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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부 자립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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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밴드] 2학년 9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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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7-12 23:20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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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의 경제학』 후기


안녕하세요! 2학기 9주차 화요세미나 후기를 쓰는 준혜입니다:)

이번 주는 석기시대 경제학의 마지막 세미나날이었는데요. 에세이를 석기시대 경제학으로 쓰는 하늘이 발제를 맡았습니다.


하늘은 명랑카페를 하며 고민하던 지점을 석기시대 경제학으로 풀어냈습니다. 명랑카페를 하며 냉장고에 개인커피(?)를 넣어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왠지 하나하나 들어주는 것은 너무 카페를 사적(?)으로 다루는 것 같아 ‘개인 커피는 넣어주지 말 것’이라는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기준을 적용해가다 보니, 판단하기는 편했지만, 왠지 모든 게 결정 되어 있는 것 같고, 사람은 고려하지 못하고 도덕만을 쫓는 느낌에 찜찜한 마음이 들었던 거지요.


명랑카페가 연구실이라는 공동체의 관계성 위에 있는 공간인데, 누구에게든 똑같이 적용되는 기준이라면, 관계성을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공용냉장고에 이러저러한 개인의 것들을 전부 넣어줄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늘은 이미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명랑카페와의 그 사람의 관계성을 고려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계성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미나에서는 석기시대 경제학의 원주민들의 관계 맺는 방식, 호혜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저자는 호혜성을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요. 하늘이 발제에서 정리해준 내용을 살짝 빌려와 보자면, ①일반적 호혜성은 순수하고 이타적인 거래(보답이 늦거나 심지어 없어도 되는 호혜성, 부모 자식간의 선물 등) ②균형적 호혜성은 등가적이고 즉각적인 보답이 있어야 하는 거래(선물 교환, 지불, 교역 등), ?부정적 호혜성은 “순수하게 실용적인 이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개방적 거래”(책 281p). (흥정, 물물교환 혹은 강탈, 도박, 속임수 등) 로 나눠집니다.


하늘의 발제를 보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지금 현대사회는 3번 호혜성으로만 관계를 맺고 있었더라고요.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취하는 것’ 엄밀히 말하자면 관계적 거리두기(?)를 하는 셈이지요. 다들 여기에 할 말이 많아보였습니다. (생일 선물을 서로 주지 않기로 퉁친다거나, 무언가를 받으면 고대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등등)


한창 부정적 호혜성에 대해 토론(?)하다가 이런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건 제가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바로, “주고 받는 것을 없애 버림으로써 맺는 관계란 무엇이 이익인가?” 였습니다.


원주민들은 관계를 맺기 위해 교환을 하지만, 지금 우리는 교환만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똑같이 주고 똑같이 받는 방식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얼마나 서로에게 인색해지는 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요.


하늘형의 카페고민에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교환’이라는 행위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카페에서 어떤 교환이 이루어지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고민 해결에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카페를 맡게 될 입장에서..ㅎ 저도 생각해봐야겠군요..)



『논어』 후기

안녕하세요. 민주입니다. 논어 수업도 한 주가 남은 걸 보니 2학기가 마무리 된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2학기는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깨봉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ㅋㅋㅋ


네 그럼 논어 후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 논어 강독은 깨봉의 핫한 커플이죠. 쑥과 용제가 준비했는데요. 쑥과 용제가 공식적으로? 함께 하는 모습은 또 처음 보는 것 같네요. 흐흐.


쑥 언니는 '剛毅木訥 近仁'을 체질에 빗대어 설명해주었습니다. '강'은 체질이 굳세고 항해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라 어떤 탐욕에도 흔들리지 않죠. '의' 체질은 '강'과 굳세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방향성에서 차이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강'이 내면으로 향한다면 '의'는 외부로 향해서 어떤 일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고 의지를 가지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목'은 질박하고 소박하고 순박한 체질의 사람으로 가식없고 순수하죠. '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침잠하지만 실천은 빠른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요.ㅎㅎ 바로 질문 들어가죠~ 이 네 가지기 특성이 왜 '인'에 가까운지 궁금했습니다. 또 이 구절을 풀면서 어떤 점을 배웠는지 궁금하다는 질문도 들어왔죠. 언니는 공자가 항상 '인'에 대해서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특성으로 이야기 하는 때가 많이 없어 궁금해서 풀어보고 싶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여전히 가닥을 못 잡겠는 '인'. 오늘에야 비로소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구요. ㅎㅎ


제가 생각할 때 타인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자아'가 세워질 때 '인'도 덩달아 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극기복례 위인'이라는 구절이 있듯이 자신을 극복해서 타자에게 '예'라는 형식을 통해 가닿아야 '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한 사람은 천지와 간극이 없는 사람인데 자아가 서게 되면 간극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실은 여기서 자아가 선다는 게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요. ㅎㅎ) 그래서 공자가 매 번 다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으셨을까요? 각자 타자와의 관계가 막히는 지점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용재의 강독도 재밌었습니다. 선비에도 급이 있죠. 그럼에도 선비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스스로 옳은지 아닌지를 감각할 수 있다는 거죠. 옳지 않다고 감각했을 때 옳음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급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요. 해야할 일을 하고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장의 크기가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국가, 마을, 자기 자신. 이렇게요.


저는 옳고 그르다는 감각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면 팔일무를 춘 계씨 가문처럼 천리를 거스르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자께서도 계속해서 학문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 질문을 던지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from 달팽쓰) '자신이 무엇에 부끄러움을 느끼는지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하구요. 무릎을 탁 쳤어요! 그런 점에서 용재가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감각이라고 말한 건가 싶기도 하고요.


갑자기 마무리를 하고 싶어졌는데요. 논어를 할 때는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무심하게 하는데요. 할 때만큼은 집중해서 하니 재밌습니다! 갈수록 더 재밌어 지는데요. 매 시간 배워가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선비의 자세를 내 일상에서 접목해보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도 해보면서요. ㅎㅎ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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