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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하오 공자, 짜이찌앤 <논어> | 닌하오 공자, 짜이찌앤 <논어> #17/ 공자와 그 제자들 - 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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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0-19 15:53 조회1,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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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하오 공자, 짜이찌앤 <논어> #17
- 3부. 제자들 ; 천 개의 물음, 천 한 개의 대답

 

 

 

문리스 (남산 강학원 대표회원)

 

자로(3) : 천하제일 무(모)한 도전-er

 

자로는 지역의 왈패, 다시 말해 건달이었습니다. <사기>에는 자로의 이러한 이력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자로가 ‘공문에 들어온 이후로 공자에 대한 비방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동네 건달이었던 자로였지만 막상 존경하는 스승을 갖게 되자,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워낙 강해서, 누구라도 스승님을 비방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로가 먼저 참지 못하고 혼을 내주었다는 겁니다. 재밌는 표현이죠? (웃음) 당연히 힘으로 응징했을 테고요? (웃음) 자로가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용맹한 제자였다는 사실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로는 “성격이 거칠고 용맹스러웠으며, 뜻이 강하고 곧았”습니다. 그리고 “수탉의 깃으로 만든 관을 쓰고 수퇘지의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차고” 다녔습니다. 이 정도 패션 감각이면 멀리서 봐도 눈에 딱 띄지 않을 수 없었겠죠? (웃음) 그래서 지난 시간에 말한 그 사단이 난 겁니다. 섭공이 선생님에 관해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 하는 바람에 공자께서 엄청 화가 난 사건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한 건데, 당연히 기억이 나... 시진 않겠지만요. (웃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이나 타고 바다로 떠나야 할까보다. 나를 따라나설 자는 아마 자로이겠지?” 자로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로의 용기는 나보다 낫다. 헌데 그것 말고는 취할 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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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 타고 따라나설 자는?

 

 

‘공야장’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공자께서 현실정치에서 일이 잘 안 풀리셨어요.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고, 이 사람도 안 알아주고 저 사람도 안 알아주는 뭐 그런 상황이었다고 해보죠. 얼마나 심란하셨을까요. 제자들이 있는 데서 하루는 푸념한 거에요. “아, 내 뜻이 이렇게 세상에 안 통하니, 그냥 멀리 떠나버려야겠다. 바다 너머로 가버릴까 봐, 어디 가서 배를 하나 구해볼까.” 뭐 이런 분위기? 누가 봐도 한 번 던지신 말씀인 그런 분위기였던 거죠. (웃음) 그런데 그 말끝에 이러셨어요. “아아, 그런데 만약 진짜 배를 구한대도 문제네, 진짜로 바다로 나가게 되면 별별 어려운 일이 다 생길 텐데 그럴 땐 어쩌누... 그건 그렇고! 막상 바다로 떠나게 되면 나를 따라나설 놈이나 있을까. 자로? 그래, 자로 정도는 혹시 모르겠군,”

 

이 자리에 자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좀 더 극적으로 상상해서 하필 자로가 외출 중이어서 이 얘길 하실 때 없었다고 해보죠. 다른 제자들이 그 이야기를 들은 거죠. 그리고 나중에 자로한테 얘길 해준 거예요. “형님, 좋으시겠습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멀리 바다로 떠나실 때 함께 떠날 만한 사람은 형님밖에 없다시던데요?”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웃음).

 

그 말을 듣고 자로가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자로문지희(子路聞之喜). 자로가 그 말을 듣고는(聞), 입이 찢어졌다는 겁니다(喜). 왜? 자기가 단 한 명의 자리에 남아 스승님을 모시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자기만 데려간다니까 너무 영광스럽고 감격스럽고 여하튼 이 말을 듣고 자로가 완전히 해피해져서, 곧장 선생님께 쫓아 달려옵니다. (실은 같은 자리에서 한 말씀일 수 있습니다. 지금 좀 극적으로 상황을 만들어보는 거고요^^). 대문을 들어서면서 이렇게 소리치죠. “선생님! 뗏목 준비할까요? 뗏목! 콜?” (웃음) “어디 배를 타고 가실 일이 있으시다고요? 산에 가서 나무라도 해다가 뗏목 준비할까요?” 혹은 “선생님, 배는 2인승이면 되나요?” 막 이러면서 신이 난 거죠. (웃음) 그러자 선생님이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겠어요 “아휴, 정말 저!!.자로 용맹한 것 좀 보라지...” (웃음) 혹은 “우리 자로, 참 용감하구나. 뗏목 타고 바다로 나가겠다는 저런 생각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견적이 안 나와서 안 될 텐데. 여하튼 자로는 보통이 아니구나.” (웃음) 호용과아(好勇過我). 용맹하기가 나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일이 있을 때 무지막지하게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저건 용맹한 거라 할 수 있다는 거죠. 자로의 그런 모습은 공자 자기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더 무모하다는 거죠. 말릴 수가 없다. 여기까지는 사실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무소취재(無所取材). 말 그대로 풀면, 취하여 쓸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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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한 걸까? 무모한 걸까?

 

 

앞에서 흘러온 문맥상으로 보면 이 대목은 일종의 한숨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비판 같은 뉘앙스입니다. ‘아휴. 자로 저 녀석. 지금 내 심정이 어떤 건데, 무슨 놀러 가는 건 줄 아나? 뱃놀이 가자는 거야? 아무튼 자로 저 녀석은 앞뒤 없이 무모해. 도무지 무모한 것 말곤 뭐 봐 줄 게 없는 놈이지.’ (취하여 쓸 만한 게 없다/무소취재). (웃음)

 

듣기에 따라선 굉장히 독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센 말씀이죠. 자로는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순수 기쁨에 가득 차서 마구 흥분한 상태인데 말이죠. 일이 이쯤 되니까 곤란해진 건 후세의 유학자들입니다. 아, 성인이신 공자님이 진정 이렇게 잔인하게 말씀하셨을까. 다른 숨은 뜻이 있는 건 아닐까. 뭐 이런 식으로 스승의 숨은 뜻, 깊은 뜻을 미루어 짐작해 주는 해석의 역사가 펼쳐지는 거죠. 무소취재(無所取材). 이 대목은 ‘자로는 무모한 용기 외엔 취해 쓸 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로가 지금 어디 가서 뗏목 만들 재료(材)를 구하겠느냐며 자로를 염려하신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되면 해석은 이렇게 바뀝니다. “자로야 네 말은 고맙다만, 지금으로선 뗏목 만들 재료(材)를 구할(取) 곳(所)이 없을 게다(無).”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같은 구절인데 완전히 느낌이 달라졌죠? 이제 이 구절은 스승 공자께서 자로를 꾸짖거나 비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성인의 자비심이 표현된 대목이 되는 겁니다. “역시 자로밖에 없구나. 자로 너의 그 무한한 용기를 나는 존경한다. 나보다 훨씬 훌륭하구나. 하지만 자로야, 마음은 그렇다 해도 지금은 배를 구하기가 쉽지 않겠구나.” 이렇게 되는 거죠.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첫 시간에 공자님에 관해 다소 장황하리만치 이러 저런 이야기들을 통해 공자의 신체성과 기타 새로운 공자상(像)에 대해 강조했던 이유를 떠올려 볼 수도 있습니다. <논어>에는 여전히 이런 구절들이 많이 있거든요. 한문 자체로는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혹은 어떤 뉘앙스와 결로 읽느냐에 따라, 또는 어떤 정황으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같은 문장이지만 굉장히 다른(심지어 상반되기까지 하는) 해석이 가능한 겁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모두 풍부하게 주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부분이 <논어>와 같은 고전을 읽는 묘미를 만들어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누가 봐도 뻔한 구절이라면 이미 다른 여지가 없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항상 같은 얘기만 하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논어>를, 그리고 공자를 어떤 결 위에서 읽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겁니다. 공자를 그저 고분고분하고 미소 미소 짓는 웃음 좋은 할아버지로 볼 것인지, 기골이 장대하고 뜻이 크고 성격도 강직한 거인 사내를 떠올릴 것인지에 따라 음색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전 이 대목에서 자로의 무모함은 무모함 대로, 또 공자님은 공자님대로 거기에 대해 삐딱하게(!) 자로를 핀잔주는 그런 해석이 좋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이 자로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자로(4) : 한없이 투박함에 가까운 순수

 

하지만 자로에 대한 공자의 믿음은 두터웠습니다. 제 느낌엔 공자에게 자로는 제자 이상,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이 차도 그렇고, 온갖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내면서 엮인 서로에 대한 신뢰가 대단히 두터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로에게도 공자는 스승이지만 또한 절친한 형님이었을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적어도 자로는 능력은 조금, 아니 어쩌면 조금 많이(웃음) 부족했을지 몰라도, 스승=형님께 배우려는 마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속 지적되는 자로의 학습 능력이라는 것도 사실 엄밀히 말해보면 지적(知的)인 부문에 불과합니다. 공문에서 지적인 능력은 배움에 관한 한 그저 하나의 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컨대 잘 배운다는 말은 단순히 지적인 학습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잠깐 설명해 드렸던 “불분(不憤) 하면 불계(不啓)한다”는 말. 배우려는 사람은 일단 스스로 배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을 분을 내는 것이라 표현한 거죠. 그러니까, 배움이란 분을 내는 것, 즉 분발하는 것이고, 가르침이란 그러한 분발자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불분하면 불계, 즉 깨우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보기에 자로는 비록 야인-왈인의 세계에서 왔지만, 이왕 스승의 문도가 되어 배우기를 마음먹은 다음에는 스스로 배움의 열정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어떻게 하면 이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스승께 더 잘 배울 수 있을까... 이것이 오히려 자로의 고민이었습니다. 자기가 쫓아가지는 못해도, 즉 스승의 널찍한 품과 장쾌한 속도를 쫓아가지는 못해도 최소한 스승의 도를 욕보이지는 말아야 할 텐데... 뭐 그런 생각? 안 되는 건 지금 내가 못나서 그런 거지 스승의 가르침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지금 제대로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충분히 실천하며 살고 있지 못한 것이 있을 때마다 전전긍긍하는 인물이 자로입니다. 자로는 뜻을 굽힌 적이 없습니다. <논어>에서는 자로의 이러한 성품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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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려는 마음이 있느냐?

 

 

자로는 가르침을 들으면, 아직 그것에 능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가르침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자로유문(子路有聞), 미지능행(未之能行), 유공유문(惟恐有聞).

우리가 스승이라면 이런 제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비록 안회처럼 내 뜻을 완전하게 소화해서 실천해내는 제자는 아니지만, 비록 제대로 실천하는데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 실천하는 마음에 삿됨이 없고, 또 그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에 항심이 있는 제자라면요. 아마 스승의 처지에서 보자면 이런 제자를 만난다는 건 오히려 큰 기쁨이고 행운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말은 바로 그러한 자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자로는 스승께 가르침을 얻었는데, 그것을 아직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여 자로는 전전긍긍합니다. 왜일까요? 아직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 살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면모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스승께서 또 다른 훌륭한 가르침을 주실까 봐 두려운 겁니다. 아직 이전 진도도 다 이해 못했는데 무심히 새로운 진도를 나가는 선생님을 뵙는 기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때, 선생님께 황송하고 죄송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이해 안 되신다고요? 자로 마음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더라도, 자로가 어떤 성정을 가진 인물인지는 조금 알 것 같지 않으세요? 네. 그렇습니다. 그저 씩씩하고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자로입니다만, 바로 그 이면에는 때 묻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자로가 있는 것입니다. 한없이 투박함에 가까운 순수...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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