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운명, 변화의 원동력 | 소세키, 『산시로』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25 13:52 조회93회 댓글0건

본문




운명, 변화의 원동력




문 빈


시골 청년 산시로, 그는 ‘배짱’이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어떤 세계로든지 확! 뛰어들지를 못한다. 시골(규슈)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로 올라온 산시로 앞에 세 개의 세계가 열렸다. 하나의 세계는 고향이다. 산시로에게 평온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며,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일종의 도피처 같은 곳”이다. 두 번째 세계는 몸을 학문에 맡기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상관없이 책 안으로 들어가 행복할 수 있다. 세 번째 세계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인의 삶이다. 겉으로 보면 세련되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위험과 파괴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 산시로는 이 세 개의 세계 속에서 계속 갈팡질팡한다. 사랑하는 여자, 미네코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네코라는 세계를 만났지만, 산시로는 용기 있게 다가가질 못한다. 미네코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네코와 노노미야와의 관계는 어떤 것일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릴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심한 산시로도 변화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산시로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서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나는 작가(소세키)가 산시로의 ‘변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두 사람은 대여섯 걸음을 말없이 걸었다. 산시로는 어떻게든 두 사람 사이에 걸쳐진 얇은 막 같은 것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찢어질지 통 알 수가 없다. 소설 같은 데 나오는 달콤한 말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취향에서도 그렇고, 사교상 젊은 남녀의 관습으로도 사용하고 싶지 않다. 산시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다. 바라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걸으면서 궁리하고 있다.

나츠메 소세키, 『산시로』, 현암사, pg284



미네코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던 산시로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미네코와 자신을 가로막는 얇은 막 같은 것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이 막을 찢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 고민이 참 흥미롭다. 산시로가 이전처럼 ‘있던 것’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 세계가 좋을지, 저 세계가 좋을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 중에서만 고민하던 산시로가 “소설 같은 데서 나오는 달콤한 말”이 아닌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궁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미네코가 왜 왔냐는 물음에 그 순간을 포착한 산시로는 최초로 용기 있게 말한다. “당신을 만나러 온 겁니다.”라고.


결국, 산시로는 “불가능한 것”을 행했다. 이전의 산시로였다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을 행동을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미네코와의 관계는 좌절됐지만, 이때의 산시로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소세키가 말하는 ‘변화’는 이런 게 아닐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어느 순간 하게 되는 것! 그렇다면 이 ‘변화’를 산시로는 어떻게 만들어낸 것일까?


이전의 산시로는 언제나 명료하기를 바랐다. 미네코가 자신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명료하게 알아야만, 미네코와 노노미야와는 어떤 관계인지 명료하게 알아야만 그에 따라 자신 또한 명료하게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 개의 세계 중에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도 그랬다. 어떤 세계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불명료했기에 산시로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명료함을 욕망하면 할수록 명료해지는 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시로는 ‘운명’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운명이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명료했던 세계가 구름이라면, 그 구름은 바람(운명)에 의해 날아가고, 흩어지고, 얇아지기도 한다. 이렇듯 운명은 느닷없이 찾아오며, 우리의 세계를 뒤흔든다. 산시로는 그러한 운명이 찾아올 때마다 움츠리고 소심해졌다. 자신의 세계를 불명확하게 만드는 그런 운명이 두려웠다. 그러다가 창밖의 화재를 본다. 건물이 시커멓게 타고 있었다. 여기서 산시로는 삶과 운명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누구든지 삶과 운명은 함께 한다. 이는 곧, 불명료한 것(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산시로는 어머니가 보내준 30엔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이 30엔도 운명의 농락이 낳은 것이다. 이 30엔이 앞으로 어떤 작용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자신은 돈을 갚으러 미네코에게 갈 것이다. 미네코가 그 돈을 받을 때 다시 한번 도발하고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산시로는 되도록 크게 도발하고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같은 책, pg262

운명을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산시로는 없던 배짱이 생긴다. 미네코에게 빌린 30엔은 히로타 선생, 노노미야, 요시코, 요지로 등 다양한 인연 조건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산시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찌할 수 없이 겪게 되는 ‘운명의 농락’이다. 이번에는 운명 앞에 움츠러들어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가지 않으려 한다. 운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지만, 자신 앞에 들이닥친 운명을 자기 스스로 이끌어가 보기로 한다. 자기가 운명을 이끈다는 것은 그 결과가 어떤 것이든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미네코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게 느껴졌다. 이처럼 산시로가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운명을 긍정하면서부터였다.



조심스럽게 작가는 변화라는 게 운명으로 인해, 불명료함으로 인해 생겨난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지 상상해본다. 우리는 우리가 이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걸 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기쁨을 느낀다. 이렇게 변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작가는 이 즐거움을 얻으려면 운명을 긍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하는 게 아닐까?





2021. 1. 22. / 문-테일 세미나 시즌 2 ; 3주차 산시로 씨앗문장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