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MVQ 무빙비전탐구

굴드가 들려주는 원더풀한 생명 이야기 | 모든 필연은 우연이다 #4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1-08 10:32 조회1,087회 댓글0건

본문

모든 필연은 우연이다 #4

 

 

정철현(남산 강학원)

 

생명체가 지닌 역사적 제약이 얼마나 커다란 힘으로 작동하며, 풍요로운 변이의 원천을 제공하는지 살펴보자. 굴드는 개의 진화를 통해 이에 관해 얘기한다. 개는 늑대로부터 인간에게 길들여져 지금까지 진화해왔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품종의 애완견들이 있다. 이렇게 여러 품종이 있지만 육종가들은 이런 품종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개의 선조가 지닌 신체적 가능성 안에서 품종들을 개량했던 것이다. 이는 모든 육종가에게서 적용되는 원칙일 것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어떤 야생동물을 마음대로 길들일 수는 없다. 어떤 야생동물은 절대 길들여질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생명 내부에 본성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떤 일정한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제약은 바로 동물들을 육종하는 육종가들에게 커다란 힘을 미친다. 그러한 생명체의 제약이 육종가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좁히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바로 생물체들의 설계상 제약이 바로 능동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이 육종가들에게 강제하는 힘으로 인간은 길들일 수 있는 야생동물만을 취할 수 있었다. 그중에 개의 선조인 늑대, 카니스 루푸스(Canis lupus)도 있었다. 늑대는 서열과 지배의 위계 구조를 지닌 사회적 종이다. 인간은 이러한 타고난 행동양식을 취해서 그들을 길들였던 것이다. 외부를 향해 힘을 가하는 신체적 제약은 이제 다양한 품종의 개들을 만들어낸다. 사육사들을 강제하는 역사적 제약이 여러 품종을 만들 수 있는 변화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개들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상대적 신체구조의 비율에 따라 다양하게 변이할 수 있다. 상대성장학(allometry)적으로 개들의 몸 치수와 두개골의 길이 비율은 똑같다. 몸집이 커지는 속도와 두개골의 길이가 늘어나는 속도가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개골의 폭에서는 꽤 차이가 있다. 두개골의 길이 성장 속도가 몸 치수와의 비율에 일정하게 묶여 있다면, 두개골의 변화 폭은 꽤 넓은 범위를 갖는다. 그 때문에 두개골의 폭이 두개골의 길이에 비해 더 많이 빠르게 성장하면, 얼굴이 넓적하고 코가 짧은 불독 같은 개들이 나오며, 이에 반해 두개골의 폭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성장하면 그레이하운드와 같이 길쭉한 얼굴을 지닌 개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09f14d3ddaf162db3b1fee7effea463d_1478497
두개골의 길이와 폭이 변하는 정도에 따라 개의 얼굴이 결정된다.

 

 

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개체 발생패턴, 성장패턴 역시 다양한 품종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것은 ‘개 개체가 태아에서 성체로 자라는 과정의 형태변화를 말한다.’(여덟 마리 새끼 돼지, 550쪽) 인간은 이들의 성장패턴 과정 중에서 어떤 단계를 고정시킨다. 예를 들면, 소형견이 어떻게 생겼냐면, 순하고 쾌활한 행동을 취하는 개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인간은 사람을 잘 따르는 성숙기 이전 동물의 유순하고 유연한 행동을 선호했고, 그 과정에서 유아적 특징들이 따라 나온 것이다. 형태도 작아지고, 행동도 유아적인 것이다. 소형견은 성견이 되어도 다른 개들에 비하면 작은 체구와 어린 개에서 보이는 철부지 같은 행동양식을 지닌다. 이런 식의 진화를 유형성숙이라고 부른다. 즉 개체 발생 단계의 초기 시점에 머무르게 되면서, 이러한 형태와 행동들의 변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형태학적으로 발생과정의 양극단 사이에 놓인 여러 단계 중 하나를 취한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556쪽) 이는 ‘성장의 내재적 제약들이 결정해둔 불변의 기본 패턴을 살짝 뒤튼 것에 불과하다.’ (같은 책, 556쪽) 이렇게 개체 발생과정을 재료로 다양한 개 품종들이 나오는 것이다.

 

 

진화적 변화는 기존에 존재하던 개체발생 과정을 응용하여 일어나는 것이 가장 쉽지 않겠는가. 여기를 조금 늘리고 저기를 한두 단계 잘라내고, 기관들과 부분들의 상대적인 발달 시기를 바꾸면서 말이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524쪽

 

바로 이렇게 기존에 존재하는 개체 발생과정을 비롯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적 한계들을 원동력 삼아 생명체들은 진화해나가는 것이다. ‘역사적 유산은 천 가지 대안적 경로들을 품은 융통성 있는 인지 원칙이다.’ (541) 물론 ‘제약 때문에 몇몇 환상적인 가능성이 배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약은 한편 변화의 가능성을 가득 담은 커다란 풀이다.’ (558) 역사적 제약에는 무수한 변화의 가능성, 생명 진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적 제약은 하나의 능동적인 힘이며, 생명의 내적 구조로부터 비롯되는 적극적인 행위자인 것이다.

 

 

09f14d3ddaf162db3b1fee7effea463d_1478498
제약에는 무수한 변화의 가능성, 생명 진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굴드는 이렇게 생물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힘을 생명 내부에서 길어낸다. 그것은 자연선택과는 다른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힘이었다. 자연선택, 생물에 내재해 있는 내적인 힘. 이 두 힘들은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두 힘 간의 충돌에 의해서 벌어지는 진화는 적응주의 프로그램이 그려냈던 진화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적응주의는 생명을 언제나 기계적이며, 수동적으로 보았다.

 

 

적응주의 프로그램(adaptationist programme)은 지난 40년 동안 영국과 미국의 진화론을 지배해온 사고방식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자연선택의 힘이 생명을 최적적응으로 이끄는 작인이라고 믿는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적응주의 프로그램은 생명체를 하나의 단일한 ‘형질’들로 분해하고,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형질들 각각에 적응적 설명을 제시한다. (형질들의) 경쟁하는 선택적 요구들 사이의 타협은 생물의 완전성에 유일한 장애물이다; 그러므로 비-최적성 역시도 적응의 결과다. 우리는 이러한 접근법을 비판하며, 이것과는 다른 유럽대륙에서 오래도록 선호해왔던 개념들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 개념들에 의하면. 생명체는 계통적 유산phyletic heritage, 발생학적 경로, 일반적인 신체적 구조에 의해 제약되는 신체 기본설계Bauplane를 지니고 있는 하나의 통합된 전체integrated wholes로서 연구되어야만 한다. 그 제약constraints 자체는 생명체가 변화할 때 그 변화의 경로에 제한을 가한다는 점에서 선택압이 변화를 매개한다는 사고방식에 비해 훨씬 흥미롭고 중요하게 된다. …… 우리는 진화적 변화의 작인을 다양하게 정의내린 다윈 자신의 다원적 접근법pluralistic approach을 지지한다.

─ S. J. Gould and R. C. Lewontin, 「The Spandrels of San Marco and the Panglossian Paradigm: A Critique of the Adaptationist Programme」, 1979

 

적응주의는 생명체를 수동적인 기계처럼 본다. 그들은 생명을 기계들을 분해하듯이 어떠한 특징(형질)으로 환원하며, 이것에 자연선택이라는 법칙을 적용한다. 그 특징들이 바로 자연선택의 과정에 의해 최적의 적응 형태로 진화해 왔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적응주의는 언제나 생명을 법칙에 따르는 종속변수로 환원해서 본다. 하지만 굴드는 진화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생명을 자연선택의 법칙에 의해 재단되고 반죽이 되는 수동적이며 종속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그는 생명체를 특정한 힘을 지닌 환원 불가능한 통합적 신체로 본다. 생명은 그 자체로 통합된 전체다. 이 통합된 전체는 법칙에 대해 수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통합된 전체로서의 생명은 그들 나름의 힘, 역사적 제약을 포함한 신체기본설계(보우플랑)을 가진 존재다. 그에게서 나오는 힘은 자연선택의 힘대로 생명을 절단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 힘은 오히려 자연선택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새겨진 역사적 경로들을 따라가도록 강제할 것이다. 굴드는 내재적 힘을 지닌 생명체를 자연선택만을 숭배하는 적응주의자들 앞에 내놓았다. 생명의 역사에는 자연선택 말고도 생명이 지닌 내재적 힘이 존재한다고. 바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가지 힘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09f14d3ddaf162db3b1fee7effea463d_1478498
자연선택과 적응주의라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가지 힘이 존재한다.

 

 

이제 진화의 역사는 자연선택이라는 하나의 작인이 수동적인 생물에게 작용하는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화의 역사에는 자연선택과 생물, 두 가지의 작인, 두 능동적인 행위자, 두 작용자가 존재한다.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힘들의 다원화(Pluralism)! 굴드는 진화에 대한 다윈의 다원주의적 접근방식(Darwin’s own pluralistic approach)을 본받아 가장 다윈적으로 다윈의 자연선택에 대항하고 있었다. 가장 다윈답게 다윈 이론의 핵심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힘을 가정한 것은 굴드가 보여주게 되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이제 이것들이 상호작용하고 충돌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화가 이루어진다.

 

굴드는 이 두 힘이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진화의 과정을 골턴의 다면체를 통해 보여준다. 골턴은 다윈의 사촌으로 우생학의 기틀을 닦은 사람으로 악명높다. 하지만 다윈주의에 대한 풍성한 비판과 대안들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굴드는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가 든 비유가 바로 생명의 진화 모습을 잘 보여준다.

 

 

 09f14d3ddaf162db3b1fee7effea463d_1478497 

 

생물체는 마치 당구공처럼 자연선택이라는 큐가 이끄는 대로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테고 어떤 식으로든 위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프랜시스 골턴의 오래된 비유를 빌려, 생물체는 당구공이 아니라 다면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원래 바닥에 대고 있던) 한 면이 바로 옆면으로 뒤집히는 방식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523쪽

 

골턴은 다면체를 통해서 생명은 당구대에 놓인 수동적인 구가 아니라, 한 면을 안정되게 바닥에 대고 있는 다면체와 같다고 말한다. 다면체에 외부의 힘이 가해지면, 이에 저항하는 마찰력이 작용하듯 생명 역시도 자연선택의 힘이 가해질 때, 그 내부적 제약의 힘들 역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면체가 자신의 내부구조에 의해 제약되어, 제한된 위치와 한정된 가짓수로만 움직일 수 있듯이, 생명 역시 자신의 발생학적, 신체적 한계 내에서 변화할 수 있다. 언제나 다면체에 힘을 가할 때 언제나 두 힘이 동시에 충돌하는 것이다. (다면체를 미는 외력이 작용하는 순간 마찰력 또한 생기듯이) 이 힘의 충돌 속에서 다면체는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다가 우연히 어떤 안정적인 면에 이르러 멈춘다. 이렇게 다면체가 다른 안정적인 면으로 도약해서 멈추듯 생명 역시도 자연선택의 압력과 역사적 제약의 힘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바로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변이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