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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클래식 | 다른성욕의 탄생 | 때로는 기대면 나오는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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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1-18 10:36 조회1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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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사랑하라, 흐르게 함으로써 -1)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웅얼거림 속에서 목소리 길어내기

얼마 전 한 온라인 북 토크를 시청하다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사회에 “비합의(dissensus)를 위한 합의(consensus)”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합의’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전제를, ‘비합의’는 ‘합의’를 새롭게 구성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모두가 A냐 B냐 선택하라고 할 때 A와 B 중 하나를 고르라는 체제에 합의하지 않으며 A로도 B로도 카운트할 수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비합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살라는 대로 살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을 만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것은 자립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북 토크에서 나온 이야기는 비합의를 위해서도 어떤 합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세미나나 모임 등을 할 때에 구성원 각자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안전성을 느낄 수 있어야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비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합의를 구축/건설해야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연애가 아닌 장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의와 비합의는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어렴풋이 연인관계야말로 이러한 ‘비합의를 위한 합의’를 구축하기에 아주 좋은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는 ‘사랑’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인 앞에서 자괴감이 올라올 정도로 평상시와 다른 모습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그 관계에서 내가 스스로 ‘나’라고 생각하는 틀을 벗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나’라는 울타리를 조금 허물 정도로 편안하고, 이곳이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해체되는 힘, 아마 이런 것이 사랑이라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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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평소에는 잘 꺼내지 않는 말들도 나온다. 이런 순간을 면밀히 살피고 잡는다면, 이때가 바로 다른 언어를 길어 올릴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 연인 앞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고 칭얼거리는 건 ‘이상적 연애 모델’에 비추어봤을 때는 아주 한심한 짓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나약함, 대책 없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A도 B도 아닌 새로운 길을 원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불만으로 튀어나오는 것이고, 그것이 말해본 적 없고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잘 가다듬어지지 않은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몇 개월 전 친구와의 문제로 힘들 때 연인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미워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를 미워한다며 연인에게 징징댔다. 다른 사람들에겐 털어놓을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징징이 모드로 연인과 대화를 하다 보니, 나는 감정에 치우치기보단 점점 더 진실해졌고(그러고 싶어져 갔다), 우리는 종알종알 얘기를 더 했다. 나는 사실 한편으론 그 친구의 어떤 면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 친구를 일면 존경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여기까진 말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좋다 싫다의 감정이 아니었다. 친구에게 그런 감정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이 정리되며 그런 생각이 내게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합의를 깨뜨리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많은 것이 깨지고 많은 서사들이 재구성되었다. 옹알거림과 징징대는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 말을 내 입에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라는 울타리가 허물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모든 새로운 말들은 처음엔 웅얼웅얼, 더듬더듬, 혹은 칭얼거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표현되지 못한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다 지워버려선 안 된다. 웅얼거림을 따라가 봤을 때 거기에는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새로운 말을 길어 올릴 가능성은 여기에 있기에, 이걸 다 못 본 체한다면 우리는 늘 하던 익숙한 말만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말랑해지고 편안해지는, 어쩌면 애가 되어버리는 순간은 퇴보가 아니라 자립의 발판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자립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그 모습에 오히려 자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숨어있는 것이다. 연인과 내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몸 개그, 시답잖은 농담과 유치한 말투도 우리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만드는, 비합의를 위한 합의를 가능케 하는 끈끈이 풀의 일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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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과 틀 대신 현장에 기대기

다시 북 토크 이야기로 돌아가서, 처음 내가 비합의를 위한 합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랐던 것은 ‘연애가 아닌 장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교수님은 세미나에서 사람들이 안전함을 느끼고 평소에 하지 않던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내 삶의 화두는 연애였는지라 나는 ‘연애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좋은 연인이 될까’, ‘연인관계를 어떻게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는 고민해봤지만 다른 인간관계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했다. 다른 관계도 이렇게까지 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친구를 만들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일까?’라는 식의 추상적인 고민은 해보았지만, 고민은 뭉툭한 수준에서 머물렀다. (질문의 형식이 같은 걸 보니 연애 쪽에서도 발전은 없었던 듯하다.)

문제는 연인에 대한 고민이든 친구에 대한 고민이든 ‘어떻게 하는 게 좋은 OO이지?’하는 식의 고민은 관계를 내가 가지고 있는 연인, 친구, 도반, 제자라는 이미지에 갇히게 했다는 것이다. 어떤 규칙을 두듯이, 서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이처럼 저 위에 이상을 두고 그 원칙과 룰을 지키는 방식으로는 서로 만나면서 튀어나오는 다양한 모습들을 서로 차단하게 되기가 쉽다. 이건 이래서 삼가고, 저건 저래서 삼가고, 또 서로가 얼마나 역할에 맞는 룰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좋은 연인, 좋은 친구, 좋은 도반, 좋은 제자로서 자신의 정체성만 공고히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작 그 안에선 아무런 새로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좋은 OO으로서의 ‘나와 너’가 아니라 이곳에 무엇이 웅성거리고 있는지, 무엇을 길어 올릴 수 있는지에 집중해볼 수 있다. 나는 여태껏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지양해오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해야 해’하는 룰이나 내가 여기서 어떤 역할인지의 정체성을 잃고 행동하는 것이 너무 대책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에게 나를 여는 느낌이 싫어 정해진 틀에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데에 기대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라는 정체성을 살짝 풀어헤치고 관계의 장에 기대고 나를 맡기는 연습, 편안해지는 연습, 다른 이를 편안하게 하는 연습, 더 많이 사랑하는 연습을! 여기에 대책이 없으리라는, 유치함과 진부함의 반복만 있을 거라는 것은 큰 오해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이상을 꿈꾸며 늘 나를 ‘나’로 머물게 한다(아마 ‘이러지 말아야지’와 ‘또 이랬네’ 사이에).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드러나든 도로 ‘나’로 숨어 들어가지 않고 관계 속에서 해체될 때 비합의에 이를 수 있다. 반대로 말해, 비합의에 이르는 길을 늘 생각한다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해체되며 드러나는 낯선 자신의 모습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열어둘 수 있다. 연인이든 친구이든 세미나원이든 누구를 만나든,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길을 만드는 생성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함께 자립하는 도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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