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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클래식 | 연암을 만나다 | 무엇을 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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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12 21:29 조회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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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정조는 똑똑한 왕이다. ‘호학군주’라 불릴 만큼 책과 배움을 좋아했고, ‘개혁군주’라 불릴 만큼 공부한 것이 나라를 이롭게 하도록 힘썼다. 하지만 왕의 재능이 아무리 출중한들, 나라를 혼자 힘으로 다스릴 순 없다. 왕을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함께 도모하는 신하들이 중요했다.

그래서일까? 정조는 신하들에게 자주 책문(策文)하기를 즐겼다. 책문은 임금이 신하나 유생에게 질문을 던져,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올리게 하는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조선왕조’표 논술문제랄까. 왕은 책문을 읽으며 신하와 유생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지점들을 깨치고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아마 정조에겐 그 시대 내로라하는 선비들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등등의 글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의 의견을 잘 알 수 있는 기회인만큼, 책문은 임금과 신하의 의견이 빅매치 되는 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정조와 연암의 논리가 한 판 부딪친 책문이 있다.(아쉽게도 연암의 글은 정조에게 전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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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질문은 추려보자면 이렇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이 자신의 신하 공숙좌가 훌륭한 인재인 위앙을 추천했는데도 듣지 않았다. 위 혜왕이 공숙좌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공숙좌가 위앙을 추천해놓고, 등용하지 않을 거면 죽이라고 앞뒤가 어긋나게 말하며 의심스러운 논리를 펴서 아닌가? 만약 공숙좌가 평소에 조금 더 지성과 충심을 다해 말했더라면 혹은 위앙을 작은 일부터 증명해보이며 혜왕을 설득했다면, 위 혜왕은 진 효공처럼 위앙에게 나라를 맡겨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게 되지 않았겠는가?

정조의 질문 속에는 아쉬움이 절절히 맺혀있다. ‘그때 조금만 더 했더라면!’라고 말하며, 잘못된 원인을 찾고 그것만 고쳐지면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정조는 역사를 돌아보며 반면교사 삼아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이렇게 생각한 거겠지만, 어쩐지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원인을 찾는 것이 신하 탓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빌미만 제공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왜 그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와 안타까움만 가득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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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아니요. 그때 공숙좌는 충분했습니다.’라고. 공숙좌는 때를 살펴 죽기 전에 위 혜왕에게 위앙을 추천하며 자신의 진심을 담아 말하려고 했고 그럼에도 위 혜왕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위앙을 죽이라고 말하며 나라의 후환을 걱정했고, 위앙의 나라 다스림은 작은 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암이 보기에 위 혜왕과 공숙좌가 아쉬운 이유는 다른데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공숙좌는 단지 혜왕의 일개 구신(具臣수효만 채우는 쓸모없는 신하)이요 위앙의 하류(下流)에 불과한 자입니다맹자도 일찍이 위나라에 갔었는데 공숙좌가 그 임금에게 천거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니그렇다면 인의(仁義)의 설이 천하를 통치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진 효공을 논하는 자들은 그가 위앙을 등용했다 해서 현명하다 하고양 혜왕을 논하는 자들은 공숙좌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해서 어리석다고 여깁니다그러나 설령 맹자가 진나라에 갔다고 해도 효공은 반드시 그를 등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무엇으로써 그럴 줄 아느냐 하면위앙이 먼저 제왕의 도로써 말하자 효공이 이따금 졸았으니맹자라면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펴는 따위는 반드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지원, 『연암집』(하), 「공손앙이 진나라에 들어가다」, 돌베개, 317쪽)

공숙좌, 진 효공, 위 혜왕은 셋 다 나라를 어떻게 물질적으로 강하게 만들지에만 관심이 있었지 ‘인의(仁義)’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위앙을 등용한 진 효공과 등용하지 않은 위 혜왕의 차이는 그저 위앙을 직접 볼 수 있는 운의 유무였을 뿐이다. 그래서 연암은 나라의 이롭게 하는 데 관심이 많은 위 혜왕이 위앙의 말을 듣고 놓칠 리가 없다고 말하고 진 효공이 훌륭한 성인 맹자를 만났어도 등용하지 못할 것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느냐 얻지 못 하였느냐는 단지 때와 운에 따를 일이지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걸 못 얻었다 해도 그건 누굴 탓할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 건지를 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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