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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history-ecostory | 예의 바른 『춘추 좌씨!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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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8-03 21:14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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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산 씨(사이재)

나는 왜 역사책을 읽는가?

어쩌다 보니 나는 또 고대라는 시간대에서 헤매는 중이다. 그것도 기원전의 시대, 나라이름도 땅이름도 사람이름도 낯설기 짝이 없는, 21세기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눈으로 볼 때 골동품(?)스럽고 현실성이 떨어지는-것처럼 인식되는- 그 먼 과거, 지금으로부터 약 2700여 년 전에 시작된, 중국의 ‘춘추시대’에 묶여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춘추시대를 담은 역사책 『춘추 좌씨전』 때문이다.  

대한민국 0,001% 정도만 읽었을 것 같은 『춘추 좌씨전』을 이야기하려는 이유는 조금 뒤로 미루련다. 나는 왜 저 먼 과거의 언저리를 헤매는지, 왜 역사책을 읽는지에 대한 썰을 먼저 풀어야 할 것 같다.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용기와 변명이 필요해서다. 혹여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형, 현실도피의 인간형, 또는 고대 매니아로 보일까봐 미리 연막을 치는 것이다. 『춘추 좌씨전』을 읽는다는 건, 절대 그런 것이 아님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노파심 때문이다. 

아니 이 구구한 변명이라니? 이런 자의식은 뭐란 말인가? 과거의 영광은 찾을 길 없이 시야에서 멀어진 『춘추 좌씨전』의 현재에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인가? 내가 이토록 『춘추 좌씨전』을 사랑한단 말인가? 아니면 이 혼돈의 현실엔 침묵하면서 저 고대의 『춘추 좌씨전』을 참견하는 데 대한 겸연쩍음 때문인가? 아니면 춘추대의, 춘추의리로 알려진 『춘추』라는 책의 고색창연함으로 인해, 더 심하게는 고리타분함(?)으로 인해 반감을 살까봐 지레 걱정하는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추 좌씨전』에 대해 말할 것이 생긴 이상, 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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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추 좌씨전』에 대해 말할 것이 생긴 이상,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역사책을 읽는가? 과거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사회 혹은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아니면 과거라는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한 창을 바라봄으로써 진보한 현재에 위로받고 자긍심을 갖기 위해? 과거든 현재든 인간 역사가 그게 그거며, 인간이란 참으로 한심하고 폭력적이며, 삶은 한결같이 고통스러운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 삶의 다양한 실상를 알고자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과거가 이렇게 작용한다면 나는 복고주의자거나, 현실지상주의자거나, 니힐리스트거나, 호사가 중 그 어느 하나일 것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 간혹 이런 마음들이 교차하기도 한다. 과거의 시공에 대한 혐오가, 또는 현재의 시공에 대한 혐오가 거세질 때면, 역사책을 읽고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나 저 먼 과거를 담은 역사책 안에서 헤매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기대를 낮추기 위해 말해두지만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다. 나에게 역사책 읽기는 일종의 도전이다. 역사책의 물리적 측면 때문이다. 역사책이 대체로 길고 방대한 데다 대체로 인물과 사건을 파편처럼 기술하고 있어 이것을 조합하고 연결하려면 끈기와 집요함이 필요하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퍼즐 맞추듯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지구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야기보따리가 채워질 때마다 본능적인 재미와 희열이 뒤따라오니, 매우 유익한 덤이라면 덤이다. 역사책은 매번 나를 시험한다, 얼마나 오래 시선을 고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하며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지치지 않고 사건들의 서사를 얼마나 치밀하고 일관되게 구성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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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는 ‘제각각의 질감과 진폭을 가진 순간들’인 동시에 ‘중층의 시간들’로서의 과거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과거의 한순간은 매우 특별하면서도 고유하지만, 그 순간은 또 종으로 횡으로 연결된 인드라망의 시간이다. 중중무진 수억겁의 시간을 사유하는 붓다에게 몇 천 년은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수억겁을 거듭거듭 윤회하며 지금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치면 2, 3천 년 전 과거는 너무나 가까운 전생이다. 이 전생은 분명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순간이지만, 중중무진 수억겁의 업장들이 얽혀 있는 시간이요, 현재와도 연결된 시간이다. 이렇게 되면 역사책 속의 시간은 과거의 어떤 특정한 순간으로만 간주하기 어려워진다. 역사의 연속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 특정 시간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탐[貪 탐욕]‧진[瞋 분노]‧치[痴 어리석음]가 무엇인지, 또 그 특정의 시간 속에서 탐‧진‧치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학습하기 위해 역사책을 읽는다. 수억겁의 업장, 탐‧진‧치의 반복, 그러나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 탐‧진‧치를 관찰하는 행위, 이것이 진정 탐‧진‧치의 불을 끄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과거로 회귀해보는 것이다. 한편에선 탐‧진‧치에 사로잡히고 다른 한편에선 떨치고 가려는 고군분투의 현장을 탐사하며 용기를 얻고자 과거라는 둔덕을 서성거리는 것이다.  

내친김에 역사책을 위한 변명을 하나 더 보태본다. 역사책 읽기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역사책이 여러 사람의 시선과 여러 층위의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역사책에 담긴 과거의 사건에는 그 시간을 직접 겪은 이들의 시선, 그것을 최초로 말했거나 기록한 이들의 시선, 역사책을 쓴 역사가의 시선이 섞이고 충돌한다. 그리고 역사책을 읽는 나의 시선이 그 위에 보태진다. 과거의 한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진실과 역사가가 추구한 진실 위에 나의 진실이 교차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역사책 읽기는 과거에도 머물지 않고 현재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새로운 사건을, 새로운 진실을 ‘생성’하는 찰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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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스토리, 도시국가들의 생존법

이제 왜 『춘추 좌씨전』인가를 이야기해보자. 『춘추 좌씨전』은 『춘추』라는 역사책에 주석를 단 역사책이다. 『춘추』는 공자가 저술한 노나라의 역사책이다. 그런데 공자의 역사책은 의도적인 생략과 감춤이 많아 공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공자는 글자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글자마다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고 써야만 하는 글자가 있고 빼야만 하는 사실이 있으며 예법이 있었다. 이 필법은 공자를 위대하게 만들었지만, 이 필법으로 공자 사후 『춘추』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춘추』의 내용과 글자들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해설하는 주석서가 필요해진 것이다. 여러 주석서 중 대표적인 책이 좌구명의 『춘추 좌씨전』이다. 좌구명은 공자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좌구명이 공자의 제자였는지, 『춘추 좌씨전』이 좌구명의 해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렇다고 추측할 뿐이다. 공자의 제자가 아니라면 『춘추』의 빈 부분을 그렇게 디테일하게 채워넣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좌구명은 공자가 생략한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고증하여 노나라 뿐만 아니라 춘추시대 여러 제후국의 역사까지 완벽하게 재구해 놓았다. 좌구명이 아니었다면 후대 사람들이 춘추시대 여러 제후국들의 전모를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춘추』에 덧입혀진 해설서를 읽는 셈이지만, 『춘추 좌씨전』를 보면 주석이라기보다는 또 한편의 새로운 역사 저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춘추 좌씨전』을 쓰기로 작정하면서 처음 생각한 건, 『춘추』라는 역사책의 중력에서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춘추 좌씨전』이 스승 공자의 뜻을 계승한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춘추 좌씨전』의 서술에는 공자가 아니라 좌구명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타일로 보면 좌구명은 천상 이야기꾼에다 극적인 서사에 매우 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국시대 공자를 사숙한 맹자에 의하면, 공자가 『춘추』를 지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상이 쇠퇴하고 바른 도리가 희미해져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일어났다.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는 자가 생기고 자식으로서 아비를 죽이는 자가 생기자, 공자가 이를 두려워해 『춘추』를 지으셨다. 『춘추』와 같은 역사서를 쓰는 일은 천자가 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공자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 때문이며 나를 벌하는 것도 오직 『춘추』 때문일 것이다’라고 하셨다.”(『맹자』, 「등문공상」,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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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참담한 시대를 살면서 후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공자는 『춘추』를 지었다는 것이다. 맹자는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공자를 추앙한다. 원칙상 역사서는 천자나 제후가 편찬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일개 선비로 역사를 저술했다!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횡행하는 세상 때문에 공자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책에 이들을 새기지 않는다면 세상이 회복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자는 과감히 『춘추』를 저술했다. 맹자는 『춘추』의 저술 동기를 그렇게 보았다. 

『춘추 좌씨전』의 좌구명은 어땠을까? 『춘추 좌씨전』에 대한 나의 글쓰기는 이 질문에서 촉발된 것이다. 좌구명도 『춘추』를 맹자처럼 이해했을까? 좌구명은 『춘추』에서 무엇을 봤을까? 무엇을 살리고 싶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다시 들어가보니 『춘추 좌씨전』의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춘추』는 노나라 단대사다. 공자는 조국 노나라를 중심에 두고, 노나라와 교섭하는 주변의 제후국들에 대해 서술했다. 좌구명은 노나라 단대사를 춘추시대사로 확대했다. 좌구명은 춘추시대라는 삶의 조건에 주목했다. 이 춘추시대의 패러다임은 좌구명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춘추시대는 중국사 전체로 볼 때 아주 특별한 시기다. 하나의 통일국가가 아니라 여러 도시국가들로 나뉘어진 시대. 서백 창의 아들 무왕이 은나라 주임금을 정벌하고 주나라를 건국했다. 주나라는 봉건제로 천하를 다스렸다. 중앙에 천자의 도시를 세우고, 사방에 제후를 세워 땅을 나눠주고 그 땅을 다스리게 한 것이다. 천자의 군대와 관료가 천하 사방을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제군주제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주나라는 중앙집권의 통일국가가 아니라 지방분권화된 사회였다. 말하자면 도시국가들의 연맹체였다. 주유왕 때 견융족의 침입으로 주나라가 약해지기 전까지는 천자가 중심을 잘 잡았다. 급기야 주나라 평왕 때 서쪽 호경에서 동쪽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판도가 달라진다. 천자라는 저울추가 무너지고 여러 도시국가들이 팽팽히 견제하면서 연합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때부터 춘추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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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병탄이 아니라 공존하는 법을 찾았다.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서로가 생존하는 법을 찾았다.

『춘추 좌씨전』은 우리가 경험한 적이 없는 도시국가들이 병존했던 시대의 기억을 담고 있다. 그래서 특별하다. 통일국가에서 하나로 사는 기억이 아니라 여러 도시국가들이 견제하고, 손잡고, 넘나들던 시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국가간의 경계가 확실한 듯하면서도 여차하면 다른 도시국가로 도주하거나 이주할 정도로 경계가 느슨한 세계에서 사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춘추 좌씨전』의 도시국가들은 하나로 모아지는 걸 꿈꾸지 않았다. 전쟁으로 작은 나라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들은 병탄이 아니라 공존하는 법을 찾았다.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서로가 생존하는 법을 찾았다. 『춘추 좌씨전』에는 몰락하는 이유와 삶을 지키는 이유들을 탐구하는 인물들로 넘쳐난다. 힘이 주도하는 세계라 춘추오패라 명명했지만, 오패의 시대에도 공존을 위한 모색은 그치지 않았다. 내가 『춘추 좌씨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리고 이 춘추시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천지 사이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가 살기 위해, 혹은 살리기 위해 생존법을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추 좌씨전』의 히스토리를 에코스토리라 부르려 한다. 그리고 그 에코스토리를 하나하나 발굴하여, 혹은 조합하여 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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