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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섹스는 강렬하나 ‘임테기’는 못 산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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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6-12 20:33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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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사랑의 자유를 찾아 나선 여자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사건1. ‘왜 콘돔을 써야 할까?’

나는 한동안 ‘콘돔’에 대해, 아니 혼전 성관계에서는 ‘피임을 꼭 해야 한다’는 우리네 상식(?)에 억하심정을 품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슬픈 기억이 몇 개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오래 만나 왔던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하던 중, ‘콘돔을 없애고 싶다!’는 느낌이 강력하게 들었다. 내 몸은 남자친구와 더 깊게, 가깝게 만나고 싶었다. ‘왜 이 남자가 내 뱃속에 사정을 하면 안 되는 거지?’, ‘왜 이 남자의 정액이 내 뱃속에 들어오면 안 되는 거지?’ 하는 생각들이 올라왔다. 강렬한 괴로움이었다.

결국 남자친구에게 말을 했다. 콘돔을 쓰고 싶지 않다고, 네가 내 뱃속에 사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남자친구는 나를 다독이며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 이성적인 사람..!

나는 남자친구가 참 침착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왜 괜찮지?’ 나는 이렇게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과의 성관계가 왜 이렇게 가로막혀야 하는 건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리가 강하게 갖고 있는 상식이, 내 몸을 억압했던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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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남자친구와 더 깊게, 가깝게 만나고 싶었다.

사건2.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지우다

얼마 후, 한 달인가 생리를 거른 적이 있었다. 피임을 안 한 적은 없지만 평소 생리를 걸러본 적이 없던 나는 왈칵 ‘임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고민들이 내 머릿속을 휩쓸었다.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주변 사람들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고민이 커질수록 누구에게도 말을 하기가 힘들어져 갔다. 분명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되는 친구들에게도, 언니에게도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당장 내가 한 일은 폰으로 콘돔 피임률, 쿠퍼액 임신 확률 등등을 검색해 보는 것이었다. 끙끙 앓지 말고 당장에 임신 여부를 확인해보면 되지 않느냐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겐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결과를 볼 자신도 없었지만, 아예 구매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면 어쩌지? 엄마가 아는 사람이 나를 보면? 약사는 어린 애가 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면 뭐라고 생각할까? 혀를 끌끌 차진 않을까?……. 등등의 온갖 걱정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남자친구뿐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사정을 말했다. 생리를 안 한다며 임신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서 엄청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역시나 이성적인, 참고로 그는 물병자리였다.)남자친구는 나를 안심시키며 그럴 리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쿠퍼액으로든 아님 콘돔을 잘못 사용했든 임신일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을 거라고 우겼다. 내가 보기엔 분명 ‘해결 불가능’하게만 느껴지는 이 문제 앞에서, 내겐 ‘내딛을 다음 걸음’이 아니라 함께 불안해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내 불안을 남자친구에게 설득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뾰로롱~’ 아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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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인 남자친구는 그렇다면 ‘낳아서 키우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이의 존재’를 설득해 놓고,) ‘그러지 못 하겠다’고, 아이를 지울 거라고 했다. (웬 태세전환??) 남자친구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진심이냐고 물었다. 우리 사이에 생긴 아이인데 그럴 수 있냐고 했다. (상황극이 아니다.)

남자친구는 나의 말에 실망한 거 같았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나서도 그때 그렇게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오랫동안 남았다. 나는 왜 사랑했던 그 사람에게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3. ‘사회’가 ‘자연적 성’을 가로막고 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이 사건은 이별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 기억들은 오랫동안 나를 구슬프게 했다. 사실 전부터 그와 장난삼아 아기를 가지면 태명은 이렇게 짓자~ 하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이 사람과 닮은 아기라면 얼마나 귀여울까~’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게다가 내가 ‘콘돔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느꼈던 그때, 내 몸은 격렬하게 그의 아이를 잉태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것이 단순히 ‘더 큰 성기적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자 차원’의 일, 즉 ‘자연의 부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와 헤어지고 몇 년간을, 연애를 몇 번 해보기도 하고, 사람을 잘 만나보려고 (아마 ‘그’만큼, 그를 사랑했던 방식으로, 사랑해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그’만한 사람을, 그만큼 내 감정을 끌어올리고 내 몸을 ‘끌어당기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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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렇게 끌리는 사람을 만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이 강해질수록 점점 더 억울함이 밀려왔다. 내 몸이 그토록 원하던 사람을 놓치다니!

‘몸이 끌리는’ 사람과의 더 찐한 성적 결합, 아기를 잉태하고, 몸이 그것을 겪어내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는 것. 그 길이야말로 내가 놓쳐버린, 진정한 행복과 가치 있는 경험이 있는 길인 것 같았다. 지루하고 피상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내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 길 말이다.

그런 기회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는 생각에,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내 몸의 원초적 소리’를 억압하는 딱딱하고 견고한 내 ‘머리’, 주입된 ‘고정관념들’, ‘사회의 시선’들에 대한 원망도 커졌다. 사회가 우리의 원초적 목소리를, ‘성’을 억압하고 있다! 억울하다 억울해!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4. ‘자연’이란 이름을 등에 업은 ‘판타지’

이런 감정들 덕택으로 ‘성을 억압하지 않는 것’은 내게 더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내 안에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힘이 솟아오를 때 우리는 내 안의 자연을 느낀다. 인간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이 세계에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듯이, 내 몸 역시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성욕,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진짜’ 같다. 몸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사회’라는 옷을 벗은 우리의 솔직한 (그리하여 식욕, 수면욕과 함께 ‘3대 기본욕구’라 불리기도 하는) 욕구. 그래서 이 힘은 성(聖)스럽게 느껴진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나, 사회가 그려놓은 레일을 벗어나 ‘정말로 자연스러운 내 모습’에 도달하도록 도와줄 일종의 ‘맥’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콘돔을 없애지 못하’고, ‘임신을 하지 못한’ 것은 내게, 억울하게 사회의 인습에 굴복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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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욕이라는 것은, ‘자유롭게 풀어두려고 하면 할수록’ 나를 더 옭아매고 성가시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자유롭게 성을 사용하고 있는가?’라고 생각하다 보면, 나의 ‘남성 편력’은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분명 내가 ‘원했던’ 건 이것보다 많았는데! (‘다자연애’ 정도는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니던가.)

‘성욕’, ‘내가 끌리는 것’에 기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자니 관심들(누군가가 좋다, 혹은 섹스를 하고 싶다 등의 마음)은 여기저기로 튀는데, ‘다다익선’의 길을 달릴 수 없는 느린 내 몸-사람과 친해지고, 마음과 몸이 열리는 데에도 오래 걸리는, 맘에 드는 사람에게 저돌적으로 직진하지 못하는 내 몸-이 미련하게 느껴졌다.

‘저 사람들(어쨌든 나 말고 누군가는)’은, tv나 영화 속에선, 다들 실컷 누리며 살고 있는 거 같은데. 아, 나는 정말 ‘진취적’이 되려면,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한참 부족하구나. ‘내 몸의 소리’를 쫓으려다 보니 ‘내 몸’이 미련하게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

이상하게도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나의 성-성욕’과 일상의 관계는 늘 이런 식인 듯하다. ‘성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은 나의 일상을 쉽게 초라한 것, 무언가 온전히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만든다. 반면 ‘나의 원초적 감각’인 ‘성’은 그저 그런 일상을 뛰어넘는 멋지고 근사한 것, 이루지 못한 ‘진짜배기’의 무언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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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의문이 들곤 했다. 왜 나의 ‘섹스 판타지’(나는 이런 것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부추겨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나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 한 미국 랩퍼의 자서전(『에미넴의 고백』, 추천하지 않는다)을 읽고 엄청난 스케일의 그의 ‘판타지’(놀랍게도 그의 자서전은 이 이야기로 시작한다)에 압도되어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게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마냥 생각했었다.)는 언제나 나의 일상을 비웃고 있는가 하는 의문 말이다.

이쯤 되면, 의심이 간다. 누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말한들, 내게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성욕’을 계속 떠받들어줘야 한다고? 분명 우리는 제어 없이 커져 나가는 ‘망상’을, 어떤 ‘판타지’들을 ‘성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한데 거기에 ‘원초적 소리’라는 위대한 이름을 갖다 붙이고, ‘억압되어선 안 된다’며, 너무 과분한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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