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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무한집합을 통해 본 대칭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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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9-08 09:23 조회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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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집합을 통해 본 대칭적 사고

한수리

 

  나카자와 신이치의 책 『대칭성 인류학』에서는 대칭성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칭성 사고란 통념상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이질적인 것들에게서 동질성을 찾아 '연관성'을 발견해내 대칭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 대칭적 관계란 두 개의 대상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대칭의 원리가 작동될 때는, 부분은 전체와 반드시 동일해진다"(나카자와 신이치, 『대칭성 인류학』, 동아시아, p63)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대칭적 사고에 의해서 인간은 자연 그리고 인간들끼리 균형을 이루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러한 대칭적 사고보다 분리를 발생시키는 비대칭적 사고가 증가되어갔다. 그러면서 인류는 인간들끼리, 그리고 자연과 점점 분리돼가 개인과 사회에 많은 문제가 발생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카자와 신이치의 주장에 나는 깊이 매료되었다. 인간의 자연파괴와 우리 사회 내부의 불평등, 그리고 혼밥족같이 사람과 사람이 점점 분리되고 고립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대칭성 사고가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대칭성 사고에서 주장하는 '부분과 전체'가 같아진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과연 부분과 전체는 어떻게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수학이었다.

 

::부분과 전체, 그리고 무한

 

  약 100년 전 수학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같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그 당시 수학자들이 기피하던 '무한'이라는 특별한 세계에서 일어났다. 수학자들에게 한계가 없는 무한은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 생각됐다. 또한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잘 못 건드렸다가 수학의 근간을 무너뜨릴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수학자 '칸토어(G. Cantor, 1845-1918)'는 용기를 내어 '무한'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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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토어는 무한을 정복하기 위해 같은 성질을 하나로 묶어내는 '집합'이라는 도구를 꺼내 든다. 그 집합을 가지고 수(number)들의 특성에 맞게 묶었다. {1,2,3,4,5, ...}과 같은 자연수 집합과 {2,4,6,8,10, ... }과 같은 짝수 집합을 보자. 이 두 집합의 원소들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세면 언제까지고 끝없이 세어갈 수 있으므로 무한집합을 형성한다. 이 짝수 집합은 분명히 자연수 집합의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전체에 포함이 되어야 한다.(나카자와 신이치, 위의 책, p207 참고) 그런데 한 번 직접 비교해 보자. 비교하기 위해서는 하나씩 대응을 해보면 된다. 

 

자연수집합  : 1, 2, 3, 4, 5,  ..... 100 ...... 

       ㅣ ㅣ ㅣ ㅣ ㅣ        ㅣ

짝수집합   : 2, 4, 6, 8, 10, ..... 200 ......

 

 

  이런 식으로 자연수와 짝수가 무한히 일대일 대응이 되어간다. 그렇게 되면 자연수의 집합과 짝수의 집합은 모든 원소는 완전히 일대일 대응이 되고 ‘부분’인 짝수 집합과 ‘전체’인 자연수 집합의 크기는 일치된다. 이렇게 무한의 세계에서는 유한의 세계에서 절대로 불가능했던 ‘부분’과 ‘전체’가 같아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은 단지 수학 속 무한의 세계에서 가능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부분과 전체가 같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된 건 더 깊은 무한의 세계 속에서였다.

 

::유한과 무한의 대칭적 관계

 

  앞에서 이야기한 자연수와 짝수 집합들은 무한하지만 하나씩 셀 수 있었다. 셀 수 있다는 말은 그것들을 순서대로 정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통의 수들은 무한한 수라고 해도 이렇게 순서대로 정렬할 수 있다. 무한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무한집합을 '셀 수 있는 무한'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수가 이렇게 정렬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정렬되지 않는 수가 바로 '무리수'이다. 이 수는 자연수로 표현할 수 없어 나 처럼 특수한 형태로 표현되어 진다. 무리수는 아주 미세해서 순서대로 나열할 수 없다. 아무리 촘촘하게 수를 순서대로 나열해도 그 촘촘한 수들 사이에 더 미세한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서대로 나열되지 않기 때문에 무리수는 셀 수가 없다. 그래서 칸토어는 이 무리수 집합을 '셀 수 없는 무한'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서 자연수와 유리수, 무리수를 모두 포함한 수의 집합인 '실수(real number)'도 마찬가지로 '셀 수 없는 무한'이 된다. 이 '셀 수 없는 무한'에서는 더 신비한 일이 벌어진다. 먼저 0과 1 사이 모든 실수의 집합을 생각해보자. 두 수 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실수가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셀 수 없는 무한'이다. 이것을 선분으로 표시하면 아래의 선분 AB와 같다. 이것은 눈으로 봐도 분명히 실수 전체를 표현한 직선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무한의 크기에서는 작은 선분과 무한한 직선이 같아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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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저 작은 선분과 무한한 직선이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일까? 그것은 앞에서 무한의 크기를 비교한 것처럼 두 집합의 모든 원소를 일대일 대응시켜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수는 무리수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순서대로 나열할 수 없기 때문에 셀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방식으로 대응시켜야 한다. 그래서 위의 그림이 필요하다. 먼저 0부터 1까지의 실수들의 집합(선분 AB)과 0부터 2까지의 실수들의 집합(선분 CD)을 선분으로 비교해 보자. 두 선분은 위 그림과 같다.

 

  점 O과 선분 CD를 잇는 직선이 있다면 그 직선은 선분 AB를 지나야만 한다. 그렇다면 점 O에서 선분 CD의 모든 점에 연결하는 직선을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그 직선들은 선분 AB에 있는 모든 점과 선분 CD에 있는 모든 점이 대응되도록 할 것이다. 결국 두 선분의 모든 점이 일대일 대응이 되고 두 집합이 같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그림처럼 그것을 무한히 확대하는 직선에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무한한 직선과 0에서 1까지 선분 위의 모든 점은 일대일 대응이 되어 같은 집합이 된다. '부분'인 유한한 선분과 '전체'인 무한한 직선이 대칭적 관계가 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안 순간 '부분과 전체가 같아질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됐다.

 

::나와 우주의 대칭적 관계

 

  그 느낌은 강렬했다. 무한에 대한 수학적 증명은 유한한 형태를 가진 선분이 무한한 점의 집합이 되고 그것이 무한한 직선과 대칭적 관계를 이루는 과정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 나는 내 자신을 우주와 분리된 유한한 존재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무한과 대칭적 사고를 통해서 유한한 내 안에도 무한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 거대한 우주와 대칭적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내가 우주라는 거대한 시공간과 연결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존재가 고립된 작은 존재가 아니라 아주 크고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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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렇게 나와 우주가 대칭적 관계라면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모든 존재가 우주와 대칭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와 관계 맺고, 내 주변에 있는 존재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러자 우리가 흔히 말하던 ‘존재의 소중함’이라는 말이 조금은 실감이 되었다. 

 

  이것은 나카자와 신이치가 네팔에 가서 수행하며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일지 모른다. 그는 대학원 시절 네팔에 가서 동자승들과 함께 수행했다. 하루는 스승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염소가 무한한 윤회의 고리 속에서 예전에 내 어머니였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 염소가 도축 당하는 장면을 보며 명상을 하게 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자신의 마음에 이는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 수행이었다. 그 수행을 마친 신이치는 "염소와 내가 확실한 연속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염소와 나 사이에 동질성을 가진 뭔가가 흐르고 있다. 그 사실을 이해한 순간, 마음속에 사랑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격렬한 정동(감정)이 샘솟던 느낌(위의 책, p168)"이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이치의 느낌처럼 나는 무한집합과 대칭성 사유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가 느꼈던 나와 다른 존재들 간의 연결감과 동질성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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