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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었노라, 고통아! | 니체, 『도덕의 계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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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24 07:29 조회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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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었노라, 고통아!



줄 자 (글쓰기학교 고전평론반)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근원에는 ‘삶의 의지’가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지키고 싶은 것은 당연하니까. 심지어 식물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니체는 ‘삶의 의지(will to life/live)’가 아니라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가 생명의 본질이라고 한다. 우리는 삶을 연장하면서가 아니라, 힘이 증대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고 그렇게 하고자 한다고. 그 과정에서 생명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우리의 ‘본래적인 능동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뭐라고? 삶의 의지가 나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 아니라고? 나는 힘을 증대시킬 때 가장 행복해진다고?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보여주는 힘에의 의지를 배우며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꿔보자.





삶의 의지에서 힘에의 의지로


쇼펜하우어는 ‘의지란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욕망, 즉 살고자 하는 의지(『니체 그의 삶과 철학』, R. 홀링데일, 북캠퍼스, pg.122)’라고 한다. 사자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사슴의 삶의 의지. 달려오는 자동차를 가까스로 피했을 때 느낀 삶의 의지. 그렇게 우리는 살고자 하고, 자기를 보존하고자 하지 않던가.


니체는 생명에게 삶의 의지는 힘에의 의지와 비교했을 때 부차적인 요소라고 한다. 의지란 ‘~을 하고자 함’이다. 그는 ‘살고자 함’이 아닌 ‘힘을 쓰고자 함’이 생명의 근본적 욕망이라고 한다. 의지란 ‘단지 생존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확장하려는 노력으로서 훨씬 더 역동적으로 드러나’(같은 책 pg.329)야 한다고. 그러면 힘에의 의지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먼저 ‘힘’을 생각해 보자. 니체가 말하는 힘(macht)은 ‘사람이나 동물이 몸에 갖추고 있으면서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 작용. (네이버 국어사전 1번 의미)’이 아니다. 오히려 사전의 3번 의미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역량’에 가깝다.


허버트 스펜서가 삶을 ‘외적 환경에 대한 점점 더 합목적적인 내적 적응이라고 정의’하자 니체는 다음과 같이 그 정의가 갖는 오류를 지적하며 힘에의 의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정의(스펜서의 정의)는 삶의 본질을, 생명이 지닌 힘에의 의지를 오해하고 있다. 이 정의는 자발적이고 공격적이며 침략적인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방향을 정해 형태를 부여하는 여러 힘, 그것들의 작용으로 비로소 ‘적응’이 이루어지는 그 힘들의 원칙적인 우선권을 간과하고 있다. 이 정의는 또한 유기체 자체 내에서 삶의 의지가 능동적이고 형태를 부여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여러 최고 기관의 지배적인 역할을 부인하는 것이다.

니체, 『도덕의 계보학』, 2논문 12절, 연암서가, pg.103~104


스펜서는 삶이 외부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 물론 환경이 바뀌면 우리도 그에 맞춰 변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수동적이기만 하다고? 동의할 수 없다.



우리의 역량(macht)을 사용한다는 것은 힘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대상을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친구의 글을 보며 코멘트 할 때, 내가 나의 고치고 싶은 점을 바꾸려 할 때.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한다고 존재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이러한 공격, 침략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삶의 의지는 자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그 의지의 목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생존, 생존! 자신이 갖고 있던 욕망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자기 내면으로 집어넣어 ‘적응’ 시킬 뿐이다. (2논문 16절) 이 과정에도 고통은 있지만, 이는 위의 고통과는 다른 종류의 고통일 것이다.


반면 힘에의 의지는 변한 외적 환경에 처하자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버린다. 그리고 그 조건 위에서 ‘형식을 창조하며 형식을 새겨 넣는 일을 한다’. (2논문 17절) 예전의 자신은 극복되었고 새로운 자신이 창조된다. 아직도 힘에의 의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가. 더 살펴보자.



제압 과정의 연속, 도덕의 계보학


니체는 힘에의 의지가 생명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현존하는 모든 존재가 자기 극복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도덕의 자기 극복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목적이나 모든 효용성은 어떤 힘에의 의지가 보다 힘이 약한 것을 지배하여, 그 약한 것에 자진해서 어떤 기능의 의미를 깊이 새겼다는 표시에 불과하다. 또 어떤 ‘사물’, 어떤 기관, 어떤 관습의 전체 역사도 이와 같이 늘 새로운 해석과 정리라는 계속되는 기호의 연쇄일 수 있는데, 이때 그 해석과 정리의 원인 자체는 자기들끼리 연관성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우연히 잇따르고 교체될 뿐이다.

같은 책, 2논문 12절, pg.101~102


형법의 계보학을 살펴보자. 인간이 약속할 수 있게 되며 가능하게 된 부채, 부채를 고통으로 갚게 된 배경, 변상 능력이 없는 자에 대한 은총. 형법의 의미와 목적은 끊임없이 바뀐다.


영국 계보학은 현재 우리에게 작동하고 있는 효용성을 기준으로 그것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전제 위에서 그 발생 원인을 거꾸로 찾는다. 그러나 니체는 형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요소가 만나 예상하지 못한 자식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약속할 수 있는 존재로부터 죄를 지은 존재라는 자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문제는 힘에의 의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 약자들은 자기 보존을 전제하고 힘에의 의지를 사용한다. ‘눈에는 눈’이라는 법은 원래 자신의 눈이 다친 것에 대해 눈 이상의 것으로 배상받지 말라는 법이었다고 한다. ‘반동적인 파토스가 넘치지 않게 하고 절제를 요구(pg.98)’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의미는 변형되어 ‘나를 다치게 한 상대방에게 똑같이 해주겠어!’가 되었다.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마음과 만난 형법은 ‘내’가 침해당한 것에 대해 침해한 자를 죄인으로 만든다. 나의 고통에 책임져! 자기 보존을 위해 법을 새롭게 해석했다.


반면 강자들은 ‘모든 제압과 지배는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자 정리(pg.101)’임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더욱 우월한 힘에 침해받았을 때, 지금과 다른 존재로 변한다. 강자는 새롭게 해석하는 자일뿐만 아니라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소멸하더라도.



고통을 위대한 건강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돼서. 내 생각의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것 같아서. 가장 괴로운 것은 글을 쓰며 내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이 나를 살아가도록 한다.


30대 중반, 나의 모든 목표를 이루었을 때 나는 매우 허무했었다. 이번에 글을 쓰며 그 허무의 이유를 깨달았다. 꿈을 이루고 나면, 그 꿈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안에서 존재적 보존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기 극복이라는 힘에의 의지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원한다. 왜냐하면 힘이 증가하는 느낌을 원하기 때문이다. 최대로 증가한 힘은 최대의 행복을 안겨 준다. 그런데 가장 큰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극복한 자, 곧 초인이다.

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 pg.295


니체가 자신의 시대에서 나 같은 사람들을 본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가 힘을 얻어가자, 이전보다 부유해진 사람들은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 시대의 사람들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더 풍족하고 더 안락한데, 나처럼 허무를 느꼈으리라. 그는 우리가 자기 극복을 멈추면 살아있는 것이 의미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허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가? 자기 변형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책을 읽어라. 글을 써라. 코멘트를 받아라. 또 글을 써라. 위대한 건강을 향해 계속 나아가라.



2021. 6. 19. / 글고평 2학기 ; 도덕의 계보학 2논문 중간글쓰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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