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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더 이상 망설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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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8-06 18:24 조회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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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몸의 주인이 되자(2008~2012) 

 

                            

더  이상  망설임  없이

 


오창

 

 

 

유혹

‘내 몸을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각은 자연스레 병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류머티즘을 완치했다는 사례들이 많았다. 매우 구체적인 치료과정을 소개해 놓은 정보를 비롯해서 정말 다양한 치료법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 치료를 한 번 받아볼까’ 하는 유혹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또 다시 명약탐방으로 허송세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여기서 몸 탐구의 방향을 정리하자. 그러려면 내가 왜 이 병에 걸렸는지를 알기만 하면 이 상황에 맞는 최선의 치료법이 있을 거라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먼저 지금까지 내 수준에서 생각했던 원인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주당살을 맞았다는 것. 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부터 통증이 시작됐기 때문에 가지게 된 생각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의 통증이 류머티즘과 관련이 있는 건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발병 후 수 년을 치료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자 고향 친척들이 주당을 맞은 게 아니냐고 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초상집이나 결혼식, 회갑잔치에 다녀와서 병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병은 주로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거나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기도 한다. 전자는 느린 주당을 맞은 거고 후자는 된 주당을 맞은 경우다. 나도 그런 경우일지 모른다는 거다. 주당살을 맞으면 열이 나고 한기를 느끼며 까라지고 전신이 틀어진다는데 발병 초기의 내 증세와 흡사했고 실제로 나와 비슷한 사례를 책을 통해 읽은 적도 있었다. 『스물의 어둠은 너무 깊어라』의 저자 서미주는 대학 1학년 때 문상을 갔다 와서 갑자기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지능이 다섯 살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었던 거다. 

 

다음은 어릴 때부터 관절이 그다지 건강하진 않았다는 것. 체조를 하면 무릎에서 우두둑우두둑 뼈가 서로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났고, 친구들이 손을 잡아끌면 손목이 빠질 것만 같았다. 어깨를 누르면 관절이 쑥 내려갔다가 다시 팔을 돌리면 제자리로 올라왔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손목과 발목 관절이 늘 찝찝해서 좀 돌려주어야 시원했고 그럴 때마다 빠스락빠스락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놀이란 놀이는 안 한 게 없을 정도였다. 격렬하고 위험할수록 더 좋아했다.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다닐 동안엔 산으로 들로 냇가로 발길 닿는 곳이 다 놀이터였다. 중학교 때는 탁구를 엄지손가락 마디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쳐서 누우면 천장에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고 책을 펼치면 그 위로도 공이 왔다 갔다 했다. 방학이면 오빠들을 따라 축구, 농구, 스케이트도 쫓아 했다. 감나무에 올라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태풍이 지나간 뒤 쓰러져 누운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기어이 올라가 한바탕 ‘방방이’를 하다가 삐죽삐죽한 가지에 찔려 무릎 뼈가 훤히 보이도록 다치기도 하고. 한의원에서 어혈이 뭉쳐서 생긴 병이라고 했을 때, 어머니의 첫마디가 “니가 몸을 너무 심하게 놀리기는(움직이기는) 했제”라고 하실 만큼 심하게 놀았다.   

 

그런데……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이미 30년이 지났고, 설사 주당을 맞았다 한들 이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관절이 부드럽지 못한 건 타고 났으니 돌이킬 수 없고, 이미 난 과격한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신체가 아닌가? 몸 상태는 이미 이렇게 변했는데 지금 와서 그 당시로 돌아가 원인을 따져 본다는 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이 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탐구하자.

 

 

 

입장 바꿔 보니…… 

지금 이 몸에서 출발하자는 생각을 하며 보행기로 다시 걷는 연습을 하던 2008년 연말, 작은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빠 셋 중에 가장 건장해서 힘들거나 어설픈 집안일은 앞장서서 했었는데, 그 오빠가 사경을 헤매다니……. 그날도 집안일을 보러 새벽 같이 고향에 가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임하댐 교각을 들이받고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나마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됐으나 한 쪽 팔다리를 쓰지 못했다. 수술 후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말은 조금씩 할 수 있었지만 마비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석 달 이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평생 장애로 남을 수도 있고.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대구에 사는 언니는 먹을 것을 해 나르고, 서울에서도 오빠들이 수시로 대구를 오갔다. 보행이 어려운 어머니와 나만 갈 수가 없었다. 우리가 움직이는 자체가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니. 틈나는 대로 편지를 썼다. 소소한 내용들을 담아서.   

 

작은 오빠에게                                                     

 

오빠, 오늘은 목소리에 힘이 좀 있네. 오빠가 한 말은 다 알아듣겠더라.

오빠가 힘이 생긴 것 같으니까 나도 힘이 막 나네.

이런 걸 보면 내가 오랜 세월 아프면서 참 가족들 속을 많이 태웠구나 싶어. 본의 아니게.

그래서 아부지가 맨날 자고 일어나면 좀 어떠냐고 물으셨던가 봐. 그게 정말 궁금하거든.

그런데 그때는 짜증이 좀 났어. 하루 이틀에 달라질 병도 아니고, 

자고 일어났다고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딱히 이렇다 저렇다 할 말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묻는 거 무척 싫어했어.

 

그런데 내가 아부지 입장이 돼 보니까 무척 궁금하네.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빠가 어떤가 늘 궁금하고 목소리라도 듣고 확인하고 싶은데

오늘은 며칠 만에 들어보니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다는 거야.

 

오늘도 유머 한 마디 안 할 수 없겠지? 이건 엄마가 자주 들려주시던 이야기야.

 

‘키 작은 며느리’ 

 

어떤 키 작은 신부가 시집을 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며느리 키 작다고 하디마는 참말로 작아도 너무 작네.”

이러면서 하도 흉을 봐 싸니까 며느리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

그날 저녁에도 저녁을 먹다가 시어머니가 

“키가 저래 작아 가주고 아(애)를 제대로 낳을 수나 있을 똥.....”

하면서 부아를 돋우는 거야.

그날 저녁을 먹고 며느리가 뜰에 내려서면서 한 마디 했어. 

"아이고 여기도 별이 있네요!"하고.

그러잖아도 며느리가 맘에 안 들었던 시어머니는 핀잔을 주고 싶어서

"그럼 별이 있지 별 없는 데가 있을라꼬?" 했대. 그때 며느리가 잽싸게 그 말을 받아서는 

"(                                                                )“ 하더라는구먼.

 

며느리가 무슨 말을 했을지 생각해 봐.

오빠의 수술한 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테스트를 하는 거야.

안녕~~

                                               2009년  1월  9일  창희

오빠,

요 며칠 춥다고들 난리인데

오빠나 나나 들어앉아 있으니 다른 나라 얘기일 테고,

한강이 얼었다고 하니 궁금하긴 한데 참고 있는 중이야. 한강이 언 건 한 번도 못 봤거든.

 

오늘 엄마하고 통화하고 나니 어때?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빨리 나아야 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지?

그렇다고 당장에 맹훈련에 들어갈 건 없고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면 돼.ㅋㅋ.

엄마도 기분이 좋으신가봐. 날이 따뜻해지면 대구에 가겠다고 맘먹고 계셔.

가끔 엄마한테 전화 드려. 요즘 엄마의 관심사는 오로지 오빠니까. 

 

뭐 별다른 걸 바라지는 않으셔.

오빠가 밥을 다 먹었다든가, 똥을 많이 누었다든가,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갔다든가,

손에 힘이 조금 더 생겼다든가, 다리 운동을 몇 번 했다든가, 하는 것들이야.

(중략)

이제 3주가 좀 지났네.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하면서

약간은 지루하고 또 지금 처한 현실이 답답하고 막막한 느낌도 들겠지?

그렇더라도 조바심 내지 말고 하루하루 병원 생활에 충실하다보면

오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거야.

 

어떤 경험도 나쁘기만 한 것은 없는 것 같아.

이번 일도 안 일어났으면 참 좋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오빠에게 몸과 맘에 약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제 우체국에 가야겠어. 지난주부터는 우체국까지 걸어가서 부쳐. 

                                            

                                          2009년  1월  13일  막내 동생     

 

추신:  작은 며느리 왈, “이 동네는 키 큰 년이 다 따고 별도 없는 줄 알았디마는....”

그러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육촌 언니가 대장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가 우리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특별히 정이 들었다. 함께 한 추억도 많았고. 당장에라도 가 보고 싶었지만 이제 겨우 뼈가 붙어서 걷기 시작할 때라 대구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언니에게도 편지를 썼다.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허전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내게 힘이 되었던 거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언니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언니에게 용기를 줬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편지를 쓰면서 알았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게 오빠와 언니가 자포자기하면 어쩌나 하는 것임을. 그리고 내가 아픈 동안 가족들이 무엇을 가장 염려했을지, 또한 어머니가 “그 동안 니가 신세를 한탄하거나 자포자기했더라면 가족 모두가 얼매나 힘들었겠노” 하셨던 말씀이 어떤 마음으로 하신 건지. 그렇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걸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다 살게 마련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 서 보니 너무도 자명한데, 왜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이런저런 유혹에 빠져 길을 잃는지…….

 

 

 

불청객들

2009년 초, 2년 만에 드디어 뼈가 붙었고, 1월 중순부터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침뜸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를 맡은 분은 발병 과정에 귀를 기울였고, 내 몸의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런 봉사자의 태도는 비록 ‘증’은 없었지만 신뢰를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고 나머지는 집에서 혼자 뜸을 떴다. 발병 초에도 침과 뜸 치료를 했지만 그때는 그저 수동적으로 받기만 했다. 이번에는 궁금한 건 묻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치료받는 걸 보면서 이런 저런 것들을 귀동냥했다. 치료 후 3개월 정도 지나자 통증이 확연히 줄었고 검사 결과 염증 수치도 정상치로 내려갔다. 아픈 이후 처음이다. 뭔가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치료받고 뜸을 뜨는 시간이 즐거웠다. 5개월 뒤에는 스테로이드를 끊었다. 그러면서 식이요법과 활원 운동을 할 때처럼, 내 안의 치유력에 대한 믿음이 되살아났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침·뜸 치료를 하면서 대학원 마지막 학기 등록을 했다. 수업이 빡빡했다. 2년간의 병상 생활에 체력이 약해졌는지 버티기가 힘들었다. 학기를 겨우 마치고 논문 준비로 1년여를 보냈다. 그러던 2010년 5월, 처음엔 이가 아팠다. 치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니 갑자기 방이 마구 돌기 시작했다. 기운이 달려서 그런 줄 알았다. 일주일을 고생하다가 병원에 가니 이석(耳石)증이었다. 그 후 한 달쯤 지나자 땀이 심하게 흐르고 몸무게가 5킬로그램 이상 빠졌다. 가까운 내과에 갔더니 갱년기 장애라며 여성호르몬 제 복용을 권했다. 진단에 의심이 들어 지인이 하는 내과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라고 했다. 

  

약을 복용하자 간 기능 수치가 올라갔고, 의사는 그 데이터를 앞에 놓고 최악의 경우를 예로 들며 나를 불안하게 했다. 대학병원으로 갔다. 거기서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마시면 평생 동안 하루 한 알로 호르몬 조절이 되니 그게 편하지 않겠냐고 했다. 우왕좌왕 불안에 떨었다. 30여 년을 오직 류머티즘 외길만을 걸어온 내게 찾아온 불청객. 이 불청객은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내고 길러왔다고 믿은 내공(?)이 모래 위에 쌓은 성임을 알려주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선 약물치료를 했다. 약 복용 후, 갑상선 기능은 항진에서 저하로, 저하에서 다시 항진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간에 부담을 주는 류머티즘 치료제인 면역억제제(MTX: 메토트랙세이트) 복용을 중단했다. 16년간이나 복용하던 그 약을 중단한 이후 내 몸에는 별 이상 증세가 보이지 않았고, 그때부터 류머티즘 처방에 의문이 생겼다. 이어서 갑상선 처방에도 의구심이 생겼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2년이 흘렀다. 내 안에서 이젠 갑상선 약을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지만,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 때문에 약을 아주 끊지는 못하고 조금씩 줄여갔다. 

  

가끔씩 고개를 드는 완치에 대한 유혹, 오빠와 언니에게 닥친 일, 침·뜸 치료의 효과와 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 면역억제제 복용 중단. 이 일련의 사건들은 다시 한 번 내 몸에 대해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내 몸 탐구의 장으로 나섰다. 어디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길을 찾다가 2011년 12월 감이당(坎以堂)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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