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MVQ 무빙비전탐구

[MVQ 글소식] 전쟁, 권력의 출현을 막기 위한 방편 (2)

게시물 정보

작성자 윤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7-08 10:51 조회130회 댓글0건

본문



전쟁, 권력의 출현을 막기 위한 방편(2)



임경아


3. 예속에의 열망

​ 

우리는 현실에서 누군가 나의 자유를 제약하고 행동을 조정하려 든다면 즉각 반발할 것이다. 그런데 히틀러에게 열광한 사람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억압이 없는데도 스스로 일정한 체제나 지도자에게 복종하고자 하는 욕망이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 강제조치나 협박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을 구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예속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원시 민족들은 이 지점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일단 권력관계가 발생하는 순간 예속에의 열망이 함께 발생한다는 것을 말이다. 클라스트르는 이 지점을 재난이라고 말하며, 이 사고로 인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본성에 격절이 발생했다고 본다. 실제로 권력은 예속에의 욕망과 결탁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a31a4f8bd71f60b06062581b37059d4e_1498213
나​치집회의 히틀러

게다가 자유를 제약한다 하여도 그 권력이 나를 보살펴주는 소위 ‘좋은’ 권력일 경우, 예속의 문제를 들춰내긴 더욱 어렵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에 대해 참조할 만한 예가 나온다.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은 사대부가 정치를 하는 나라였다. 사대부는 귀족처럼 세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리학에 기반한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가 된 사람들이다. 이렇게 정해진 절차에 의해 실력이 검증된 이들이 정치를 해야 유학적 이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때문에 드라마에서 정도전이 남긴 글로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이다’ 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세종이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군이라는 점이 사대부 입장에서 보면 위험징후 일 수 있다는 것이 정도전의 후손 정기준의 생각이다. 현재 군주가 훌륭하다 보면 신권이 약해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번 신권이 약해지면 추후에 부실한 군주가 나타났을 때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물론 정기준이 권력을 부정한 것도 아니고, 정치권력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신권이 강한 나라를 이상향으로 보았기에 ‘착한’ 군주를 경계한 것이지만, 요즘의 언어로 바꿔 말하자면 사람들이 양떼를 이끄는 선한 목자라는 권력의 이미지에 대항의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라고 질문한 것이다.
정치권력 차원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우리를 이끄는 선한 목자는 너무나 많다. 육아서, 심리상담, 영적 쇼핑, 운동, 좋은 강의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는데, 이것들은 불안감이나 무기력함에 기대어 나타나기 때문에 중독되기 쉽다. 인터넷 카페에서 올바른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느라 아이와 눈 맞출 시간이 없다는 엄마, 아무리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도 변화가 일어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핑계를 대며 상담에 의존하는 사람과 같이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허둥대고 두리번거릴 때 답을 찾을 수 있는 지도라고 내밀어지는 것이 있으면 마다하기 쉽지 않다. 자기만의 길을 찾고 좌표를 설정하는 피로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한다는데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4. ‘좋은 권력’이라는 함정

예속의 문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게 만드는 ‘좋은 권력’은 누구에게나 작동하지만 사주명리학 관점에서 인성의 늪에 빠진 경우는 그 영향력이 더욱 크다.
사주팔자는 태어난 생년월일시 여덟 글자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글자들은 상생상극의 법칙에 따라 비겁, 식상, 재성, 관성, 인성으로 표현된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비겁은 나의 주체성, 식상은 욕구와 재능, 재성은 일과 돈, 관성은 조직과 책임감, 인성은 공부와 지혜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활동의 흐름이라면 그 위에 관계의 차원이 중첩된다. 비겁은 나와 ‘수평적’ 관계, 식상은 내가 ‘낳고 기르는’ 관계, 재성은 내가 ‘극하는’(조절하는) 관계, 관성은 나를 ‘극하는’(제약하는) 관계, 인성은 나를 ‘길러 주는’ 관계 등.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고미숙, 76쪽)

이처럼 인성은 공부운, 나를 길러 주는 관계를 상징한다. 먹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에는 자녀들이 부모의 과한 보살핌을 받기 어려웠다. 때문에 자신을 도와주는 운을 강하게 타고난 인성 발달도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고, 의존적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스스로를 딸 바보, 아들 바보라고 자랑할 정도로 자식에게 과도한 관심을 쏟는 시대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가 인성 발달이기까지하면 말 그대로 팔짱 끼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자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 것은 상당히 부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이를 키워보면 어린 애들은 걸음마가 가능해지는 시점부터 기본적으로 부모한테 안겨가는 것보다 스스로 걷고 싶어 한다. 우리의 본성은 좀 불편하더라도 자기 발로 땅을 딛고 서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지극정성을 쏟으면서 두 발로 서지 못하게 만들고 일상을 조종해도 그것은 사랑일 뿐 일종의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자식을 늪에 빠지게 하는 부모의 자리는 쉽게 연인이나 배우자, 심지어 좋은 책으로 계속 얼굴을 바꾸면서 내 삶의 권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일상에서 나를 이끌어주는 선한 목자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이나 행동의 준거를 외부에서 찾는 것이 몸에 배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결국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능력이 극도로 약화된다. 삶의 방향이 계속 이렇게 가다보면 몸에 병이 났는데도 인스턴트 음식을 찾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아프면 건강에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입맛이 왜곡되어 생명 차원에서 가장 기본적인 보존 본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a31a4f8bd71f60b06062581b37059d4e_1498213
아​플 때 생각나는 라면!

이처럼 서비스의 외양을 띠고 있는 권력의 지배에 중독되면,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열렬하게 원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 어찌하면 좋을까? 앞서 살펴본 클라스트르를 소환해 보자.
그의 논점에서 원시 민족들은 국가의 발생을 막기 위해 전쟁을 활용했다. 이 논리를 차용해보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에 예속되고자 하는 욕망에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야 한다. 번거롭고 귀찮아서 이런 훈련을 소홀히 하는 순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걸러내는 본성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우리는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쓸데없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인성은 나를 도와주는 힘이면서 공부운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공부는 진학이나 취업 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에 원동력을 주는 지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성 발달인 사람은 의존적이기도 쉽지만 인성의 총량을 지혜를 추구하는데 사용한다면 오히려 자기 길을 찾고 자신을 구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할 것이기에 어떤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성의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조율하느냐에 따라 완벽하게 상반된 인생을 살게 된다.



-> MVQ "인류학과 의역학"에 관한 글을 더 보고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_^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