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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하라! | 청년에세이 | 탁월함을 증명하는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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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01 23:39 조회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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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희(청년공자 용맹정진밴드)

1. 자연과 인간 본성의 동일성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려 하는 본능은 그리스인의 건강한 삶의 본질적 근원이었다.”<키토古代 그리스그리스인들갈라파고스, 266정열적인 본성을 가진 남방인이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극단에 치우치기 쉬운 존재라는 걸 너무 잘 알았다. 인간의 성품이 가진 힘과 약점으로 인해 단 하루의 실수로 전부를 잃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에 대한 지성의 통제와 규칙을 필요하다고 느꼈던 그들은 중용을 높이 평가했고, 그러한 정신은 그리스의 신화, 예술, 제전의 건전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예술은 상반되는 두 가지 원칙을 완벽하게 조화시켰고, 올림피아 제전의 목적은 전체적 인간의 아레테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리적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도덕적 우주 역시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하여 그리스 신화에서는 여러 신들을 제우스의 의지의 표현으로 통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올림포스 체계를 만들어낸다. 그리스인들이 높이 평가했던 중용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좀 더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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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 제전의 목적은 전체적 인간의 아레테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2. 보편적 도덕 법칙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다툼으로 시작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두 인간 사이의 분쟁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난과 죽음과 불명예를 안겨준다는 비극적 개념을 담고 있다. 그 다툼은 아가멤논의 ‘사악한 거만함’과 아킬레우스의 ‘그치지 않는 분노’로 인해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의 첫 부분에 제우스의 계획은 성취되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제우스의 계획’이란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은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벌을 받는다는 필연적 결말, 즉 어떠한 원인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주제의식을 뜻한다.

이런 보편적 도덕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서사시에 개별 신들이 등장한다. 신들의 역할은 제우스의 대리인으로서 완전한 사회 질서를 수호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근간이 뒤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범죄에는 그에 따른 처벌이 이어지고, 인간의 예민한 도덕적, 사회적 문제는 해결된다. 이 관점은 우리의 개별 행위가 우주에 대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큰 틀과 관련되어 있으며, 특수하면서 동시에 보편적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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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계획은 성취되었다.

3. 대칭을 이룬 완벽한 실재

그리스인들이 생각하기에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간의 작품에서 보이는 대칭적 형식은 자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물리적, 도덕적, 종교적 우주를 통틀어 전 우주는 통일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칭적이어야 한다. 현상의 다양성 속에서 단순한 통일성을 찾던 그들은 마침내 물리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 사이의 접합점을 발견한다.

이오니아인들이 물리적인 어떤 것’ 속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궁극적이고 단순한 진리는 사실은 였다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이 항상 변한다고 선언했던가여기에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영원하며썩어버리는 육체에서 자유로우며불완전한 감각에서 독립되어 있고정신을 통해 완벽하게 파악되는 실재가 말이다게다가 수는 공간적으로 지각되므로이 수학적 실재는 그리스인들이 모든 완벽한 것에 대해 상정하였던 한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즉 수는 대칭적이었고그 속의 로고스에는 규칙성이 있었다.

<위와 같은 책, 287>

우주를 하나의 논리적 전체로 본 그리스인은 완벽하게 파악되는 실재이자 대칭성과 규칙성을 지닌 ‘수’를 발견하고, 종교와 도덕에서도 수학적 기초가 발견되리라 생각했다. ‘수’는 그리스인들이 우주를 바라보던 전체성을 뒷받침해 주었다. 진리로 가는 길은 감각이 아니라 정신을 통해서 가야 했다.” “변하지 않는 실재는 오직 정신으로만 파악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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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덕에 대한 논리적 탐구

플라톤은 인간의 고유한 연구 대상은 인간이며 인간의 궁극적 선이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확신을 수학적 충동과 결합시켰다. (……그것은 덕에 대한 로고스’ 곧 포괄적 정의(定義)를 논리적 탐구를 통해 찾으려는 노력이다플라톤은 소크라테스처럼 이란 지식이라고 믿었다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당연히 그것을 실행한다.”(위와 같은 책, 289그리스인은 ‘덕’에 대한 로고스를 논리적 탐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덕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연히 덕이 충만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덕이 충만하다는 것은 양 극단 사이의 중용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인들의 아레테, 즉 탁월함을 증명하는 일일 것이다.

중용을 지킨다는 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며 내 중심 균형을 유지하면 되는 것 정도쯤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그리스인들에게 중용이란 논리적 탐구를 통해 전체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려면 나의 안위만을 살펴서는 안 되고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소크라테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의 상황이나 사람들보다는 나와 내 일정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점점 더 종지만 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생활하는 청용 친구들을 보면 모두 바쁘고 힘들 텐데도 그런 내색 없이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을 보고 내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만의 상황이나 균형만 살피기보다는 청용 수업과 친구들을 통해 마음을 내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려면 나의 안위만을 살펴서는 안 되고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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