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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하오 공자, 짜이찌앤 <논어> | 닌하오 공자, 짜이찌앤 <논어> #22/공자와 그 제자들 - 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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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1-16 14:10 조회3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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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하오 공자, 짜이찌앤 <논어> #22

- 3부. 제자들 ; 천 개의 물음, 천 한 개의 대답​

문리스 (남산 강학원 대표회원)


자공 (3) : 지인(知人) 대 방인(方人)


물론 자공의 일화를 뒷담화라고 말씀드린 건 당연히 반쯤 농담으로 드린 얘깁니다만, 어쨌거나 그 나머지 절반의 진담도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공의 이와 같은 특성은 <논어>를 통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어>에서 반복·강조되는 주제 중에 지인(知人) 즉 ‘사람을 알아봄’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子曰(자왈),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활부지인야).<학이>

“선생님 말씀하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함을 근심하라.


<학이>편 마지막 문장입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유명한 구절이죠. 그런데 <논어>에는 이와 비슷한 구절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첫날 살펴봤던 <학이> 첫 문장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배우고 때를 놓치지 않고 익히는 것은.... 으로 시작했던 문장도 세 번째 구절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으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군자가 아니겠는가. 입니다. 여기에도 지인 즉 사람을 알아보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논어> 전체 마지막 문장에서도 우리는 이 지인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고요.


즉 스승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주 강조하셨을 겁니다. 군자는 다른 사람이 알아봐 주지 않는 것에 열 받으면 안 된다고,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게 없는지 늘 살펴야 한다고. 자공의 비교 취미(?)는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쩌면 자공은 자공대로 이 사람 저 사람 잘 알아가기 위해, 즉 스승의 지인(知人) 가르침을 실천하는 중에 생긴 시행착오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순서가 반대였을 수도 있습니다. <논어>에서 씩씩한 제자 자로가 등장하는 대목 중에 자로를 겸인(謙人)이라고 설명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겸인이란 남을 누르고 나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스승 공자는 이런 제자들과의 생활 위에서 지인(知人)의 중요함을 강조했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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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자공의 스타일을 볼 수 있는 구절들은 역시 그의 말솜씨인데, <헌문> 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염구와 자공이 대화합니다. 염구가 말하길, “선생님께서 위(衛)나라 군주를 도우실까?” 그러자 자공이 직접 스승께 물어보겠다며 나섭니다. 아마 자로였다면 “스승님, 위나라에서 정치하실 겁니까?” (웃음) 이렇게 다짜고짜 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자공은 ‘내가 물어보지.’ 이러더니 공자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백이 숙제의 백이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는데, 그는 그렇게 죽게 되었을 때 원망(怨)하는 마음이 없었을까요?” 그러자 공자의 대답. “백이는 자신의 인을 추구했고 끝내 인을 얻었으니, 무슨 원망함이 있었겠는가!” 그러자 자공은 딱 알아듣고 돌아 나옵니다. 그리곤 염구한테 이렇게 말하죠. “선생님은 위나라에서 정치 안 하신대.”


자공과 공자가 등장하면 이런 식의 대화가 많습니다. 지금 말로만 들어서 내용이 귀에 잘 안 들어왔을 수 있는데, 이게 책으로 봐도 처음엔 고개를 갸웃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여튼 핵심은 자로하고 말할 때처럼 투명한 대화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웃음) 제 보기엔 이런 게 자공 스타일중 핵심의 하나입니다. “선생님, 백이는.....” 하는 순간 공자도 ‘짜식이 내가 정치할지 안 할지 물어보려고 왔구먼’(웃음) 하시는 거죠.


사실 백이 얘기는 간단한 주제가 아닙니다. 이후 원망(怨)이라는 이 한 마디는 오랫동안 유학의 주요한 혹은 어려운(?) 주제가 됩니다. 가장 강력하게 이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였던 인물은 <사기>의 저술자인 사마천입니다. 사마천은 '열전' 70편의 첫머리에 <백이열전>을 배치하고 의로움을 지향한 백이의 고결한 삶이 비참한 결말(아사)로 이어진 것에 관해 물음을 던집니다. '과연 천도(天道)'는 있는가?' 라는 것이죠. 사마천 이후에도 한유, 소동파, 왕양명 등등, 그리고 조선에서도 연암 박지원이나 박제가 같은 최고급 지성들이 각자 자신들의 버전으로 백이를 해석합니다. 근대 이후로는 루쉰이라는 소설가의 깜짝 놀랄 해석도 있고요. 다 소개해드리면 좋겠지만, 백이는 오늘 주제가 아니니까 일단 그 애긴 패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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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에 대한 다양한 버전의 해석


자공 (4) : 저는 그릇되고 싶지 않, 습니다(1)


자, 또 하나 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셨다. “사(賜)야!” 사는 자공의 이름입니다. 단목사. 단목까지가 성이고 이름이 사입니다. “너는 내가 배워서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고 여기는가?

자공이 보기에 자신의 스승님은 엄청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시 사람들에게 공자는 그런 사람으로 알려진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문 · 다식 · 박학의 아이콘이었다고 할까요. 여튼 스승님께서 자공에게 먼저 이렇게 말을 꺼냈다는 건, 이미 그런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공자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공아 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니? 자공이 대답합니다. “그럼요! 아닙니까?”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시죠. “아니지 아니지. 나는 박학한 게 아니라 하나로 꿸 줄 알뿐이야. 일이관지(一以貫之).” 일이관지란 언급은 <논어>에 두 번 나와요. 두 사람이 전한다는 말입니다. 이 둘이 스승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 하신 말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버전이 살짝 달라요. 또 한 버전의 이야기를 전하는 주인공은 증자입니다. 암튼 자공과 얘기할 때는 이렇게 나와요. 일이관지(一以貫之)다.

그런데 증자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쫙 함께 앉아있는데 선생님이 얘기하십니다. “내 도는 한 가지로 꿰어져 있다. 일이관지(一以貫之).” 그러자 증자가 대답합니다. “넵.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선생님이 나가버리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갑자기 “뭐야? 뭐야 이거? 뭐래?” 이러는 거예요. (웃음) 그러자 증자가 이해 못 한 중생들을 위해 한 마디 붙이죠. “선생님의 일이관지는 충서(忠恕)란 뜻입니다.” 이로부터 공자의 일이관지는, 삶에서 충(忠)한 것과 정성을 다하는 것과, 살면서 내 마음을 타인의 마음과 같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논어>를 가만히 보면 이 말은 증자가 공자의 말을 해석한 것이지, 공자의 직접 언설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지난번에 한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십실지읍(十室之邑)]에서도 자신보다 충(忠)하고 신(信)한 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시는 분이 공자이니, 얼마만큼 충서를 강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증자는 공자 사후 학맥의 적통이 되는 분입니다. 그러니 충서는 결코 홀대 되지 않았습니다. 오해하진 마시고요. 충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최소한 공자께서 직접 자신의 일이관지를 충서라고 풀어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공자가 한 제자를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옆에 자공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천과 담소하시고 기분이 좋으셨어요. 심지어 자천이 떠나가자 스승님께서 갑자기, “아, 저 자천이라는 인물, 군자로구나.” 이렇게 말씀하신 거죠. 그런데 옆에 있던 자공이 이 말이 팍 꽂힌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공은 공자의 최후까지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엄청난 제자였으니까, 이때도 자공은 어쩌면 스승의 작고 큰일들을 도맡아 살림해줬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궂은일 하면서 서포터하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자천이란 친구에게 선생님이 마구 인자하신 거죠. 왜냐하면 이 군자라는 말, 선생님께 들으면 엄청난 칭찬이기 한데, 이 말씀을 스승님께서 어지간해선 잘 안 붙여주시거든요. (웃음) 그런데 자천이라는 인물한테 느닷없이 ‘군자!’라고 붙이니까 자공이 너무 신기한 겁니다. 샘이 났을지도 모르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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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제자도권 36명>



“선생님, 저는요?” (웃음) 아니 쟤 정도가 군자면, 저는요? 그러자 선생님 대답. “너는 그릇이야.”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떤 그릇입니까. 너는 호련이다.


이 <논어>라는 책은 지금으로부터 이천수 백 년의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만 가지고는 뜻을 알아차리기 힘든 구절이 많습니다. 하지만 뜻을 알게 되면 내용이 첩첩이 그 이천수 백 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요. 모든 구절을 남김없이 다 알 수도 없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왕에 읽는 거라면 좀 더 상상력을 가지고 종횡으로 엮어볼 필요도 있는 거겠죠.


자공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일단 좀 놓고, 공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놓고 다시 이 대화를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공자 문하에서 군자는 굉장히 훌륭한 인격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어떤 인물이 군자 칭호를 딱 따고 간 겁니다. 물론 자천은 공자 제자니까 이른바 ‘듣보잡’과는 다르지만, 여하튼 지금 자공 같은 경우엔 늘 선생님 곁에서 열심히 스승님 뒷바라지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 거랑 비교해보면 은근히 반발하는 마음도 들 수 있겠죠. 그리고 꼭 그런 불순한 의도가 아니었을 거예요. 이왕에 자천에게도 군자라고 비평하시니, 이 기회에 나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여쭤보고 싶었을 수도 있죠.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면, 이 구절은 사실 두 개의 문장입니다. 그러니까 자천에게 군자라고 칭찬한 것과 자공이 물어본 것은 엄밀히 말해 같은 장면이 아닙니다. 하지만 두 구절에는 서로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요. 그래서 제 나름 꼭 자천의 경우가 아니었을지라도 자공과 같은 성격·스타일의 양반이 그와 비슷한 경우와 맞닥뜨렸을 수도 있었지 않았겠는가 상상하면서 재구성해보는 겁니다. 자기는 스승님 말년을 지키느라 정신없거든요. 밥도 하고 맨날 용돈 갖다 주고 온갖 것을 다 하는데, 스승님이 자기한테는 평생 그런 얘기를 한 마디도 해주신 적이 없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저 인물은 군자구나.” 라며 흐뭇해 하는 스승을 본 거예요. 그래서 자공이 한마디 했어요. “선생님 저는요?” 과연 인정 욕망과 비교의 달인,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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