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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가 들려주는 원더풀한 생명 이야기 | 모든 필연은 우연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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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9-27 12:25 조회1,0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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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필연은 우연이다 #1

 

 

 

정철현(남산 강학원)

 

1. 진화의 유일한 힘으로서의 자연선택

 

비글호 항해를 다녀온 후, 다윈은 자연이 무수한 변이들로 넘쳐나는 장이며, 이 속에서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직감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정도로 작은 변이들을 모아줄 창조적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다윈은 그 창조적 힘에 대한 힌트를 사육사들이 행하는 인위선택에서 찾았다. 인위선택에서는 사육사들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모양과 형태, 그리고 유익한 특징을 가진 동물들을 선택해서 교배시켰다. 그들은 사육동물들을 선택적으로 골라 교배시키면서 새로운 품종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러한 선택의 원리가 너무나 경이로운 나머지, 다윈은 권위 있는 육종가의 말을 인용하여 ‘선택의 원리가 지닌 대단한 힘’은 ‘휘두르면 어떤 형태와 체계의 생명이든 마음대로 불러낼 수’(『여덟 마리 새끼 돼지』, 544쪽) 있는 ‘마술사의 지팡이’(같은 책, 544쪽)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다윈은 인간이 동물들을 선택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사육사들에 의해서 선택되어 살아남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동물들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특징을 지닌 동물들이었다. 인간의 용도에 부합하는 특징들을 지녔는가에 따라 선택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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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선택, 휘두르면 어떤 형태와 체계의 생명이든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는 ‘마술사의 지팡이’

 

 

다윈은 이러한 선택의 과정이 자연에도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에는 인위적인 선택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택이 이루어지는가. 야생에서는 생존에 적합한지 아닌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생존에 적합한 자들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생물들이 사라지는 자연선택의 과정을 다윈은 떠올렸던 것이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해 사육동물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자연 전체에 작동하는 근본적인 힘이자, 생명 진화를 추동시키는 힘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다윈은 자연선택이 진화를 작동시키는 매우 중요한 작동원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종의 기원 최종판(5판, 1872)에 이렇게 쓰고 있다.

 

 

최근 들어 나의 결론이 현저히 잘못 이해되고, 또한 내가 종의 변화를 오로지 자연 선택의 결과를 돌리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으니, 이 책의 초판 및 이후 판에서 – 즉 서문의 말미에 – 써놓았던 다음과 같은 분명한 입장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자연 선택은 변화의 주요 수단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 표명도 별 효과가 없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오해의 힘, 그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판다의 엄지』, 「자연선택과 인간의 뇌- 다윈과 월리스의 논쟁」, 57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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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선택은 변화의 주요 수단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자연선택이 변화의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고 다윈이 입장표명을 했음에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위빌 톰슨이란 사람은 다윈을 오로지 자연선택만을 강조하는 초선택주의자(panselectionism)라고 희화화했다. 그에 대해 다윈은 이렇게 혹평하기까지 했다.

 

 

나는 위빌 톰슨이 자연선택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속이 상했습니다. …… 위빌 톰슨은 종의 진화가 오로지 자연선택에만 의존한다고 말하는 자연학자의 이름을 한 명이라도 댈 수 있나요? 제가 쓴 “사육재배 하에서의 동식물의 변이”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도 신체 기관들의 용불용 효과에 대해 저만큼 많은 관찰을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찰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행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거기서 생명체에 있어서 생물체에 미치는 외적 조건들의 직접적인 작용을 보여주는 신체에 관한 고려할만한 사실들을 제시해두었습니다.

─ S. J. Gould and R. C. Lewontin, 「The Spandrels of San Marco and the Panglossian Paradigm: A Critique of the Adaptationist Programme」, 1979 재인용 

 

다윈은 자신을 초선택주의자라고 비평한 위빌 톰슨에게 유감을 표했다. 자신은 오로지 자연선택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외적인 구조나 형태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유래(1871)』에서 변이의 또 다른 원인으로서 번식을 위한 성 선택(sexual selection)을 제시한 바가 있었다. 다윈은 생물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에 대해서 자연선택을 비롯한 다른 요인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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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을 위한 성 선택도 있다.

 

 

다윈이 그토록 자연선택이 진화의 유일한 원동력이 아니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을 떠받들었다. 그들은 자연선택을 진화의 유일한 힘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생명체의 특정한 변화, 더 나아가서 새로운 종의 탄생은 오로지 자연선택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연선택에 갖는 무한한 믿음은 영국과 미국의 진화론 연구를 지배해왔다.

 

통상의 다윈주의자라면 자연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생존에 적합한 자들을 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죽는 자연선택의 과정 속에서 생명체들은 생존에 적합한 특징들을 갖는 방향으로 변모해나간다. 이러한 과정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adaptation)이다. 지금까지 멸종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계통을 보존하며 살아온 생물들은 자연선택의 과정을 잘 거쳐서 적응적 특징들을 가진 종일 것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생긴 적응적 특징들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선조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며, 새로운 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현대의 진화론자들은 적응적 특징들을 만들어내는 지배적인 작인이 자연선택이며, 자연선택의 과정을 진화의 유일한 원리이자 법칙으로 여겼다. 때문에 ‘선택-적응’의 쌍은 진화에 유일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생물이 현재 어떤 특성을 갖는 것이 그 특성이 생존에 적합한 적응적 형질이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진화의 과정 속에서 그렇게 선택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현생 생물들이 지닌 신체 일부의 기원을 설명할 때, 거기서 현재의 유용한 기능을 보고 그것이 자연선택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이런 ‘선택-적응’의 쌍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생명을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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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응’의 쌍

 

 

우리는 왜 2개의 젖가슴을 지녔을까?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자연선택-적응’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젖가슴이 한 개도 아니고 여섯 개도 아닌 2개인 이유는 분명 어떤 적응적 유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를 한 번에 한 명씩 낳는다. 그래서 젖꼭지의 알맞은 개수는 평균적으로 아기 수에서 하나 더 많은 수이어야 한다. 만약을 위해 여분을 두되, 짐이 될 만큼의 잉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분명 자연선택이라는 법칙에 근거한 그럴듯한 설명방식이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524쪽 참조)

 

또, 현대의 진화론자들은 식인의 풍습을 가진 아즈텍 문명을 적응에 관한 주요 사례로 들면서 이에 대해 자연선택의 법칙을 적용한다. 아즈텍인들은 만성적인 육고기에 부족에 시달렸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식인을 했다. 식인에는 적응적 유용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 내린다. 아즈텍인들에게는 식인을 위한 유전적인 적응, 유전적 재배치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인의 풍습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에드워드 윌슨(1978)이라는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에 의해 주장된 것이다.(S. J. Gould and R. C. Lewontin, 1979, 참조)

 

 

다음 연재에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자연선택에 굴드가 어떻게 도전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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