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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클래식 | 다른성욕의탄생 | '여자취급'하지 마! - 여성성 지우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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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0-22 19:49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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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사랑의 자유를 찾아 나선 여자 -3)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intro. 미용실을 가다

2015년 여름, 머리를 처음 숏컷으로 잘랐다. 미용사분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옆쪽까지 시원하게 민 투블럭 스타일로. 당시 불어오고 있던 유행에 발맞추기 위한 건 아니었고 ‘더 이상 여자취급 받기 싫어!’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성희롱, 성추행 등의 불쾌한 사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일상에는 스스로는 친절하다고 생각하시는 아저씨들의 무례한 농담, 되도 않는 남자애가 나를 어린애 혹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 취급 하는 일도 너무 많았다. 한 마디로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정말 화가 나는 건 (역시나) 연애의 영역에서였다. 남자친구란 사람이 (평소엔 안 그러다가도)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은근히 나를 낮춰 대하며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을 때. 또 남자친구에게 나는 ‘여자’라는 특수한 영역 그 이상도 이하도 안 되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친구들과 같은 지위는 획득할 수 없으리라고 느껴질 때. 관계에 대한 좌절감과 함께 때론 불쾌하고 때론 서운했다. 정확하게 어디서 마음이 걸리는지도 모르겠고, 그 느낌들을 언어화할 수도 없어 괜히 다른 데서 감정을 터트리곤 하다가, 어느 날 이 일련의 사건들의 원인이 보였다. 그래서 미용실을 찾았다. “나 여자 그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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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자 그만 할래!!”

1. 강아지 죽이기

나를 분노케 한 건 나를 여자 취급, 애 취급하는 ‘그들’만은 아니었다. 그런 일들을 주구장창 겪으며 화가 나는 와중에도 반드시 어딘가엔 나를 예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고, 무시당하는 게 기분 나쁘다면서 남자친구 앞에서는 애가 되고, 불쾌한 상황에서도 떨떠름하게나마 웃어주고 있는 내가 가장 이해 불가였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여자로 살고 있는, 아니 그냥 여자라는 존재인 내가.

나는 왜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친절하려고 할까? 혼자 살아갈 힘이 없어서 늘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나의 웃음은 비굴한 게 아닌가? 나는 나약한 존재라서 나를 예뻐해 주는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나? 질문들이라기보단 그게 현실인 것 같았다.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변하는 게 당연한, 그러니 삶을 지탱시키는 기반으로는 너무나 얄팍한 관계를 중시하고 그것에 연연하는 어리석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나약함.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사람을 필요로 하는, 내 안에 날 때부터 이런 성격을 가진 강아지 한 마리가 사는 것 같았다. 그 강아지를 죽여야 했다.

그 첫걸음이 머리를 자르는 것이었다. 머리를 자르자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용감하고 대단한 사람이! 옷차림도 성격도 조금씩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으니 내 행동은 좀 더 편하고 대담해졌다. 수줍어하거나 안으로 숨는 대신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네가 날 어떻게 보든!’) 괜히 들떴다. 누군가에겐 별일도 아니겠지만 내게 머리를 자른 것은 ‘다르게 살겠다’는,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외침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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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르자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용감하고 대단한 사람이!

그러고 보니 세상 모든 부와 권력은 남자들이 가지고 있고, 여자들이 이토록 지배받고(?) 사는 데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면 자기 삶 하나쯤은 자기가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 남자들은 이걸 잘 안다. 돈을 벌고,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등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남자에게 여자란 그 과정에서 곁들어지는 소스 같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건 간사하고 나약한 짓이다. 여자들은 이걸 모른다. 그래서 삶의 ‘중요한 것들’을 뒤로 하고 대책 없이 즐거운 연애, 진정한 사랑을 꿈꾼다. 마치 그게 아주 중요한 일인 듯이.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남자들에게 압도된다.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을 사람, 혹은 경제적으로 의존할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내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걸 하고 있는 사람이라 여겨져서 그렇다. 이래서 그동안 내가 그런 불쾌한 상황들 앞에서도 어쩔 줄을 몰랐던 거다. 그들에게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받고 싶다면 삶을 대하는 내 태도를 바꿔야 했다.

2. 수탉이 되지 못하는 암탉

곧장 돈과 명예를 가질 순 없었지만, 가치는 바꿀 수 있었다. 칼로 썰 듯 이때부터라고 할 순 없겠지만 나는 더더욱, 흔히 ‘여성스럽다’고 말해지는 사근사근한, 애교 있는, 상대의 무례나 모자람을 포용하는, 상대에게 맞춰주는 태도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나약함의 증거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강해지는 것은 대략 ‘남자처럼’하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정을 안 주고, ‘중요한 일’(=직업, 돈으로 연결되는)에 집중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의 감정과 정신과 돈을 사람에 낭비하지 않으며 내 것을 똑똑하게 챙기고, 나도 기대지 않는, 씩씩하고 거침없고 독립적인 인간.

나의 어떤 모습들이 ‘나약함’으로 비춰지자 내 감정에 대한 해석이, 또 그에 따라 행동이 바뀌어갔다. 전에 나는 나의 친절함을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낯가림 없이 사람들에게 잘 다가갔고, 대화를 잘 트고,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감정을 잘 이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태도가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게 한다는 생각이 들자 아르바이트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뻣뻣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마음을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 또 남녀를 불문하고 내게 관심을 주거나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고(‘네가 뭔데? 난 혼자 잘 살 수 있어.’), 같잖아 보이기까지 했다. (‘뭘 기대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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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뭔데? 난 혼자 잘 살 수 있어.’

한데 이상했다. 나는 당차고 힘 있어 지기는커녕 점점 날카로워졌고, 경계할 것이 많아졌고, 삶은 더 힘들고 빡빡해졌다. 결정적으로 나는 언제나 ‘남자보다 모자란’ 존재였다. 내 안에는 충돌들이 계속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기대고 싶은 마음, 유대 하고 싶은 마음 등등은 사라지지 않고 피어올라 나에게 내 나약함을 계속 확인시켰다. 그렇다. ‘여자다움’을 버리고 ‘강한 인간’이 되려 했을 때 나는 항상 모자란 존재일 뿐이었다. 수탉을 흉내 내봐도 수탉이 될 수 없는 암탉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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