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획 연재

청년클래식 | 연암을만나다 | 아버지, 연암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0-29 11:27 조회19회 댓글0건

본문

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연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사대부(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했다)’, ‘명문장가(라고 했는데, 글은 왜 어려운건가 싶었다)’, ‘유머 제일(연암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조선시대 몇몇 문장가의 글을 읽으니 이젠 알겠다)’ 등.

책을 읽다보니 또 다른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생각보다 감정, 더 정확하게는 정(情)에 지극한 사람이구나 싶은 것이다. 선비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서 더 멋졌다. 이 어른이.

  나는 매양 모르겠네, 소리란 똑같이 입에서 나오는데,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 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 어쩌면 웃고 우는 이 두 가지는 억지로는 되는 게 아니고 감정이 극에 달해야 우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모르겠네, 이른바 정이란 것이 어떤 모양이관대 생각만 하면 내 코끝을 시리게 하는지. 또한 모르겠네, 눈물이란 물이관대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지.

(박지원 지음, 「사장 애사」,『연암집(하)』, 돌베개, 340쪽)

드라마 속 선비들은 꼿꼿하고 근엄했다. 하지만 연암은 정을 화(和)하게 발현시키는 선비였다. 중용에 보면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일컫고그것이 발현되어 상황이 절도에 들어맞는 것을 화라고 일컫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쩌면 선비이기에, 정을 중정하게 발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고민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애사나 묘비명을 보면, 절절하면서도 담박함이 느껴지는 건 아닐까. 희노애락이 절도에 맞게 드러나고, 그 마음 안에서도 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다. 무작정 참거나 내지르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웃고 우는 것도 아니다.

「맏누님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이나 「형수 공인 이씨 묘지명」을 보면, 가족에 대한 마음도 담담하게, 하지만 코끝 시린 이야기로 그려져 있다. 슬픔을 구걸하지도 않고, 공인과의 추억팔이만 하는 것도 아니다. 소박한 이야기 안에 ‘지극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연암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간첩書簡帖』이라는 책이 있다. 대부분 『연암집』에는 실려 있지 않은 편지들이다. 이번 설 명절, 멀지는 않지만 본가에 가면서 이 책을 집어넣었다. 작고 가벼워서^^ 그런데 가져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에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잔소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old-letters-1082299_1920

놀랍게도 편지의 대부분은 ‘큰아이에게’ 보낸 것이었다. 큰아들 종의는 연암 곁에 있던 자식이 아니었다. 시집와 20여 년 동안 열 식구를 먹여 살리다가 세상을 떠난 큰 형수. 그 형수가 세상을 떠나던 날, 연암은 자신의 큰아들을 후사가 없던 형수 댁의 양자로 입적시켜 상을 치른다. 연암의 일생동안 어머니보다도 더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 ‘형수’였다. 형수에 대한 지극한 마음. 그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아들에 대한 믿음직스러움도 느껴진다. (근대적 시각에서 보면 미안함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시대에는 양자를 보내거나 부모가 죽은 아이를 데려와 양자로 삼고 대부를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문화였던 것 같다.)

『서간첩書簡帖』에는 그렇게 양자로 보낸 ‘큰아이’와의 정이 담겨져 있다. 정(情)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영락없는 아버지였다. 사실 어머니(?)에 더 가까웠다.

“나는 고을 일을 하는 틈틈이 한가로울 때면 수시로 글을 짓는데, 너희들은 해가 가도록 무슨 일을 하느냐?”는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손주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산후통에는 생강나무를 달여 먹여야 한다며 며느리 산후조리 걱정하기도 한다. 손수 담근 고추장 한 단지, 쇠고기 장볶이 한 상자, 곶감 등을 정성스레 보내고, 보낸 쇠고기 장볶이에 대해 ‘잘 먹었다, 맛있다’ 등 아무런 말이 없는지, 그런 것에 섭섭해 하기도 한다.

‘선비’도 아니고, ‘안의 현감’도 아닌 ‘아버지’ 박지원, 일상 속 연암이 『서간첩書簡帖』 속에 드러나 있었다.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연암이었다. 우리네 아버지, 아니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애정, 걱정, 서운함 등 연암은 가족에게도 정을 마음껏 편지에서 드러내었다. 연암의 말처럼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감정이 극에 달해야 우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person-2471177_1920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을 ‘지극하게’, ‘온전히’ 만날 수 없어서 책을 들고 집에 간 건 아닌지. 그 시간을 책이나 TV로 채우고 싶어서 이 책을 들고 갔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암은 벗도, 가족도, 정(情)으로 만났던 사람이었다. 상황에 들어맞는 그 중정함은 감정이 극에 달하여 저절로 우러난 그 상태인 것이다. 연암이 내게 보여준 중정한 정(情), 지극한 정(情)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