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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여자를 보는 ‘눈’, 여자를 만지는 ‘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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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02 20:47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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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사랑의 자유를 찾아 나선 여자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1. 대체 왜 이런 일이!

대학교 축제에서였다. 공연 무대를 보며 놀고 있을 때 뒤에서 내 다리 사이, 엉덩이 부분에 누군가의 손이 들어왔다. 너무 정신이 없을 때이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잠시 동안 멈칫 하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벙~ 쪘다. 옆엔 남자친구도 같이 있었는데 말을 해봤자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

이 사건은 가볍게 사라지지 않고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게다가,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믿기 힘들 텐데,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실습을 했던 호텔 베이커리나 주방에서 등등. 갑작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훅 훅 들어오는 손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정신은 하얘지고 몸은 굳어서 얼떨떨한 채로 넘어간 게 대다수다. 하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진 않았다. 그런 짓을 한 놈들을 두고 오랜 시간 많은 분노를 하기도 했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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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제들을 풀지 못하고 삭히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것들이 발효라도 되었는지 여러 가지 궁금증도 피어났다. 어느 때보다 타자와의 접촉을 꺼린다는 이 ‘개인주의의 시대’에 갑자기 모르는 사람의 몸을 만지고 도망, 혹은 철판이라니. 저건 대체 무슨 생각, 어디서 튀어나온 담력, 어떤 감각인 거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봐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많은 걸 보면, 이건 그냥 ‘저 XXX’ 하나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들을 벌하고 없앤다고 해도 또 다른 XXX가 사건의 가해자가 되어 등장할 게 뻔하다. 가해자인 개인들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무지와 무능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미리 말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들이 ‘특별한 악인’이라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대체 어떤 배치가 계속해서 이런 사건들을―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양한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또 이 배치를 바꿀 키(key)는 어디에 있을까?

2.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key를 손에 쥐기

먼저 담론들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런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겐 아주 지긋지긋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지긋지긋하다’는 이야기조차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혼란스럽다. 이야기들이 선을 그리며 나아가지 못하고 소용돌이 속에서 돌고 도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주 조심스럽기 때문에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고, 비슷한 말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점점 더 지겨워만 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우선, 이런 이야기의 과정들이 반복되는 듯 보인다. 1)사건들과 감정들. 이런 사건들은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도 오래 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찝찝함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이런 사건들은 정말이지 많이 일어난다. 2)가해자를 벌해야 한다. 지겹게 이야기되어도 제대로 행해진 적은 없기 때문에. 또 이걸 ‘누가 해줄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 호소하고 있지? 사법부의 문제인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나?)

동시에, 3)‘너의 행동을 돌아보라’는 이야기. 여기가 아주 중요하다. 다양한 결의 이야기들이 여기에서 뒤섞이며 소용돌이를 만든다. 이 말은 ‘당신의 삶을 다르게 구성하라’는 구원의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에 고통에 빠진 사람을 ‘나약한 인간’으로, ‘망상러’ 정도로, 더 나아가면 ‘꽃뱀’으로(“네가 원해서 그랬지?”, “그러니 왜 그렇게 살아?”) 치부하는 여론을 구성하는 데에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웬만한 공감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이렇게 들려버리기가 쉽고, 다양한 의도들로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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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피해자는 피해자고 가해자는 가해자다! 논지를 흐리지 마라! 확실히 해라!’라는 담론이 강해진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은 어디까지가 성추행인지, 어디까지가 피해자고 가해자인가의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의 싸움으로 번진다. 더 많은 일들이 ‘사건’이 되고, 말해져야 한다고 느껴지고 요구된다. 와중에 ‘법을 제정하자(=사회적으로 벌하자!)’는 문제와(물론 중요하지만) ‘내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안고 갈 것인가?’의 문제가 뒤섞인다. (이건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들어주고 판단해주지 않으면 내 문제를 풀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해버린다. 우리는 대체 누구의 심판을 기다리는 걸까? 무슨 이유로, 누굴 설득하려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을 긋고, 누가 “너는 피해자야”를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런 노력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힘든 일을 겪었는데 “네가 조심할 수 있지 않았냐” 등의 말을 듣는 건 억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것은, 이 배치를 바꾸고 다르게 감각하고 구성할 수 있는 열쇠가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가해자보고 “네가 다 잘못했으니까 네가 다 책임져”라는 말은 일견 정당한 것 같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말’이라는 것은,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힘을 발휘한다. 성추행을 일삼는 안하무인의 그 사람과 나, 중에, 누가 말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누가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나다. 그러니 나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다. 상대의 입장과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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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다. 상대의 입장과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다.

“너도 문제가 있어~”라는 말과 싸우려다 보면 소용돌이의 함정에 빠진다. 차라리 이런 말을 멋대로 번역해버리는 능력을 기르는 편이 낫다. “네 문제야”라는 말을 백번 양보해서 “너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야”라는 말로 받아 안아 판을 뒤집는 힘을 얻는 것이다. 저 말이 어떤 마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뱉은 말인지를 살피며 두 번째 화살을 맞을 필요가 없다. (이런 일이 다른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러우면, 혹은 아직 쫌 억울하면, 이런 작업은 ‘몰래’ 하면 좋다.)

한데 ‘나-너’, ‘피해자-가해자’를 견고하게 가르는 시선으로는 이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선 이 견고한 구분을 흩트리고 보는 데에, 조심스럽게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어떤 시선들, 감각들, 가치들을 만들어내고 있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지, 나는 그 어디쯤 끼어 이 배치를 작동시키며, 흐름을 다르게 구성할 수 있을지. ‘나의 욕망을 되돌아보는’ 일은 ‘저 X도 못됐지만 나도 잘못한 일’을 파헤치는 일이 아니라 비슷한 사건들의 반복을 막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여 탈출구를 찾는 일이다. ‘세상을 바꿀 힘’은 아니더라도, ‘내 삶을 바꿀 힘, 내 삶의 서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구성하는 힘’을 적극적으로 그러쥐어야 한다. 이건 법적인 문제와 별개로(법적인 처벌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끌고 가는 방향성, 그리고 삶의 주인이 되는 것에 관한 문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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