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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여자를 보는 ‘눈’, 여자를 만지는 ‘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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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09 22:33 조회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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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사랑의 자유를 찾아 나선 여자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intro 2 (두 번째 변죽을 칩니다)

서론이 길다. 이 문제를 내 문제로 잡기가 쉽지 않다. 요즘도 각종 성범죄 사건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들을 겪지 않은) 나는 이전만큼 거기에 분노하지 않는다. 2만 6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 끔찍한 협박, 신체적 폭력, 성폭행을 수반하며 음란물을 만들고 판매하고 소비한 n번방 사건을 보면서도 잠깐 흥분하곤 잠잠해졌다. 규모와 내용에 있어 어마어마했던 그 사건은 한편으론 우리를 분노하게 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이 달라지는가 싶었는데 여성 혐오와 성폭력이 여전히 이렇게 뿌리 깊구나 싶어 막막하고 지치게 만든다.

한데 맴맴 돌며 싸움의 형세를 만드는 이야기들 안에서 나 역시 이런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받는 것 같다는 거부감이 있었다. 이런 사건들을 담론화하는 건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이전에 겪은 일들로부터 겨우 조금 편안해졌던 내 감정에도 다시 분노의 불이 붙을 것 같아서 싫었다.

그렇게 사건들로부터 눈을 돌리려 하다 보니 나는 ‘피해자’들을 보면서는 “피해자 모드에서 벗어나야지”라는 요구를, ‘가해자’들을 보면서는 “정신 차려야지”라는 요구를 (말하지 않고) ‘품고’ 있었다. 한데 반대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거부감이 올라왔다. ‘왜 피해자 탓을 하지?’, ‘왜 가해자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하려 하지 않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어떤 생각도 명확하게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중으로(사건들을 바라보며, 사건들에 대해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제3자의 입장에 서서 모든 것을 흘겨보고 미워했다. 그 감정은 아마 내가 문제화하지 못하는 이 지점들을 누군가 외부에서 제대로 건드리고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라왔던 것인지 모른다. 이제야 인정한다. 내가 풀어야 하는구나. 그리고 내가 말하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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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어떤 생각도 명확하게 하지 않을 수 있었다.

3. 사건들, 그 안의 충돌들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복잡해졌을까?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나는 처음으로 ‘그런 일’을 겪었다. 단짝 친구네 아파트 근처를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누가 우리를 불렀다. 돌아보니 상가 건물 앞에 한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저씨는 자신의 바지 지퍼 사이로 무언가(?)를 꺼내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밝은 얼굴로 “이리 와봐~!”하고 우리를 불렀다. 애완견을 소개시켜주듯 자신이 손에 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오잉? 저 아저씨 뭘 들고 있는 거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리고 호기심 넘치던 나는 아저씨가 반갑게 우리를 부르니 뭔가 재밌는 게 있는가 하고 당연히 그쪽으로 가보려고 했다. 그때 친구가 인상을 바짝 쓰고 나를 툭툭 치고 끌며 걸음을 서둘렀다. ‘잉? 얘는 또 왜 이러지?’ 하며 내 발은 친구를 따라 걸었다. 훗날 생각해봤을 때 아주 다행이었다. ‘그때 그 아저씨를 따라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종종 생각했다. 이러니 ‘피해자의 욕망’ 어쩌구 하기 쉽지 않고, 함부로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관계없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로 닥쳐오는 세상을 살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즈음, (2학년이 문제인가?) 키가 갑자기 자란 나는 그게 반갑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애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멀대같이 커 보여 싫었는데 좋은 점은 조금 꾸미면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왠지 뿌듯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포지셔닝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언니의 예쁜 옷을 빌려 입고, 구두를 신으면 예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느 날, 친구와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딜 가고 있었다기보다 활보하고 있었달까? 예쁜 친구와 예쁜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신이 났다. 그때 두 명의 아저씨가 우리 옆을 지나가는데 한 사람이 우리를 부르더니 아래위로 훑어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은 이런 능력을 잃어버려 슬픈데) 나는 욱하고 욕을 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와 친구가 말려주어 그 이상의 싸움은 없었지만, 불쾌감이 남았다. 뭐 저딴 놈이 다 있나 부글부글 끓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의 좋던 기분을 잡쳐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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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친구와 예쁜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신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왜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고 재밌었을까? 내가 예쁘게 차려입고 길거리를 활보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과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몸을 훑어보며, 혹은 모른 척 만지고 지나가며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쾌락을 느끼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몸’을 두고 이런 강력한 감정들이 발생하는 이유 말이다. 또 ‘몸’과 관련한 안 좋은 사건은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 이유도.

4. ‘몸’, 힘을 가지다

“어차피 성적으로 어필하려고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것 아니냐”(그러니까 나는 네게 어떤 행동이든 해도 된다)는 말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말로는 이런 감정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내게도 그 사건이 불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절대 그 아저씨를 유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맞는데 넌 아냐~ (너 같은 것들 말고 잘생긴 사람한테 어필하려고 그러는 거야~)”라는 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분노해서(嗔心에서) 나온 상처 주려는 말이지, 진심이(眞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몸을 드러내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과 ‘성적 어필을 하는 것’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다. 한데 우리가 이 둘을 하나로밖에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탄소, 산소, 수소 등등의 물질들이 기적적인 방식으로 결합되어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다. 혹은, 정, 기, 신과 목, 화, 토, 금, 수의 다섯 가지 기운들이 흐르며 만들어내는 것이 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몸은 물질 그 자체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두터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고, 그만큼의 힘을 가진다. 사람의 신체 기관 중 가장 유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가슴-유방-젖가슴 등으로 불리는 ‘유선’과 ‘지방’으로 이루어진 신체 부위는 우리에게 그 물질적 내용은 떠올리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하게 의미화가 되어있다.

가슴은 모유 수유를 하는 기관으로서 모성애를, 또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상징…… 하지만 흔히 말하듯 가슴이 ‘생식’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슴을 보고 흥분한다고(가슴이 ‘야한 것’이 된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러려면 가슴이 야하다고 느끼는 것은 오직 남성들에 한정되어야 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통 이 부분을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을 학습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가슴은 ‘그냥 야한 것’이다. ‘다들 가슴은 야한 것이라고 말을 하니 어쩐지 야해지는(!)’ 것이다. 유행하는 상품을 보면 아무 이유 없이 ‘어!’하고, ‘오!’하고 왠지 눈길이 가고 예뻐 보이는 것처럼. “보라색이 유행이야”라는 말 한마디로 어제까지는 평범했던 색깔이 우리의 감각에 영향을 끼치는, 우리를 잡아끄는 훨씬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보라색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옷을 입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행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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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이 유행이야"

그렇다면 이제 시선을 아주 조금만 넓혀보자. 브이라인 얼굴, 찰랑이는 머릿결, 뚜렷한 쇄골, 가느다란 손가락, 투명한 피부, 혹은 구릿빛 건강한 피부, 애플힙, 꿀벅지… 등등의 수두룩한 말들이 보여주듯 여성의 몸은 패션 잡지, 인터뷰, 뷰티 프로그램, cf 등등을 통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이러면 좋고 저러면 좋다고 엄청나게 이야기되며, 또 요염하고 감각적인 모습들로 계속해서 보여지며 ‘중요한 것’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v라인’이란 말을 들은 우리, ‘애플힙’이라는 단어를 학습한 우리는 그 비슷한 느낌을 방출하는 턱선과 엉덩이를 보며 ‘오~!’ 한다. 그렇게 몸은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졌을 때 발휘되는 힘은 ‘이것이 중요하구나~’하는 확신에 확신을 더해 준다.)

이런 상황 위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맨살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의 드러냄)은 곧 ‘힘을 장착하는 것’이다. 내가 왜 ‘어른 같은’ 옷(노출이 심한 옷은 아니었다!)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게 재밌었을까? 그것은 내가 가진 ‘몸’을 활용해 어떤 힘을 발휘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힘을 가지고자 하는 욕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러기를 기대받지 않고 그러기가 요원한 어린, 여자이지만. 늘 어떤 영향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본능적으로 바라는 ‘자립’의 욕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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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드러내는 것’(맨살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의 드러냄)은 곧 ‘힘을 장착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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