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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낳는다 |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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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1 15:44 조회1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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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낳는다




김미솔(청공자 영성탐구)


남자 올랜도는 아무 때나 칼을 뽑을 수 있도록 손이 비어 있는 반면에, 여자 올랜도의 손은 새틴 숄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 잡아주어야만 한다.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박희진 옮김, 솔, pg. 166


올랜도는 남자에서 여자가 되었다. 남자일 땐 그토록 당당했던 올랜도는, 이제 여자가 되어 ‘말들이 조금 빠르게 달린다 싶으면, 놀라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다든지, ‘자기 글에 대한 겸손, 자기 용모에 대한 자부심, 자신의 안전에 대한 공포 따위(pg.165)’ 등의 것들을 겪는다. 여자가 되어 얻은 것들에는 좋은 것이라곤 없는 것 같다. 세상살이가 한층 더 불편해진 것만 같다. 그런데도 버지니아 울프는 왜 올랜도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왔을까? 왜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이 아닌 비스듬히,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보는 것을 택했을까? ‘여성’이 뭐길래?





여성과 남성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여성이 ‘낳는다’는 것이다. 남자 올랜도일 때는 못했지만, 여자 올랜도가 되어 낳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책이며, 둘째는 아들이다. 여자 올랜도는 드디어 책을 다 썼는데, 그 책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다시 되돌아가 인생이 뭔가를 알고 싶어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맙소사, 알 수 없노라고.

같은 책, pg. 239


‘알 수 없다’는 것, 이 여백이 여자와 남자의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이 여백으로 하여금 여자는 무언가를 낳고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 안에서는 남자도 책을 쓴다. 그녀의 오랜 친구 닉 그린도 책을 쓴다. 닉 그린의 글쓰기와 여자 올랜도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를까?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하여 쓴 글은 ‘정의’를 한다. 울프는 남성 작가들이 ‘정의’를 한다고 말한다(pg.237). 예를 들어, 그들이 내린 ‘사랑’이라는 정의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남성 작가들이 그렇게 정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랑은 ‘친절이나 충절이나 관용이나 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정의에 맞지 않는 사람은 ‘그나 그녀가 시체나 마찬가지라고 결론짓고, 그녀를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pg.237)’ 되는 것이다. 즉, 남성의 글쓰기는 무언가를 정의하기에,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시체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들의 글쓰기는 낳기보다는 죽이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반면, 여자 올랜도는 인생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자연에게 묻는다. 메뚜기를 만나면, 그 메뚜기가 하는 말을 듣는다. 메뚜기가 ‘인생은 노동이라고’ 답하면, 여자 올랜도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한다. 그것은 ‘먼지로 목이 멘 메뚜기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우리는 그렇게 해석하는 것(pg.238)’이라고. 나는 남성과 여성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묻는다. 그리고 그들의 답을 듣는다고 한들, 그것 또한 나의 해석임을 알기에, ‘알 수 없다’고 쓴다. 물어서 답을 들었는데도 그 또한 의심을 한다. 나는 그 태도가 여성으로 하여금 ‘비스듬하고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보’게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정의내리는 대신, 묻고, 그 답까지도 나의 해석임을 의심하는 태도. 이 태도가 울프로 하여금 올랜도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오게 했다.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낳고 창조하게 한다!





2021. 1. 28. / 문-테일 세미나 시즌 2 ; 4주차 올랜도 씨앗문장



# 기획 연재 칸에서는 앞으로 남산강학원 청년 프로그램과 각종 세미나에서 학인들이 쓴 글을 뽑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다양한 책과 만난 생생한 글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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