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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클래식 | 다른성욕의탄생 | 남자와 여자라는 핑계 밖에서의 만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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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16 16:38 조회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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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사방이 막힌 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묻다. -1)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intro. ‘동성-애’라 불리는 것

“진짜 신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이걸 보고 ‘동성애’라고 하는 거잖아!” 그 사람에게 ‘그냥 친구와는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만들고 싶은 것 같다’는 내 마음을 말하고 그 쪽에게서 ‘그것도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을 들은, 밤의 공원에 앉아 바람을 쐬다가 내가 뱉은 말이다.

고백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당연히. 어떤 사랑 고백이 쉬울까. 나도 그 자리에서 “있잖아…아니다.” “그 있잖아… 아니다.”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그 망설임은 그냥 수줍음은 아니었고, 낯설다면 낯선 무서움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 사람과 나는 생물학적으로 같은 성별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러한 사람(?)과 사귀어본 적이 없었고,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거절을 당하는 건 뭐랄까, 보통 차이는 느낌은 아닐 거 같았다. 사이가 어색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얘가 나를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이미 나름의 감정적 유대를 느끼고 있는 이 사람도, 나를 손가락질할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이런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감각은 평상시엔 없다가 고백을 하려는 순간 불쑥 올라왔다)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한데 운이 좋게도 나의 고백은 ‘만나 보자’는 평범한 말로 받아들여졌다. 그러고 나서 보니 이런 식의 평범한 마음의 흐름과 그로 인해 만들어졌을 많은 관계들을 우리가 의구심과 거부감을 가득 담아 ‘동성애’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전까지 나는 내 안에 동성애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다만 그 날 이 친구와 서로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잉? 동성애가, 고작 이거라고?’ 내 머릿속에 있던 ‘동성애자(나는 지금도 굳이 내게 왜곡될 대로 왜곡된 이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다)’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적어도 우리보단) 괴짜 같거나, 패셔너블하거나, 섹슈얼한 느낌을 풍겨야 할 것만 같았나 보다. 보라색 크롭 후드 티와 스키니 진을 입은 사람? 아니면 펑퍼짐한 패션에 무지개색 모자를 쓴 사람? (고백도 고백이었지만) 그 언저리의 어떤 이미지와 함께 알지도 못한 채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이 바스러지는 느낌은 무척 신선하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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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크롭 후드 티와 스키니 진을 입은 사람? 아니면 펑퍼짐한 패션에 무지개색 모자를 쓴 사람?

어떤 포인트에서 나는 동성애가 아주 기이한 것이란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둘이 성별이 같다는 것만 빼면 우리의 만남은 아주 평범했다. 여태껏 그저 그랬던, 아니 오히려 ‘이해 불가능하다’ 싶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밥은 먹었는지 모임은 잘 마쳤는지 궁금했고, 보통 때엔 잘 나오지 않는 태도로 상대를 대하게 되고, 보통 때엔 잘 안 하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또 듣기 시작하면서, 그 시간을 더 늘려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만한 때에 옆에 있었기 때문인지, 너무 많이 부딪히던 우리가 찾은 유일한 공존법이 연애였던 건지, 원인을 말하라면 수십 가지 이야기가 가능할 그런 인연이었다. 친구로 만나면 되지 여기서 왜 하필 연애로 가냐? (보는 사람 불편하게?^^)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 날 무엇을 약속한 건지도, 나의 생각과 그 친구의 생각이 정확히 뭐였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대부분의 연애가, ‘사귀자’는 말이, 서로 무엇을 약속하고 있으며 어디로 향하는 건지 모르고 여차저차 시작되지 않는가. 그날의 우리도 그랬다.

헌데 이 관계는, 이렇게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바람 잘 날 없다는 점에서는 몹시 평범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해오던 만남들과 분명 조금은 달랐다. 여기엔 생각지도 못한 삐걱거림, 생각지도 못한 좋음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제까지 내가 ‘정상적’이라 믿으며 했던 연애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있다. 연애의 문제는, 정말 성별에 있을까?

1. ‘사랑한다면’

‘삐걱’ 소리는 오래지 않아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난 곳은 스킨십의 영역이었다. 스킨십을 하는 와중에 내가 종종 ‘이 사람이 내 몸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 “???”, “??;”. 침묵. ‘???’, “???”, “??;” 침묵. 이런 상황이 반복됐고, 종종 우리는 이 이야기를 가지고 논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연애에 있어 스킨십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전에 내게 스킨십은 최고의 애정표현이었다. ‘서로의 몸을 원하는 것’은 곧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말했다. 그 끌림이 함께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서로를 위해 생각을 열심히 한다든가, 행동을 바꾸려고 한다든가 하는 노력의 기본적인 원동력이라는 것이 내가 인식하는 ‘연애의 매커니즘’이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나는 연인과 스킨십에서의 절정의 쾌락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운명의 짝이라는 증거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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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끌림이 함께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서로를 위해 생각을 열심히 한다든가, 행동을 바꾸려고 한다든가 하는 노력의 기본적인 원동력이라는 것이 내가 인식하는 ‘연애의 매커니즘’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과의 스킨십에서 ‘이 사람이 내 몸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게 느껴지니, 번뇌가 시작되었다. ‘얘는 날 안 좋아하나 봐, 흑.’, ‘왜 좋아하지도 않는 데 좋아한다고 말을 하지?’, ‘나랑 왜 사귀지?’ 등등, 상대를 의심하고 원망했다. 나는 상대에게 때로는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칭얼대고 때로는 ‘나는 이런 상황에서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가 없다’며, ‘왜 너는 원하지도 않는 스킨십을 하냐’며 원망을 쏘았다.

처음에는 그 친구는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런 게 맞다, 옥신각신했다. 그러다 문제가 일단락된 것은 그 친구가 이렇게 물었을 때다. “왜 몸을 원하는 만큼이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스킨십을 많이 하고 싶은 게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한다는 건 아닐 수도 있잖아(대략 내가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야, 라는 말이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처음에 내게 이 말은 ‘말이 되지 않는 말’처럼, 문법이 잘못된 문장처럼 느껴졌다. 듣고 한참을 눈만 끔뻑거리다가, “응?”하고는 흩어진 조각들을 재배열하는 기분으로, 그 말을 찬찬히 되짚어봤다.

이 사람이 내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여 왔든, 그런 건 차치하고, 이 사람은 정말로 이 사람의 방식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정말로 원래 스킨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내 입장에서는 정말로 신기한 부분인데) 거였다. 그럼에도 사람은 좋아하는 거였다! 어쩐지 연결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이 겨우 희미하게 받아들여졌다. 그제서야 조금 더 와닿았다. 이 사람은 스킨십에 있어서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으며, 이런 내 이야기를 듣는 데에 있어서도 부담을 느낄 것이며, 자신의 방식으로 가지고 있는 자신의 마음과 진심이 내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어서도 고통을 받고 있을 거라는 게.

그런데 나는 내가 좋다는 사람에게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었다. 상대가 ‘나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나의 방식’으로 말을 걸어오지 않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단지 이 연애에서 크게 문제화가 됐을 뿐. 심지어 연애가 아닌 관계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나의 ‘촉’을 신봉하며, 상대를 의심했다. 나는 ‘진심’이고, 상대는 ‘진실하지 않’다며 상대방을 의심하고 원망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때 내가 바랐던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성적 쾌락과 나의 성적 자의식을 만족시키는 것(‘너는 나를 원한다!’)이었다는 것, 즉 내가 나의 자아를 뚱뚱하게 살찌우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사랑, 진실한 사랑만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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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촉’을 신봉하며, 상대를 의심했다. 나는 ‘진심’이고, 상대는 ‘진실하지 않’다며 상대방을 의심하고 원망했다.

2. 연애는 ‘성애’여야 할까?

이 친구가 나와 같은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별을 갖고 있기에 망정이었다. 그랬기에 그나마 한편에서 ‘자의식’이란 게 올라와서 나를 콕콕 찔렀다. 상대는 ‘여자’다. 왠지 성적으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여자’. 게다가 나보다 어렸다. 뿐만 아니라 나는 상대보다 확실히 성질머리가 더 더러운 편이었다. 그래서 내 자의식의 내용은 ‘내가 사귀자고 해서 그냥 사귄 건가?… 먼저 말을 꺼내면 안 됐나?…’ 하는 거였다. 상대에겐 내가 정말 부담스러울지도 몰랐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얘가 남자였으면 어땠을까?’ 오싹했다. 나는 끝까지 이것이 폭력적이라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 사람이 얼마나 불편해하던, 투지를(?) 불태웠을 확률이 높다. 나는 여자이고, 남자인 너는 나에게 성적으로 끌려야 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런 그림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전에 사귀었던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어찌저찌 우리는 함께 성적 쾌락을 즐겼다는 이유로, 내가 한 짓은 폭력적이기보단 ‘성공적’인 일이 된다. 그러다 맘대로 안 되면 상처받고 자존심 상해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괴롭혔을 것이다. 연인으로 묶여있는 관계에서는 그것 역시 큰 요구이고 폭력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그러는 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여자가, 그것도 ‘정말로 절절히 사랑해서’라는 명분 위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상대에게도, 본인에게도. 상처받은 여자 앞에서는,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이건 간에, 그녀를 보고 ‘끌리지’ 않는 상대가 ‘너무한’ 놈이 된다. 여자에게 윤리적 고민이 들어설 틈은 적어진다.

나는 ‘연인이니까’, ‘쟨 남자고 난 여자니까’ 등 남자와 여자라는 핑계 위에서 이런 연애를, 사랑을 그리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성적으로 끌리는 게 당연하고, 그것이 사랑이니, 연인인 내가 연인인 너에게 ‘성적 끌림’의 증명과 ‘성적 쾌락’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것. 여기에는 답이 없다. 요구와 반복과 연애의 끝. 그리고 다시 ‘절정’을 만들 수 있는 상대 찾기. 이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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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답이 없다. 요구와 반복과 연애의 끝. 그리고 다시 ‘절정’을 만들 수 있는 상대 찾기. 이게 다다.

처음엔 우리가 생물학적 성별이 같아서 더더욱 스킨십 문제가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도 아니니, ‘대체 무엇이 우리를 연인으로 묶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애라는 게 꼭 이렇게 ‘성적’이어야만 할까? 그러니까 우리는 동‘성애’든 이‘성애’든, ‘성적 사랑’을 해야만 하는 걸까? 그 ‘성애’라는 말이 우리의 폭력적인 자아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성애냐 ‘이’성애냐가 아니라 바로 이, ‘성애’가 문제였다. 이제 내게는 다른 사랑의 방식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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