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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는다는 것 | 카뮈,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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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1 15:25 조회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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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는다는 것




서주희(청공자 영성탐구)


이 소설(카뮈,『페스트』)은 평범한 도시 오랑에 닥친 ‘페스트’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의사 리유의 시선을 통해서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등장인물타루의 대처방식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사뭇 달라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페스트’는 이전의 자신들이 편하게 유지해오던 습관들을 방해하는 것이었고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서만 민감했으며 페스트로 인해 고통받거나 죽은 이들에 대해서는 잘 실감하지 못했다. 과거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거나,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고통과 공포 속에서 보냈다. 페스트가 장기화되면서는 절망하는 것에도 습관이 들어버렸고 나중에는 아무 생각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타루는 자신의 윤리관은 “이해”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페스트로 인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는 이들을 위해 리유과 함께 봉사하며 ‘공감’하고자 한다. 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타루’의 삶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중, 소설의 후반부에서 타루는 페스트로 죽는다. 아니 왜! 페스트가 종식될 때쯤에, 그것도 소설이 거의 다 끝나갈 때쯤에, 타루는 죽은 것일까? 타루는 정말 페스트에 진 것일까? 작가는 타루의 죽음을 통해서 무엇이 말하고 싶었던 걸까?




단지 페스트를 겪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우정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애정을 알게 되었으며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갖게 되리라는 것, 그것만 오로지 그가 얻은 점이었다. 인간이 페스트나 인생의 노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에 관한 인식과 추억뿐이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 p378


리유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성실성이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다. 왜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인 것일까? 이는 그와 함께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던 보건대 사람들이 페스트를 겪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페스트를 자신이 이전까지 유지해왔던 습관들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이전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느꼈다.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고 지금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들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생이별’이자, ‘귀양살이’였다. 이는 페스트 전이나 후나 그들을 달라지게 하진 않았다. 생이별로 슬퍼하던 이들이 페스트 종식 후, 헤어졌던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사랑을 나누고 행복감을 느끼지만, 이는 잠시 뿐이었고, 페스트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자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는 없었다. 이전의 욕망으로 그들은 그대로 돌아갔다. 이는 페스트에 이긴 것이 아닌 진 것이다.




그에 반면, 보건대 사람들은 페스트로 인해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에서도 자신의 직분을 다했다. 리유는 의사로서 페스트 환자를 돌보았고 그랑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저녁 시간에는 아내에게 편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타루 역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하며,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직분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충실하며 페스트를 겪어 나갔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들은 변해갔다. 그랑의 편지에는 ‘형용사’가 빠졌고 타루 역시 페스트에 걸렸지만, 그는 병이 진행되어 가는 순간 내내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리유는 페스트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페스트에 관한 ‘인식’과 ‘추억’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전의 습관을 고집하면서, 지금을 제대로 살지 못할 때는 얻을 수가 없다.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제대로 겪어내어야지만, 그 이전과는 다른 인식과 추억을 얻을 수 있으며, 그때 페스트를 이겨냈다고 말할 수 있다.




2021. 3. 5. / 문-테일 세미나 시즌 2 ; 8주차 페스트 씨앗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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