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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금요일은 니체 | 중년에 맞는 변화의 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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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9-07 15:24 조회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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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겸

몇 년 째 출근 준비를 하기 전 한 시간씩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 운동으로 하루 생활의 활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을 들어서는 운동을 거르는 일이 반복되었다. 올 가을은 게으른 계절이 되어버렸다. 여름을 넘기면서 병을 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는 횟수도 확연히 늘어났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일 것이다. 50대 중반의 몸은 산만한 욕망이 이끄는 대로 하는 생활을 허락하지 않는다. 몸에 맞는 생활을 재구성해야 할 시기라는 증거일 것이다.

피로해지자 정신도 게을러졌다. 잠이 부족한 날은 집중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그런 날이면 익숙한 단어들만 들려올 뿐 낯선 문장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구나 익숙하지 않은 사유를 하는 건 귀찮게만 느껴졌다. 나이가 든 탓이야. 변명도 쉬웠다. 이 나이까지도 능숙해지지 않았다면 소질이 부족한 탓이겠지. 그 변명으로 게으른 정신을 유지할 이유를 얻는다. 그렇지만 변명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몸에 맞는 차이생성 법

특히 노년은 저녁과 마찬가지로 새롭고 매력적인 도덕으로 변장하기를 좋아하면 저녁놀, 황혼, 평화로운 고요함이나 동경으로 가득 찬 고요함에 의해 낮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에게 갖는 경의로 인해 우리는 그의 정신의 노쇠함을 보지 못하기 쉽다.

《프리드리히 니체 / 아침놀 542 / 396쪽 / 책세상 》

니체는 노년의 원숙함에서 정신의 피로를 발견했다. 변화를 멈추는 정신은 그럴듯한 미덕으로 지나가 버린 것들을 치장한다. 익숙해 버린 것들을 내세우며 그것이 높이 평가받기만을 기다린다.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려 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얻어진 것을 이용하여 그럴듯한 구조물을 만든다. 과거를 소환하여 사용할 뿐 지금의 자기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일들만을 한다. 피로에 지친 신체로는 차이나는 것들을 세워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익숙한 경로를 따라 사유하고 짧은 경로로 만드는 결론을 선호한다.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 것도 평정심 때문이 아니다. 그저 피로하여 머물고 싶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다. 뱀은 허물을 벗어야만 성체로 자랄 수 있다.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파멸하고 만다. 지금의 삶은 과거에서 이미 미세하게 시작되어 서서히 일어난 변화의 산물이다. 지금의 자기와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삶은 퇴행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중년의 나이는 이후의 삶들을 만들어 가는 나이이기도 하다. 근육들도 운동을 멈추는 순간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중년 이후를 살아가려면 자신을 피로에 구속시키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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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없는 삶은 지속성이 없다. 적절한 쉼은 자기를 지키는 기예이다.

니체는 자기극복을 위해서 자기보존도 사용한다. 인생을 자기를 지키는 일에만 사용할 수는 없지만 병에 걸렸을 때처럼 자기를 지키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다. 보존은 다음의 도약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다. 쉼이 없는 삶은 지속성이 없다. 적절한 쉼은 자기를 지키는 기예이다. 더구나 중년 후반의 양생법에서 쉼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나친 쉼은 자신을 무뎌지게 한다. 인생에는 결절이 있기 마련이다. 중년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피할 수는 없는 법. 중년 이후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 역시 만만치 않다. 그 결절들을 살아내려면 다른 자기가 필요한 법이다. 한 인간의 삶의 건강도 얼마나 그 시간에 잘 호응하는가에 달려있다. 중년은 자기보존을 활용하여 자기극복을 만들어 내야 할 시기이다. 내 몸에 맞는 차이생성법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목표도 도덕도 없이

니체는 심각해진 병 상태 때문에 교수직을 그만둔다. 그 후 니체는 남부의 도시들과 고원 지대를 오가며 휴양에 힘썼다.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의 책을 위험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기에 고독의 한가운데서 쓴 책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했고 스스로를 믿었다. (좋은 유럽인 니체 / 글항아리 / 356쪽) 그러나 니체는 아침놀을 도덕에 대한 전투에 대한 책이라 했다. 전투를 하여 자신과 화해하는 자라니.

이 책으로 도덕에 대한 나의 전투가 시작된다. 화약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 전투가 : – 예민한 코를 가지고 있는 자는 화약 냄새와는 완전히 다르면서도 훨씬 더 좋은 냄새를 맡을 것이다. 이 전투에는 큰 포격도 없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이 사람을 보라 / 책세상 / 413쪽 》

아침놀은 니체가 회복의 기운을 담아 쓴 책이다. 니체는 그 책에서 철학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비전이라고 하면 우리의 통념은 도달해야 할 흔들리지 않는 실체를 연상한다. 변함이 없기에 믿고 신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원한 무엇에 대한 믿음은 삶 위에 초월적 존재를 자리하게 한다. 도덕도 체험을 초월하여 있는 불변하는 실체와 같은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가치라는 믿음. 사랑이라는 가치를 두고 생각해 보자. 사랑은 불변하는 가치를 갖는다고,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지 사랑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우린 굳게 믿는다.

아침놀에서 그가 벌인 전투는 삶을 초월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전투이다. 우리가 삶을 초월해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도덕이 그 대상임은 자명하다. 니체는 어떤 조건과 맥락을 초월한 도덕적 가치는 없다고 단언한다. 도덕은 어떤 맥락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생각해 보자. 그가 벌인 전투에서 끌어 낼 수 있는 비전이란 어떤 것일까? 삶을 초월하여 있는 모든 것과의 전투에서 그가 얻어낸 비전은 삶 자체이다.

우리는 어떤 가치나 목표를 위한 존재가 아니다. 삶이란 우연과의 끝임 없는 조우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탐구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변하는 가치가 존재한다면 거기로 나아가는 것을 단선적인 목표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오히려 삶은 망망대해 한 가운데 존재와 같다. 니체가 아침놀에서 그려낸 바다에는 나침반도 없고 도달해야 할 목표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통 바다뿐인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니체는 삶을 초월한 가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냐고 질문하고 있다.

도덕 공위의 시대에서 살기

고독학이라는 우리 학문들은 아직 그 자신들에 대한 충분한 확신이 없다. 오직 이 학문들에서만 우리는 새로운 이상을 위한 초석들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취미와 재능에 따라 선구적인 존재로 살든지 아니면 뒤쫓아 가는 존재로 살고 있다. 이러한 도덕의 공위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작은 실험 국가들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실험으로 존재한다. 그렇게 존재하도록 하자!

《 프리드리히 니체 / 아침놀 453 / 책세상 / 349쪽 》

우리가 확고한 가치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삶의 의미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미 없음을 견딜 수 없다. 어쩌면 필요한 건 의미 자체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를 견디지 못한다, 고 말했다. 무엇이라도, 그것이 고통이나 죽음일지라도, 의미를 붙잡고 싶어 한다. 삶을 초월해서 있는 가치가 필요한 이유도 삶의 정당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확고한 도덕이 사라져가는 그 시대를 간파한다. 이제 사람들은 도덕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삶들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도덕에 대한 신념이 바뀌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니체는 예리하게 ‘도덕 공위’의 시대의 도래를 포착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고 소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는 ‘도덕 공위’의 시대라 할 만하다. 소멸하는 도덕적 가치의 시대에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니체는 자신들의 작은 실험 국가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유할 도덕이 없기에 고독한 실험자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가치를 실험적으로 사유하는 자로 존재해 보자.

도덕 공위의 시대는 바다만 보이는 장소와 같다. 어디로 가야 육지에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실험으로 얻을 그 무엇이 있을지 불투명하다. 어쩌면 육지도 보기 전에 난파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육지에 다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육지에는 해가 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녁놀에서 다른 아침놀을 볼 수 있는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 니체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실험하고 또 실험하여 내가 설정한 방향을 향하여 가보자고 제안한다. 그의 철학적 아침놀은 실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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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잃지 않고 자신을 변형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우리는 결과가 보장되는 안전한 실행을 원한다.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는 더욱 실패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의 결절은 중년에도 예외 없이 찾아온다. 과거의 자기로는 그 결절을 넘어설 수 없다. 작고 큰 시도와 돌파들이 그 변화에 맞는 신체를 만들어 준다. 수 없는 실패에서 겨우 하나를 건져 올리는 실험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실패에도 두려움이 앞서게 된다. 무엇을 잃을까를 먼저 고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을 잃지 않고 자신을 변형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중년은 도덕 구축의 시절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자신에게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구축하기 쉬운 때이다.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덕으로 살고픈 욕망이 지배한다. 자기를 방어하기에 바쁘고 자기를 바꾸기는 어려운 시기. 그렇지만 과거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낼 수는 없는 법. 우선, 과거의 신체에서 발생한 습관이 현재의 신체에 들어맞지 않는다. 다른 신체성에는 다른 습관이 필요해 진다. 과거를 공공이 하면 할수록 망상만을 지어낼 뿐이다. 중년에게 필요한 건 소유가 아니라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이다.

이제 다시 질문 해 본다. 내 신체에 맞는 변화의 기예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우선, 내 신체에 맞는 양생법이 필요하다. 과거의 신체에서 빚어진 습을 바꾸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 시도로 그 신체에 맞는 습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수면, 꾸준한 운동, 소박한 식사도 그에 해당한다. 산만한 욕심을 채울 수 잇는 시기도 끝났다. 달라진 신체가 산만함을 용인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된 욕망으로 자신을 간결이 나아가게 해야 한다. 중년의 양생법은 신체의 조건에서 생성된다. 그 양생법은 자기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자기를 만드는 지혜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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