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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하라! | 청년에세이 | 짐과 함께 양심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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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9-28 20:37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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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솔(청년공자 용맹정진밴드)

자신을 돌봐준 왓츤 아줌마의 소유인 검둥이 짐이 그녀로부터 도주하는 것을 도왔다는 생각에 큰 양심의 가책으로 시달리던 헉은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다시 한 번 짐을 노예 상태에서 훔쳐내겠다고, 지옥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나는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통해 우리를 괴롭히는 양심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또한 양심의 문턱을 뛰어넘어 어떻게 헉이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해보고자 한다.

 

1.사물의 이치를 모르고 울리는 양심경보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 마크 트웨인은 양심을 말한다. 양심이란 뭘까? 지금껏 나는 그른 일을 범했을 때 내 마음에서 그것을 감지하고 울리는 경보쯤으로 양심을 이해해왔다. 양심경보가 울리면 그제서야 그것이 그른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일단 경보가 울렸으니 그것을 명백한 악행으로 인지했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이 말하는 양심은 뭔가 다르다.

나는 또 어떻구요헉 핀이 검둥이가 도망치는 걸 도와주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좍 퍼질 테니만일 그 마을에서 온 누구라도 만나게 되는 날엔 난 부끄러운 나머지 무릎을 꿇고 신발이라도 핥게 되지 않겠습니까…(중략)… 숨어 있을 수가 있는 한 수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내가 처한 입장이 바로 이와 같았지요…(중략)…그리고 늘 감시를 계속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비열한 짓을 용서해 주셨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요.

허클베리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저김dnr동 옮김 민음사 / pg. 448

짐과의 관계에서 헉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악행을 저질렀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시선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헉은 두 가지 시선을 의식하는데, 첫째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고, 둘째가 하나님의 시선이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 내가 행한 악행을 알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포에 휩싸인다. 그렇다면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숨어 있을 수가 있는 한 그것은 수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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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 후반부에서 헉은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누가 보고 있는지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사회(다수)가 용인한 행위에 대해서도 똑같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야말로 악당이었던 왕과 공작이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처벌을 받을 때 그러했다. 두 사람에게 가해진 그 잔인한 처벌은 다수가 용인한 행위였다. 그 처벌과정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떠난 사안이었음에도 헉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나는 지금까지의 건방진 생각은 없어지고오히려 천박하고 비열하며 어쩐지 모든 것이 내 탓처럼 느껴졌습니다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입니다늘 이런 식이었지요옳은 일을 하든 그른 일을 하든 매한가지였습니다인간의 양심이란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을 탓할 뿐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책 / pg. 482

솔직한 말로 왕과 공작은 그러한 처벌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될 정도의 악당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처벌은 사회적으로 옳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헉은 두 사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이란 정말 사물의 이치를 몰라서 그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경보를 울려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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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경보는 우리가 그른 일을 행할 때 울리게 마련인데, 그 그른 일은 둘로 나뉜다. 먼저, 사회가 악이라고 규정한 그른 일이 있고, 그와는 별개로 인간 본성이 감지하는 그른 일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회가 규정한 악과 인간 본성이 감지하는 악은 서로 대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짐의 도주에서 헉이 느꼈던 양심의 가책은 사회가 악이라고 규정한 그른 일을 행했을 때의 그것이다. 바꿔 말하면 짐을 신고하는 행위는 사회의 선이었지만, 헉의 본성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곧 악이었던 셈이다. 또한 왕과 공작의 처벌은 사회적으로 선이었지만, 헉의 본성은 그것을 그른 일로 감지한 것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더욱 흥미롭다. 사회가 규정한 악행을 저질렀을 때 울리는 양심경보는 그것이 작동할 때 시선이 전제된다. 반면 인간 본성이 감지하는 악행은 시선과는 무관하다. 사람들이나 하나님이 보고 계시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가 가담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양심과 인간 본성의 양심이 충돌할 때 헉은 어떻게 자신의 본성을 따를 수 있었을까?

 

2.친구의 선한 마음을 보는 마음

이 책을 읽으며 감동을 많이 받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짐과 헉 (그리고 톰이) 서로를 위해 쓰는 마음씨가 너무 고왔기 때문이다. 같은 뗏목여행을 하면서도 왕과 공작은 각자의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나머지 서로를 의심하고 싸워대는 반면 짐과 헉은 신뢰를 쌓고 서로를 믿는다. 서로의 무엇을 믿었을까? 자유의 몸이 되기 일보직전, 장딴지에 총을 맞은 톰을 보고 의사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지 않을 거라는 짐의 말을 들은 헉은 말한다. 짐의 마음이 눈처럼 흰 것을 알고 있었고반드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 기대했었다고그래서 모든 일이 잘 되었다고(같은 책 pg. 562)” 바꿔 말하면 헉은 짐의 선한 마음을 본 것이다. 짐은 또 말한다.

만일 톰 도련님이 자유의 몸이 되고우리 중 하나가 총에 맞았다면 톰 도련님이 <나를 살려 줘이 애를 살릴 의사 같은 건 필요없어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말이여그게 톰 소여 도련님이겠느냐 말이냥께그가 그렇게 말할까천만의 말씀그럴 리가 없당께그렇다면 이 짐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천만의 말씀!

(위와 같은 책 pg.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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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이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틀림없이 선한 마음을 냈을 것이고 그런 마음을 지닌 이가 곧 톰이라고 짐은 말한다. 단순히 쟤가 나였어도 그렇게 해줬을 테니 나도 그렇게 할 거라는 마음이 아니라, 짐 또한 톰의 선한 마음을 본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선한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의 선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같다. 내 마음이 화로 가득할 때 보이는 것은 화일 뿐인데, 그런 마음자리로 상대의 선한 마음을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또한 상대의 선한 마음을 보고자 하는 마음은 곧 그 사람과 계속 겪어나가겠다는 마음인 것 같다. 앞서 나는 헉의 결심을 사회적 양심과 본성의 양심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친구의 선한 마음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 순간 그냥 같이 가게 되는 것이다. 헉이 짐의 선한 마음을 알아보고 나서 짐의 위치를 알리는 신고편지를 찢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의 선한 마음보다는 부족한 마음을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만날 때, 함께 겪어나가겠다는 마음보다는 상대가 부족하니 단절하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문득 마음만큼 산다는 문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낸 마음의 길을 따라 친구도 만나는 것이다. 서로의 선한 마음을 봐주는 우정이란 얼마나 멋질까? 그야말로 이 세상에 단 한사람의 지기만 만나도 아쉬움이 없을 우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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