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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다른 성욕의 탄생 | ‘여자’가 되며 매력을 감추는 친구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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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25 20:29 조회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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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녀,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 2)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우리의 첫 만남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때는 내게 특별한 시기로 자리 잡고 있다. 그때 그곳에서 20대 중반까지를 함께 보냈던 사랑스러운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때는 2008년. 제주시의 한 인문계 여자 고등학교 2학년 7반, 새 학기 첫날.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는 사람이 없지?’, ‘내일도 여기로 등교하는 게 맞나?’ 싶은 어색한 공기……. 그 속에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개성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기를 하루, 이틀…. 보이지 않는 흐름으로 숨어있던 서로는 조심스레 서로에게 말을 건네며 자신을 드러낸다. 작은 인사말 하나로도 각자의 마음을 드러내고, 매력을 뿜어내며. 그리고 날이 갈수록 인사 뒤에 재잘재잘 수다들이 이어 붙는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는, 서로가 서로를 웃겨대는 횟수가 점점 늘어간다.

끊임없이 웃고 웃다 보니 처음엔 눈에 보이지도 않던 서로가 차츰 내일도 모레도 보고 싶은 존재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나와 내 친구들)는 매일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8~9명이 무리를 이뤘다. 불과 몇 개월 안에 타인이 이렇게 좋아지다니.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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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의 추억, 개그 대향연

내 친구들은 정말 멋졌다. 친구들의 매력은 뭐니 뭐니해도 ‘개그감’이었다. 한 왈가닥하거나, 조용조용 툭툭 유머를 구사하거나, 여하튼 다들 웃겼다. 한자리에 모이면 어찌나 왁자지껄한지.

타고나길 소심하게 타고났는지 아님 ‘여자가 되어야 해!’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는지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이미지 관리’를 하고 긴장하며 살아가던 나는 이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그런 건 다 잊고 속이 뻥뻥 뚫리도록 웃을 수 있었다. 그런 웃음 속에서 ‘이렇게 유쾌하게 살 수도 있구나’를 느끼며 감탄하기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내겐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제대로 유치하고 신나게 놀았다. 다들 노는 데엔 창의력 대장이라서, 우리가 있는 곳은 교실이든 자습실이든 편의점이든 어디든 ‘놀 공간’이 되었고 모든 물건들이 ‘개그 소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짜내려고 해도 안 나올 것 같은 기발한 생각들을 잘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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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특히 좋아했던 건 주로 상황극(?)류 였다. 작게는 ‘사물 개그’. 예를 들면 피자집에서 갑자기 다 먹은 피자 판으로 탁구 치는 시늉하기. 그렇게 한 명이 ‘사물 개그’를 시작하면 다들 뭐든 하나씩 한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뻘쭘해 하며, 식상하거나 덜 웃긴 (예를 들면 바나나를 들고 “여보세요”같은 것…) 걸 하면 질타를(?) 받는 것이다.

한 번은 학교 체육관 공사로 운동장에서 철골 기둥 용접 작업이 한창이던 때가 있었다. 땡 때대 댕! 땡 때대대 댕! 땡 땡! 아저씨들이 쇠를 두드리며 용접을 하고 있다. 그럼 내 친구 하나는 그 옆으로 달려가서 용접 소리가 꽹가리 소리라도 되는 듯 탈춤을 춘다. 애들은 옆에서 배꼽을 잡고 쓰러진다.

또 한 번은 매점 앞 의자에 앉아있던 친구가(탈춤 춘 친구와 동일인물이다.) 다짜고짜 연기를 하며 상황극을 시작했다. 엉덩이가 의자에 붙었다는 것이다. 의자 옆을 손으로 쥐고,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못 일어나는 시늉을 한다. 하도 그럴듯해서 우리가 한참 웃고 있으면, 옆 반 친구들도 모여든다. 그 친구는 더 열심히 “아 진짜 안 떼어져~!!”라며 의자를 들고(엉덩이에 붙인 채) 왔다 갔다 열연을 펼친다. 그 통에 진짜 속아 넘어가는 친구가 나온다. 그럼 또 다 같이 꺄르르르~ 하고 웃음이 터진다.

짝짓기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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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웃고, 또 웃기고.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활기! 들뢰즈·과타리는 이런 활기는 활발한 ‘성’-‘짝짓기’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친구 얘기하다 웬 ‘성’이고 웬 ‘짝짓기’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보통 ‘성’하면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짝짓기에는 모순이 있다. 서로를 ‘나와 다른 존재’로 두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짝짓기를 하려 하면 할수록 서로 배타적이 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다.

예컨대 여자는 ‘남자와 다른 점’을 자신에게서 발견하며 자신을 여자라 말하고, 남자는 ‘여자와 다른 점’을 자신에게서 발견하며 자신을 남자라 칭한다. 그리고 각자는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 ‘여자’ 또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 결합을 하고 싶다면서 계속해서 너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아이러니!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없애버리면 하나가 되는 짝짓기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성은 분명히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질적인 것들을 동일시하는 데에선 성-짝짓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들뢰즈·과타리가 말하는 성은 존재적, 기운적 ‘맞물림’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선 서로를 배타할 필요도, 공통점을 찾아낼 필요도 없다. 이것은 진정 ‘결합되는’ 것이다. 다양한 것들이 만나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고, 서로의 리듬과 속도를 바꿔놓는 것. 그 과정에서 이제껏 있던 ‘나’와 ‘너’는 사라지고, 공동의 리듬과 배치체, 즉 ‘무리’가 만들어지는 것. 이것이 ‘성’이다.

예컨대 혼자 있을 때는 누구도 하지 않을 짓을 함께 있을 때, 혹은 함께 있기 위해 한다. 서로가 없었으면 절대 나타나지 않았을 모습들이 각자에게서 마구 튀어나온다. ‘나’라고 고집하고 있던 사유, 행동의 패턴들이 뒤집힌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흐름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여고 시절’은 성적 활기가, 짝짓기의 능력이 정점을 찍은 시기였다. 우리에게 ‘나’와 ‘너’가 얼마나 흐릿했는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나의 감정은 이러하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등등의 생각이 있었다면, 그러니까 ‘나’를 붙들고 있었다면 서로를 웃기는 데에 그렇게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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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와 ‘너’가 얼마나 흐릿했는가?

우리는 그저 웃음을 유발함으로써 공동의 흐름을 만들고, 거기에 친구들을 더더욱 깊게 접속하도록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때의 집중력은 어마어마하다. 온갖 아이디어들, 온갖 능동적 움직임들이 튀어나온다.

용접 소리를 듣고 탈춤이 나오는 것, 의자에 앉아있다 뜬금없이 연기를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재적소에 눈알을 굴리고, 코를 찡긋거리고 입을 샐쭉이는 것 등등 적중률 높은 고도의 ‘웃음 포인트’들을 우리는 찾아낼 줄 알았다. 장난들이 재밌기도 했지만 서로 접속하는 것 자체, 그때 우리 신체가 일으키는 능동성 자체, 그 생기를 만끽하는 게 즐겁다.

‘활기’는 이러한 짝짓기가 활발한 만큼, 서로가 연결되며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옅어지는 만큼 꽃핀다. ‘성적 능력’으로 시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스며들어있을 때 거기에 충만함과 활기, 끈끈한 긴장도가 있다.

이 충만함은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전염되고 싶게끔 만든다. 다른 것들과 섞여드는 능력이 있는 존재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그런 존재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그러모은다. 나와 너 ‘사이’에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퐁퐁 샘솟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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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친구들이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것도, 우리 사이의 왕성한 ‘짝짓기’,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 때문이었을 거다. 나는 이 ‘매력 넘치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디서 어떻게 살든 행복할 것 같았다. ‘우리가 평생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어린 맘에 종종 올라오곤 했다.

쌍커풀 수술은 슬프다.

그렇게 깨 발랄한 2~3학년이 지나가고, 졸업. 다행히 모두 같은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우리는 계속 만남을 이어나갔다. 대학생이 된 친구, 직장인이 된 친구, 심지어 재수생이 된 친구들까지도 열심히 만나 놀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예전 같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변화의 신호탄이 되어준 사건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이 하나둘씩 ‘쌍커풀 수술’을 하겠다는 선언을 해왔던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 이젠 정말 개나 소나 하는 수술이라지만 나에겐 좀 충격적이었다. 내 친구들이? 남들이야 예뻐지고 싶어서 수술을 할 수 있다. 외모가 중요한 사람들이야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친구들의 개그감과 매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볼 때 얘네들은 모자랄 게 없어 보였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만큼 매력이 넘치기 때문이다. 누구든 며칠만 같이 지내보면 이 친구들의 매력에 퐁당 빠질 거다. 그런 매력으로, 그렇게 즐겁게, 그냥 살면 안 되나? 나는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자기 매력을 모르지?

내 맘과 달리 한 명 한 명이 본격적으로 수술을 결심하고 수술 일정을 잡았다. 나는 그때마다 이 사랑스런 친구들이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에 그들을 극구 말렸다. 간절한 맘을 담아 “넌 진짜 매력적이야!”라며 설득했다. 지금도 얼마나 귀여운데!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하지만 친구들은 기어코 얼마 후 선글라스를 끼고 붓기에 좋다는 호박즙을 손에 들고 나타나서 헤헤거리곤 했다. 수술을 했다고 친구들 얼굴이 많이 바뀌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지 않았다. 마치 친구의 영혼은 이미 나를 떠나버린 것 같았다. 우리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지고, 서글펐다.

질투의 감정이었냐고? 그런 질문을 받고 여러 번 생각해봤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비포와 애프터의 모습을 보면 누군가는 ‘얘들 참 예뻐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내 눈엔 개성 넘치던 친구들이 뭐에 홀린 듯 “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라며 자신의 매력을 싹뚝싹뚝 잘라내 버리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최근까지도 그때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슬플 정도였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영영 잃고 싶지 않을 만큼 절절하게 친구들을 사랑했던 걸까? 이 슬픔과 상실감은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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