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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초기의 분노는 유예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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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1-10 09:27 조회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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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의 생리적 메커니즘 – 도담강의


초기의 분노는 유예시켜라!

 

박윤미 정리

 

 

간화상염의 병증까지 진행이 된 경우엔 한의원에 가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을 권한다. 훨씬 좋아집니다. 화기가 오르는 것은 한의학에서는 체온의 발열이 아니에요. 그런 것도 있기는 있지만. 양방에서의 체온 개념은 36.5도잖아요. 한의학에서는 36.5도라도 내가 열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가 되게 중요합니다. 열감을 느끼면 화증이에요. 많이 느낄수록 그래요. 그러면 양방에서는 36.5도이기 때문에 이걸 해열제를 쓸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느 부위에 몰려 있냐’ 이런 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 열을 꺼내야 한다고 해서 약들이 다 기미론이라고 약이 차냐 뜨거우냐 다 정해져 있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강 같은 건 굉장히 뜨거운 약으로 씁니다. 차가운 것 중에는 뭐가 있을까요? 뭐 율무, 우리가 아는 것 중에는 또 알로에 그 정도. 뭐 대황이나 황련 한약재에서는 그런 것들 있겠고. 그러니까 뭐냐면 이 몸에 체온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고 열감을 내려주는 것이 되게 중요한 겁니다. 그것만 내려가도 훨씬 나아요. 내 안에서 열감이 떨어지기만 해도 마음이 훨씬 안정적이 돼요. 약을 좀 드시는 것도 이제 방법이구요. 일단 심장과 간의 열을 내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약을 먹으면 한결 낫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여전히 주체의 변형이고, 새로운 시절의 리듬을 타는 것이다. 우리는 그 큰 그림과 함께 화의 원인, 그리고 분노를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편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제 사실 한의학을 적극적으로 배우는 교실이라면 여기 방제들이 나오겠죠. 예를 들면 뭐 사양산이라든지 또 천왕보심단이라든지 천마구등음이라든지 이런 약들이 나오거든요. 그게 다 간열을 좀 떨어뜨려주고 그 다음에 흩어주고 뇌를 안정시켜주는 약들이거든요.

 




분노는 이성이 존재하는 곳에서 생겨난다
자, 이제 세네카가 쓴 대하여』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동물은 격정과 비슷한 몇몇 충동을 느끼긴 해도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인간적인
   격정은 경험하지 못한다.” 
   (『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김경숙 옮김, 36쪽)

 

 동물들의 공격성은 영역 사수나 짝짓기 그리고 먹이를 사냥할 때 주로 발현된다. 그것은 일종의 흥분과 자극일 뿐 인간이 내는 분노와는 다르다는 것이 세네카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동물은 화를 내지 않는다가 세네카의 주장인 거예요. 또한 세네카는 분노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일시적인 광기” 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광기는 비이성적 표상이다. 그렇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세네카는 야생동물에겐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분노는 오직 이성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생겨난다” 그러니까 이 말은 분노를 일으키는 ‘광기’가 이성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분노는 비이성적인 일탈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또 야생적 본능이 아니라 문명의 상징인 말(언어)과 함께 만들어졌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상식과는 좀 다르죠, 그렇죠. 우리가 막 화를 낼 때 이성을 잃어서 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인지 한번 보기로 할게요.
 그렇다면 상대의 말을 듣고 바로 ‘욱’하고 올라오는 것은 무언인가? 하버드 대학의 테일러 박사는 분노의 수명을 90초로 보았다. 화가 일어날 때 뇌에서는 특정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것이 작용하는 시간이 90초라는 것이다. 90초 이후에는 화를 지속시켜야 할지, 그쳐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연구에 따르자면 분노는 최초의 호르몬 반응인 90초와 그 이후의 분노로 나뉘는 셈이 된다.(여기선 편의상 초기와 후기로 나누자) 그러니까 욱하는 마음은 바로 이 초기의 흥분상태인 것이다. 세네카는 이 초기의 자동반응을 분노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거는 동물이 울부짖는 거예요. 그냥. 이때 화를 낸다거나 이거는 분노가 아닌 거예요. 그냥 뭔가 동물의 반응 같은 거예요. 왜냐면 초기의 반응은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 본능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이성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격정이다.

 

  “우리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믿을 때, 우리를 뒤흔드는 최초의 정신적 충격은 이성과는
   무관하다” …  이것은 격정이 아니며 격정의 서곡이다.”  
   (『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김경숙 옮김,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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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이성에 의해 또 야생적 본능이 아니라 문명의 상징인 말(언어)과 함께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를 초기와 후기, 각각의 패턴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써야 한다. 이 글에선 주로 후기에 일어나는 분노, 즉 이성과 언어에 의해 구성된 격정에 중점을 둔다. 그것이 초기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따져봐야 할 것이 더 복잡하기 때문이고 또 초기보다 의지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초기 분노는 어떻게 할 수가 없죠. 이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일어나는 건 뭔가 이성적으로 개입하기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러면 초기에 일어나는 분노유발 감정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세네카는 그 해결책으로 분노의 표출을 좀 유예할 것을 권한다. 이때는 뭘 전략을 짜지 말고 그냥 좀 참아, 이런 거죠. 그런데 진짜 초기에 화가 날 때는 엄청 긴 시간이거든요. 딱 얘기를 할 때 화가 나잖아요, 그러면 1분 30초 동안 더 들어야 해요. 그런데 1분 30초 동안 들었는데 맨 마지막 말에 더 화가 나면... 다시 1분 30초를...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오든지. 어쨌든 유예시키라는 거예요. 초기의 분노를 유예시키면 “잠시 기다리는 동안 처음에 끓어오르던 기세는 누그러지고 마음을 뒤덮었던 어둠은 걷히거나 최소한 더 깊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플라톤의 우화를 하나 소개한다. 어떤 일로 플라톤이 노예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그는 지체 없이 노예의 웃옷을 벗기고 채찍을 들었다. 그 순간, 플라톤은 자기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팔을 공중에 치켜든 채로 한동안 서 있었다. 한 친구가 이 광경을 보고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플라톤이 답했다. “화를 내고 있는 한 사내를 벌주고 있는 거라네.”(184쪽) 화를 내고 있는 한 사내는 자신을 얘기하는 거죠. 이렇게 들고 서 있는 거예요. 이렇게 벌주는 거죠. 그 노예는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빨리 때리려면 때리지. 공포죠, 이게. 차라리 그냥 바로 맞는 게 낫지. 지금 언제 때릴지도 모르고. (하하하) 그리고 플라톤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러니 필요 이상 심하게, 즐거이 남을 벌주고자 할 것이다. 자기 자신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노예를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된다.” (185쪽)

 





초기의 분노를 유예시켜야 하는 이유
 초기 분노에 대응하는 이러한 방법은 간단하지만 효과는 크다. 초기의 감정상태가 후기 분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초기에 일어난 감정에 이끌려 화를 내면 일시적으로 간열이 뜬다. 초기가 지나고 후기가 찾아오면 대개는 그 열에 의해 분노를 지속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초기에 90초 동안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후기에서는 내가 이 화를 뭐 낼지 말지를 선택을 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초기에 분노를 유예시키지 않고 발현해버리면 그 힘에 의해서 후기는 화를 지속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거예요. 이해가 되시지요. 간열이 뜨기 때문이에요. 간열이 뜨면 그 힘에 의해서 그러니까 간열이 뜬다는 것은 내 몸의 상태가 이미 화가 나는 쪽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성을 발휘해도 그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물론 초기에 분노의 표출을 유예시키더라도 후기에 들어서 새롭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당연히 있겠죠. 초기에 화를 안 낸다고 해서 후기에 화를 안 내지만은 않죠. 그렇죠. 물론 초기에 화를 내지 않으면 후기에 화를 내지 않을 경우가 더 큰 거예요. 그런데 이때 일으키는 분노는 초기와 그 양상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초기의 분노가 수동적으로 일어나는 반면, 후기에서는 분노를 능동적으로 일으킨다는 점이다. 초기에 걸린 시동이 꺼진 뒤, 후기에 분노를 일으키려면 ‘생각’을 동원해야 한다. 이미 지금 그때 확 일어난 것이 꺼졌어, 그러면 시동을 걸어야 되잖아요. 시동은 뭔가 감정을 모으고 생각을 해야 돼. ‘내가 화가 나야 돼, 내가 화가 나려면...’ 이런 것들이 논리적으로 뭐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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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언어에 의해 한정된다. 따라서 어떠한 언어로 구성할 것인지에 따라 후기의 상태가 결정된다. 

 

 

초기엔 생각할 필요가 없이 자동적으로 시동이 걸린다. 하지만 후기에 분노를 일으키려면 왜 화를 내야하는지 논리적으로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후기의 분노가 더 차분하거나 정도가 약해진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면 후기에 더 강렬한 적개심이 일어나 폭력의 논리로 자신을 설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들 이러잖아요. 앞에서는 화를 안 내요. 계산을 합니다. 어떻게 어떻게 얘를 죽여야 되는지 이런 걸 계산해요. 이런 게 더 무섭죠,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후기에 분노가 꼭 어떤 차분하다거나 이런 것은 아니라는 거죠. 분노를 유예시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후기의 분노는 논의와 실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초기의 분노는 생각이 배제된 시간 속에서 진행되므로 어떤 방법론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90초. 이 시간은 야생의 시간이므로 되도록 잠잠하게 보내기를 권한다. 이 시간에 생각이 왜곡되고 언어의 파탄이 일어난다. 후기는 이성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다. 그리고 이성은 언어에 의해 한정된다. 따라서 어떠한 언어로 구성할 것인지에 따라 후기의 상태가 결정된다. 초기의 분노는 그래서 유예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우리가 대결을 해야 하는 것은 후기에 일어나는 분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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