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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부 자립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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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글리 2학기 6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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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죠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6-26 13:37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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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글리 2학기 6주차 후기를 가져온 미솔입니다^^


1교시는 줄자샘과 함께하는 영어 수업이었어요.

저희는 굴드의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영문판을 함께 읽고 있는데요.

이번에 배운 표현들 중 재미있었던 영어표현 하나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at my expense”이라는 표현인데요,

‘expense’라는 단어는 단독적으로 해석해보자면 ‘비용’이라는 뜻이에요.

하여 “at my expense”라고 하면, 직역하자면 “내 자비로”라는 뜻을 갖습니다.

한 마디로 내 돈 내고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단어는 쓰이는 맥락에 따라 조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굴드는 어떻게 썼는지 보실까요?


“The epilogue to this essay provides, at my expense, the most important of all lessons in science and a fitting end to the book." -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영문판 中…>


이를 해석해보자면 자신의 에세이의 에필로그가 자기자신에게는 타격이 되지만 과학에 최고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으며 이 책의 엔딩으로도 딱이라고 굴드는 말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at my expense”라는 표현은 자신을 희생하여 그 대가로 뭔가가 이루어졌을 때 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줄자샘께서 들어주신 예가 재미있었는데요,

“laugh at my expense”라는 표현이었어요. 이는 실제로 굉장히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래, 나를 팔아서라도 웃어라~” “나를 희생해서라도 너네가 웃으면 되지~” 이 표현은 보통 이렇게 해석됩니다.


그러니까 ‘expense’라는 단어는 단독적으로는 주로 ‘비용’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이러한 맥락에서는 ‘희생, 대가’라는 뜻으로도 풀이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의 다양한 활용법, 재미있으시죠~?ㅎㅎ



다음 교시는 근샘과 함께하는 <테라가타> 수업이었어요!

오늘의 발제자는 저와 보라언니, 그리고 자연언니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왜 굳이 탁발인가?’

탁발을 주제로 글을 썼던 보라언니와 자연언니에게 주어진 공통 질문이었습니다.

자연언니가 탁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내려놓기’였고,

보라언니는 ‘분별심 버리기’였는데요

‘내려놓기’와 ‘분별심 버리기’를 훈련하기 위해서는

탁발 외에도 의복과 주거지 등 다룰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 중에서도 왜 ‘탁발’인가?

결국엔 글들이 ‘탁발’의 특수성을 다루지 못하고 있었던 건데요

선생님께서는 ‘탁발을 너무 일반화시켰던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간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탁발도 그것이 말해지는 맥락을 잘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탁발은 그 자체로 훈련이고 그걸 하면 좋다!라고 저는 계속 봐왔는데요

탁발도 계행이라는 전체 맥락 위에서 말해져야 하며,

계행 또한 ‘열반을 향한 공부’라는 전체 맥락 위에서 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반을 향한 공부로는 계, 정, 혜

즉, 행동, 마음, 지성 세 가지가 있습니다.

결국엔 이 세 가지를 다 해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우리는 종종 이 전체 맥락을 놓치고 계행만 따르면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계행은 다만 우리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배치일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하여, 정과 혜를 바르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계행이 공부에서 점하는 위치를 정립하고 그 위에서 그것이 가진 의미를 봐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배웠습니다.


탁발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탁발은 계행이라는 전체 삶의 양식 중 한 가지일 뿐이잖아요.

삶의 양식으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복과 주거지 등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탁발을 다룬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탁발은 결국 삶의 많은 측면들 중 ‘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생명이라면 모두 먹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먹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탐심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먹는다’는 행위에 탐심이 있고서는 수행이 될 수가 없겠지요.

하여 불교는 탁발을 말합니다. 나의 입맛과 취향을 내려놓고, 집집마다 차례차례 돌며, 무엇이 주어지든 그것을 먹습니다. 수행에 방해가 되는 탐하는 마음이 자라는 것을 애초에 잘라버리는 것이지요.


또한 정말 현실적인 측면도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탁발이 아니라면 수행자들이 갖춰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입니다. 무언가를 먹으려면 장보고, 냄비에, 후라이팬에,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그 외에도 불피우고, 남는 반찬 처리 등 잡다하게 뭔가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현실적 차원에서도 당시 수행자들에게 탁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것입니다.


‘탁발’이라는 주제가 너무 재미있어서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ㅎㅎ;; 제 글에 대해서는 좀 짧게 써보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수행승은 감각적 쾌락을 떠날 때 행복하다”라는 말이 인상깊어서 그것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지금껏 감각적 쾌락에 행복을 두어온 저로서는 이를 이해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승들도 뭇삶과 마찬가지로 육신을 가지고 있고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도 쾌, 불쾌를 느끼겠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지금껏 ‘감각’한다는 것을 ‘쾌,불쾌’를 느끼는 것과 똑같이 봐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알려주셨습니다.

감각한다는 것과 쾌, 불쾌는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요?


쾌락에는 이미 ‘좋아’가 들어가 있습니다.

쾌, 불쾌에는 이미 우리의 가치평가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좋아’, ‘이건 싫어.’

하지만 감각은 어떤가요? 거기에는 가치평가가 없습니다. 그냥 감각할 뿐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똑같은 것을 감각하고 나는 그것을 쾌하다고 생각할 때,

어떤 이는 그것을 불쾌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각한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에 대한 가치평가는 사람마다, 맥락마다, 상황과 조건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감각한다는 것은 일대일로 쾌불쾌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저는 지금껏 감각과 쾌,불쾌를 같다고 보아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행승들이 뭇삶들과 다른 지점이 어디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수행들은 어떤 것을 뭇삶들과 똑같이 감각하지만, 그것이 가치평가로 이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감각한 바가 쾌불쾌로 이어지는 그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 바로 수행승인 것이죠.

선생님은 저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무언가를 먹을 때 그것이 ‘맛있다’라고 우리는 흔히들 말합니다.

이 ‘맛있다’에는 우리의 가치평가가 들어가 있는데

그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먹으면서 맛에 대한 가치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그것을 먹으면서 맛에 대한 탐착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맛있다’는 말을 할 때 한번 더 고민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식상녀의 고민…;;)



오늘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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