분 등은 모두 괄호에 넣고 자기의 이익만을 따져서 실행하는 경우가 있을까? 오히려 감정에 얽매여서 나의 이익 따위 내팽겨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그러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과 별개로 경제학의 위상 덕분에 우리에게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가정은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폐는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전제 또한 의심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일단 우리는 상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화폐라는 단일한 척도가 없는 사회에서 내가 쌀을 가지고 있는데 구두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일단 내가 원하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 쌀이 필요한지 알아봐야 하고, 또한 그가 쌀을 원한다 해도 쌀과 구두의 교환비율도 고민해야 하니 이 얼마나 복잡한가.
이런 복잡다단한 상황을 간명하게 해결하기 위해 모든 가치에 대해 단일한 척도를 제공하는 화폐가 생겨났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인류학자 그레이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화폐는 물건들을 구입하는데 쓰이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는 데 주로 이용되었다. 무엇보다도 결혼을 성사시키고 분쟁을 특히 살인이나 상해로 야기된 분쟁을 해결하는 일에 쓰였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술에 취해 다투다가 다른 사람을 죽였다. 그런 경우 그 사람은 살인 행위에 대한 깊은 죄책감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그 행위가 반목의 씨앗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이 죽인 사람의 가족들에게 소중한 물건을 줄 수 있다. 우리의 화폐도 이화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되었다고 믿어야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예를 들어 ‘pay’라는 영어 단어도 원래 ‘pacify(달래다), appease(가라앉히다)’라는 뜻의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부채, 그 첫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107~108쪽)

보통 물물교환은 이방인들 사이, 심지어 적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중략> 축제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물물교환은 그런 거래가 아니었더라면 서로 적(敵)일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전투 발발의 위험이 높은 가운데 이뤄졌다. 그 민속학자의 연구를 믿는다면, 만일 한쪽이 훗날 이용당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두 집단 사이에 쉽게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부채, 그 첫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57쪽)

인류학적으로 보면 일단 화폐는 물건을 구입하는데 쓰이지 않았고, 서로 친분이 있는 같은 부족민들간에는 선물경제가 작동할 뿐 물물교환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즉, 내가 필요한 구두는 타인에게 선물로 받고 또 내가 가진 쌀은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방식으로 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에, 물건을 교환하기 위해 화폐가 발명되었다는 경제학의 가정은 현실적인 근거가 약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전제이기에 신화라고 일컫는 것이다.

2. 알고 보면 효율적인 공산주의 관계

생각해보면 지금은 가족 관계 안에서만 재화의 조건 없는 순환이 가능하지만, 공동체가 언제든 내가 필요한 것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자기 것을 풀어놓는 걸 거리낄 이유가 별로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에 대한 배타적인 감각은 상당히 느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족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른바 원시사회는 일정 정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특히 먹을 것과 관련해서 그 원칙이 더욱 강력하다.

식량은 가족끼리만 먹지 않는다. 식량은 함께 살아가는 무리, 심지어 30명 이상의 무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항상 공유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중 일부만이 매일 숲으로 나가 채취하고 사냥하지만, 매일 사냥한 고기와 채취한 식량은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나눈다. (『어제까지의 세계』, 제레드 다이아몬드, 446쪽 )
누에르 사람들이 자기 진영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모든 공동 소비품에 대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곡식과 담배, 도구와 농기구 등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 물건들이 생기기 무섭게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부채, 그 첫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57~58쪽)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무리사회에서 식량은 아예 구성원 모두의 공동 소유로 다뤄지고, 그 외 물건들에 대하여도 필요하면 이웃의 것을 가져다 쓴다. 이 때 이들은 타인의 증여에 대해 부채의식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당연시할 정도로 공산주의적 공통 감각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아체족의 경우 재화와 독점적 관계를 맺는 것을 강력하게 차단하기 위해 자기가 사냥한 고기는 못먹는 터부가 있을 정도다.
이런 내용을 접하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이 풍부한 사회라는 이미지가 그려지고 마음에서 동경이 일어난다. 그런데 내가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이라 매번 베푸는 사람 쪽이라면? 그래도 아름다운 이상향이라는 그림이 그려질까?
회사에서 업무조율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업무능력이 좋은 사람에게 까다롭고 다루기 어려운 일이 종종 맡겨진다. 이것이 일정한 보상으로 이어지면 어느 정도 위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업무를 정량적으로 수치화해서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번 그 사람의 노고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이란 각자 제한된 시야에서 상황판단을 하게 마련인지라 항상 자기가 가장 고생하는 것 같을 뿐, 본인 이외의 타인이 일을 많이 해서 평가가 좋은 건 당연하다고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객관적 수치화도 쉽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특정인에게 혜택을 준다는 건 명분이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같은 월급 받고 누구는 조금 더 쉽게 가고 누구는 고생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네가 타고난 능력이 좋으니 그걸 베푸는 건 당연한거다” 혹은 “유형의 보상이 없어도 일 잘하는 직원이라는 평판이 있으니 그것도 일종의 보상이다. 그러니 만족해라” 라는 말은 딱 봐도 통하지 않게 생겼다^^;; 여하튼 각 개인의 처지나 상황은 논의 밖에 놓고 이익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에서조차 이렇게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그레이버는 공산주의적 관계는 효율성을 위해 작동한다고 말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이 도덕적 가치가 아닌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니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놀라울 따름이다.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사람들은 예외 없이 공산주의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만약 고장 난 수도관을 고치던 누군가가 “그 렌치 좀 줘요”라고 말하면, 동료 근로자는 “그러면 그 대가로 뭘 준 건데?”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엑슨 모빌이나 버거킹 또는 골드만삭스를 위해 일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효율성이다(“공산주의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통념에 비춰보면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일을 진정으로 처리하고 싶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 일을 분배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이처럼 공산주의 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두고 자본주의의 치욕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부채, 그 첫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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