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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 진화의 전제 | 올리버 색스, 『마음의 눈』&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의 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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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4-08 23:00 조회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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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 진화의 전제




이유진(인류학 세미나)


전체로서의 마음


삼나무는 오래 산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무대가 되었던 일본의 야쿠섬 삼나무 숲에는 일본의 신석기 시대인 조몬 시대부터 살아왔다고 해서 조몬 삼나무라 불리는 삼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7,200년이나 된다고 한다. 숲에는 천년을 더 산 나무들이 가득하다. 잘려진 삼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나이테 하나하나에 그 해의 여름은 얼마나 더웠는지,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비는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에 따라 선이 생겨나고 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숲의 자연과 나무의 일생이 그려진다. 숲에서 나무들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숲이라는 공간, 햇빛, 숲의 냄새, 바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100년도 못 사는 존재인 인간이 천년을 너끈히 살아내는 나무를 바라보는 감동이 있다. 그 순간, 나무의 천년과 인간 일생은 스치듯 교차점을 만들어 내고 인간의 마음은 나무의 마음에, 또 숲의 마음에 일부가 된다. 그리고 나무의 시간과 숲의 공간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실독증에 걸린 릴리안이 거실에서 하이든 4중주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다. 거실에는 릴리안과, 남편 클로드와 저자 올리버가 있다. 처음 릴리안이 첫음을 잘못 쳐서 혼란에 빠져 울음을 터뜨린 순간 모두의 마음은 무너졌지만 릴리안이 제자리를 찾고 예전의 힘과 감정이 온전히 실린 절정의 예술적 연주로 하이든을 소환하였을 때, 거실 안 모두의 마음에는 새로운 시공간이 만들어져 감동으로 채워졌고 릴리안은 “다 용서했어.”라고 말한다.



용서한다는 것

 

전체로서의 마음은 초월적 존재(자연, 음악, 神)와 연결되어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며, 그 안에서 위대한 존재와 하나가 되기에 충만함과 감동이 있다. 릴리안은 용서했다고 말했다. 무엇을 용서했다는 말일까? 릴리안은 재능 있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였다. 서양에서는 음악적 재능을 신의 “Gift”라고 말한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전체(神)의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감각과 근육, 육체와 정신, 기억과 환상, 지성과 감성, 자신의 총체, 살아 있음이 종합적으로 융합된, 일종의 초융합적 상태를 필요로 하는 활동이었다.”(pg41) 음악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몰입’과 ‘우아함’과 ‘기쁨’이었을 텐데, 음악의 신은 선물을 주어 기쁨을 알게 하고, 병을 주어 선물을 빼앗아갔으니 릴리안은 자괴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릴리안이 하이든을 연주할 수 있었을 때, 시지각의 손상에도 불구하고, 더 예민해진 청각, 음악적 기억력과 상상력으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음을 알았고, 다시 전체의 마음을 만들 수 있음에 자신과 신을 용서했다.



용서는 한자로 얼굴 용(容)과 용서할 서(恕)를 쓴다. 이 恕자가 재미있다.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자로 되어있다. 같은 마음(연결된 마음), 전체의 마음이란 뜻이 되지 않을까? 진정한 예술가는 전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릴리안은 시지각 손상이라는 고난에 닥쳐서도 여전히 기쁨을 누리고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학습(뇌의 가소성)으로 새로운 감각을 개발할 수 있었다. 릴리안뿐만이 아니다. 책에 소개된 다른 사람들도 시각이 손상되거나 잃어버리게되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지 능력을 개발하여 마음의 눈을 뜬다.



우아한 감정의 패턴

 

전체는 부분들의 연결과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부분들의 패턴의 중첩이 많을수록 전체의 무늬가 더 다채롭고 우아하다. 책에는 다양한 이유로 실명을 하고 시지각의 이상이 생긴 사람들이 가소성과 보상으로 새로운 지각을 개발하고 삶에 적응시키는 다양한 양상들에서 인간의 인지활동에 대한 신비에 조금 더 접근한다.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세계 대신에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인류의 뇌의 진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종교철학자인 헐은 자신의 심맹의 상태를 “혼신으로 본다”고 말하며 빗소리가 얼마나 새로운 풍경의 윤곽을 보여주는지를 말한다. 헐의 청각 경험은 실명 이후 더 강렬해지고 예리해져서 자연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는 새로운 감각이 이전의 시각의 보상보다 더 큰 차원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존재 방식이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토리는 시각의 상실을 재건하고자 이미지를 시각적 표상화하는 능력을 개발한다. 시각적 상상력과 공감각적 감성이 뛰어난 텐베르크는 시각장애인을 거부하는 티베트 공동체에서 티베트 문자의 점자를 고안하고 시각장애인 학교를 세우며 지역사회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레지스탕스 투사인 루세랑은 내면의 눈을 활성화하여 일종의 시각의 정신적 화면을 만들어 조작한다. 책에 소개된 시각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병을 미워하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좌절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지 패턴을 만드는 데는 감정의 패턴이 중요하다. 감정의 패턴은 인지의 패턴을 인도한다. 인지 패턴들이 진화할지 안 할지는 감정의 패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불신, 분노, 짜증, 절망과 같은 부정적 감정의 패턴들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지 못하고 인식을 망상의 소용돌이로 이끈다.

 


작가 자신의 예를 보자. 안암으로 한쪽 눈이 실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올리버색스는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병을 미워하기보다는 잘 이해해서 소통하며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가야 하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대한다. ‘흑색종 일지’를 쓰고 ‘암점 놀이’를 하며 병으로 생겨난 새로운 감각들을 탐험한다. 이들은 모두 용서라는 감정의 패턴을 만들어 병과 관계하여 새로운 시각 질서를 창조했다. 진화는 돌연변이로 촉발된다. 돌연변이는 역경과 고난에 대처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모든 생명체를 포용(용서)하는 자연의 법칙을 믿고, 자연의 일부인 마음속에 힘이 있음을 알고, 또한 자연의 일부인 질병과 소통하여 새로운 패턴을 창조하는 것이 진화의 방향일 것이다.


“우리는 경험에 대해 창조자로서 어느 정도 저작권을 행할 수 있을까? 타고난 뇌나 감각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은 어느 정도이며, 경험을 통해 뇌가 형성되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 실명 같은 감각 기능의 박탈이 이러한 물음을 새롭게 조명해줄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 실명을 하게 되면 하나의 거대한,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받게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파괴된 가운데 자신의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 『마음의 눈』, 알마, pg229



2021. 4. 8. / 인류학 세미나 시즌 1 ; 12주차 마음의 눈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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