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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앎의 자리 바로보기 | 문성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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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5-27 20:12 조회2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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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앎의 자리 바로보기




이준혜(청공자 용맹정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공자의 제자 중, 자로에 관해 읽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였다.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에 번번이 빗나가서 매번 꾸중을 듣는데도, 마음 상해하지 않을 수 있다니! 스승의 진심어린 꾸중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자로의 태도는 내가 피드백을 들을 때 취하는 태도를 떠올리게 했다. 자로처럼 번번이 피드백을 듣는 입장이지만, 나는 번번이 내심 마음 상해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내게 피드백을 들어올 때면 ‘나 할 수 있는 거였는데.. 또 놓쳤네..?’라는 생각으로 바로 빠져버린다. 계속 변명거리를 찾고 싶어지고, 해명하고 싶은 마음들이 불쑥 올라오는 것이다. 그게 극에 달하면 혼자 피드백을 받던 상황-재구성하기(☆)를 통해 비난받았다고 생각하고 마음 상해한다. 그리고 말을 아낀다. 또다시 피드백 받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어』 안에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는다는 자로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단순+솔직 자로는 피드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스승인 공자에게 들이(?)대고, 까인다. 나는 이런 자로의 태도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자로는 어떻게 번번이 꾸중을 들어도 마음 상해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열정 있는 제자, 용맹한 자로


일단, 자로는 ‘어떤 인물인가?’ 하면, “해진 솜옷을 입고도 여우가죽이나 담비 가죽으로 된 옷을 입은 자와 함께 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161쪽) 이다. 그는 해진 솜옷을 입을지언정 자신을 거짓되게 꾸미는 것을 오히려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스승이라면 이런 제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비록 안회처럼 내 뜻을 완전하게 소화해서 실천해 내는 제자는 아니지만, 비록 제대로 실천하는 데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 실천하는 마음에 삿됨이 없고, 또 그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에 항심(恒心)이 있는 제자라면요.

문성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북드라망, pg.154


자로는 공자에게 있어 세상 완벽한 제자, 안회와 딱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스승인 공자에게도, 주변 제자들에게도 대놓고 까이고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자로는 그런 것에 전혀 마음 상해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자로는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미처 다 익히기 전에, 또 다른 가르침을 듣게 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배우려는 열정이 있는 제자였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앞뒤 계산 없이 계속해서 들이대고, 까이더라도 부딪치는 것이다.


자로는 왈패 출신이라 겉보기에는 거칠고 단순해 좀 모자라 보였지만, 실은 누구보다 내면이 단단하고, 투명하고, 확고한 사람이었다. 스승님인 공자의 말씀을 자기 삶에서 얼마나 실현시킬 수 있을지를 항시 고민하는 제자, 배우려는 열정이 가득하고, 용맹한 충성심 가득한 제자, 그게 바로 자로다. 자로에게 있어 자신의 자리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해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가 공자의 꾸중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알았던 것은 이런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까지가 나의 자리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내가 피드백을 듣고 마음까지 상해했던 것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혹은 나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꾸만 나의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해명할 거리를 찾고, 합리화하고 싶어 했다.


경험으로 다 아시겠지만, 사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가 즉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앎의 자리인 겁니다.

같은 책, pg. 164


그러나 공자님께서는 자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자로는 투명하게 자신을 모자람을 다 드러내고, 그 모자란 자신에서 가르침을 구한다. 그리고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보려, 배움으로 가져가보려 애쓴다.

내가 계속해서 합리화하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 자신 안에 갇히는 것 외에는 없을 것이다. ‘완벽한’ 나의 표상에서 벗어나 배우고자 한다면, 또 배우고 싶다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지점이 지금 나의 앎의 자리인 것부터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자로처럼 투명하게 드러내고 나의 모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배움이 시작될 것이다.




2021. 5. 26. / 청공자 용맹정진 / 2학기 용-되기 수련 3주차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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