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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다르게 관계 맺기 |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가다머 고통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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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5-19 08:14 조회2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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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다르게 관계 맺기



서형 (남산강학원 청년)


난소암이 두려워서 난소를 제거하고, 유방암이 두려워서 유방을 제거한다고? 그럼 대체 세상에 왜 태어난 거지? 그렇게 병이 무서우면 태어나지 않는 게 최고의 예방책 아닌가. 그뿐 아니다. 암이 아닌 근종이나 내막증 같은 경우도 여차하면 자궁을 제거해 버린다. 의사들은 너무 쉽게 권유하고, 환자들은 너무 빨리 승낙한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북드라망, pg381


고미숙 선생님과 철학자 가다머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현대 임상의학은 고통을 꼭 겪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본다. 할 수 있다면 화학적 진통제를 이용해 “극심한 통증”을 체감하지 않도록 하거나 병이 생기기 전에 장기를 제거한다. 고통에 대한 사유는커녕 장기를 제거해 생기는 부작용이 장기 제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조차 고민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치료는 많은 부작용과 환자를 불필요한 고통 속으로 내몰기도 한다.


이에 가다머는 살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빠르게 없애고자 하는 이러한 의료행위가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잃게 한다고 말한다. 치유의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점점 조금의 고통도 인내할 수 없게 되어가는 것이다.



고통은 내게 나타나서 나를 덮치는 그러한 감정으로 우선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항상 이겨내야 하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그 어떤 것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은 마침내 우리에게 부과된 그 어떤 것을 해결하기 위한 아마도 아주 대단한 기회인 것이다. 인생의 가장 고유한 차원은 자신이 극복하지 못한 바로 그 고통 속에서 예감될 수 있는 것이다. (...) 잘 해내서 이겨냈다는 기쁨, 그리고 결국 다시 건강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이 있다. 잘 이겨내서 깨어 있고, 그 깨어 있음에 몰두했다는 기쁨은 자연히 우리의 손에 쥐여 준 가장 훌륭한 약품이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가다머 고통에 대해 말하다』, 「고통, 철학자의 견해: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현문사, pg33


위의 책에서 말하는 고통이란 주제로 마지막 강연을 했을 당시 가다머는 100세의 연세로 좌골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소아마비의 고통을 겪었음에도 고통이 “세계와의 통로”를 닫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해결하지 못한 어떤 것을 해결하기 위한 “아주 대단한 기회”라고 말한다. 고통은 환자 스스로 그 속에 머무르며 치유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된다. 고통이 환자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오직 환자 고유의 것이 된다.


환자에게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의사, 약물의 도움이 아예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일어난 사건이나 습관 등의 맥락을 모른다. 의사는 “단지 약물에 대한 처방만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보고 절망에 빠지지 않고 참을 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고통을 환자에게(우리 모두에게) “경고”와 “질책”이자, 환자 자신이 “삶에 고유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기회로 보는 것이다.




그는 고통에 대한 태도로 통증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 상태”와 같은 “무감각이나 평정”의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그가 뜻을 같이하는 선임자인 칼 야스퍼스가 말하는 “고통에 대한 인간 태도의 가능성”을 살펴보면, 현대의학에서는 “통증과 싸우”거나 “통증을 피하고 부정한다.” 하지만 가다머와 야스퍼스가 공통으로 주제화시키는 고통에 대한 다른 태도의 가능성은 고통을 겪고 그것을 넘어가면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고통을 통한 실존의 깨임”에 있다. “한계 상황에서 비로소 고통은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 누구나 자신과 만나는 것을 짊어져야 하고 성취시켜야 한다. 아무도 고통을 그로부터 빼앗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yaspers 1973) (위와 같은 책, 「후기: 헤르만 랑」, pg57)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울음으로 세상을 만난다. 그때의 울음은 “고통의 표현인가?”라고 가다머는 묻는다. 우리는 현대의학과는 다르게 고통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통과 대적하고 회피하는 태도는 인간의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겪어나가야 할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게 만듦으로써 미성숙한 존재로 남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 안에 온전히 존재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겪고 넘어가면서 고통을 다르게 겪을 수 있다. 그 안에서 느끼는 고통을 넘어가는 기쁨은 고통을 회피함으로써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 고통을 “삶의 상황과 삶의 극복 그 자체에 공헌할 수 있는 것”(같은 책, 58쪽)으로 볼 수 있는 길을 우리(환자들)에게 열어줄 것이다.



2021. 4. 20. / 세계 세미나 / 4주차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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