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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딱 ,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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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9-01 09:13 조회1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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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큼!

오창희

에세이는 철학적인 글이고, 철학이란 내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하는 공부다. 그러므로 나를 괴롭히는 절실한 문제를 찾아내야 철학이라는 걸 시작할 수 있다. 그 문제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내면에 품고 있는 더 근원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이번 ‘에세이 하라!’에 참여한 학인들은 모두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철학적 글쓰기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자신의 행동이나 습관, 또는 자신이 겪은 사건의 밑에 깔린 전제나 인식의 회로들을 탐색함으로써 자신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철학적 글쓰기에 참여한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충실하려면 일단 포인트를 확실하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 그 포인트를 출발점으로 하여 문제의 핵심으로 진입해야 한다. 포인트를 분명히 잡지 못하면 그저 그런 신변잡기로 빠지게 되고 핵심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신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이번 후기에서는 학인들이 문제의 포인트를 잡아가는 과정과 포인트를 잡고 그것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장애물들을 만나게 되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D는 매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들고 와 조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딸 바보 아빠’로 살아가면서 겪는 고달픔, 갑자기 늘어난 업무로 인한 피로감은 자신의 체력이나 일정에 맞춰 어느 정도 조정하게 되었고, 끝까지 남은 문제는 ‘공부’였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휴가를 내면서까지 공부에 집착하는 자신을 보면서 ‘내게 공부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하게 됐고 그 문제에 집중했다.

먼저 지금까지 자신이 한 공부는 어떤 것이었는지 그런 공부가 삶에서는 어떻게 작동했는지 등을 관찰하고 서술했다. 대부분 이 부분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도 어렵거니와 보았다 해도 본 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걸 힘들어한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D는 비교적 이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공부는 지식 쌓기였다는 것. 그 밑바탕에는 유식함으로 자신을 치장하려는 마음과 지식을 무기삼아 남을 공격하면서 자부심과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그런 자신의 모습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현장 또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아내에게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다가 ‘공부하더니 더 완고해졌다’는 비난을 받거나, 세미나를 할 때 문장 해석을 놓고 자기의 것이 정답인 양 열을 올리는 등. 그러던 차에 신영복 선생의 『담론』의 한 구절인 “삶이 공부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이라는 말에 감발을 받아서 배운 바를 삶에 접목하는 실천에 돌입한다. 그는 지금 ‘지식’ 사냥꾼에서 ‘공부’하는 중년으로 이행하는 중이다.

그러나 D는 아직도 공부는 지식이라는, 삶의 현장과 공부는 별개라는 인식의 회로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의 글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가 에세이를 쓰면서 ‘지식’에서 ‘공부’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문제의 현장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글의 포인트를 분명히 잡을 수 있었고, 나아가 다른 텍스트를 읽으며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원들의 피드백을 일일이 받아 적으며 최대한 글에 반영하기 위해 애쓴 그의 태도도 자기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를 돌파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이 모든 행동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자신의 삶에서 조금이나마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고, 동시에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을 분명히 볼 수 있어 그것을 공부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S는 첫 시간에 자신은 글쓰기를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고미숙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싶어서 왔을 뿐 글쓰기는 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2주차에는 다른 조원들의 발표를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음 시간부터 자발적으로 글을 써 왔다. 자기 안에 뭔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S의 글은 병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아주 막연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하고 힘든지를 알 수 없었다. 6차시가 되어서야 구체적인 사정을 털어놓았다. 유전성이 강한 희귀질병을 앓는 가족력이 있고 그로 인해 동생을 잃었고 또 다른 동생이 지금 그 병을 앓고 있는 중이며 자신도 그 병에 걸릴까봐 불안하다는 것. 게다가 몇 해 전에 유방암 수술을 하면서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을 극복해 보려고 병을 앓고 있는 동생과 함께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난치병을 고친 사례가 담긴 책이며 방송 프로그램 등을 있는 대로 읽고 동생에게도 권해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S는 자신의 헌신적인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동생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 그리고 자신이 차린 건강 식단에 호응을 하지 않는 가족에 대한 분노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자신의 행동 심층에 있는 병에 대한 인식이나, 동생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자기 행위에 숨겨진 심리 등을 탐구함으로써 비로소 철학적인 글로 넘어갈 수 있는데, 그 지점에서 더 들어가질 못했다. 그러기에는 서운함과 미움, 분노의 감정에다 병에 대한 불안감과 자신은 아픈 사람이라는 정서까지 더해져서, 냉정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볼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첫날과 마지막 발표 시간을 제외하고 매 시간 자신이 써 온 글을 읽을 때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져 읽기를 멈추곤 했다. 이렇듯 자신의 감정에 빠져있다 보니 병이라는 것, 아프다는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텍스트는 볼 염을 낼 수 없었던 것. 발표 직전에 ‘건강해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을 가지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어떻게 하면 유전병을 막을 수 있으며 병이 없는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이런 식의 접근 방식으로는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건강이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더 좋은 치료법을 찾아 헤매고, 조금만 안 좋아지면 바로 그 이전의 불안이 되살아날 테니까. 그때마다 삶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되고. S가 병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더 근원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H도 이번 에세이에서 풀고 싶은 문제가 있었다. 공동체에서 있었던 사건에 드러난 자신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 처음부터 문제가 일어난 상황은 분명했지만 그 상황에서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 하는 포인트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상황을 분석할 방향을 잡지 못했고, 결정 장애라는 키워드로 자기를 분석했다가, 불편한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집중했다가, 여러 갈래 길을 돌아 마지막엔 이러저런 모순 속에서도 자신이 서 있는 현장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논리를 끌고 갔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질 못했다. 그 공동체에서 다양한 학인들과 함께 공부하는 한 이런 사건은 되풀이될 것이고 그때마다 감정들이 부딪치고 관계가 서먹해질 것이다. 그럴 때 마지막에 가 닿는 문제가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거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수없이 만나는 갈등 상황과 거기에 드러난 자신의 모습이 전혀 공부거리가 되지 못한다. 생계를 위해서라거나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좋아서라거나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계형 일터는 여차하면 다른 데서도 구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떠날 수도 있다. 나의 비전이 공동체의 비전과 맞아떨어질 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드러난 자신의 행위를 해명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만의 철학이 생긴다. 그러나 H는 사건을 둘러싸고 오고가는 감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니 이 스텝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자기 문제를 드러내는 데에 솔직할수록 글의 포인트는 명확해지고, 그 문제를 풀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할수록 탐구의 밀도는 높아지며,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클수록 변화는 크게 일어난다. 즉 모든 사람은 자신의 현재 상태 ‘딱 그만큼’을 쓸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글은 자기 문제와 관련해서 자신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모든 글은 그 수준과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 자기가 쓴 글이 지금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 준다는 점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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