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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욕망’은 ‘여자’에 가둘 수 없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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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5-11 15:40 조회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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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소녀,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2)

김석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폐셜)

1. 물 만난 물고기

2010년,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교’는 내게 ‘남녀공학의 시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중-여고 코스를 밟아 온 나의 일상에 ‘남자’라는 존재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들’은 나를 ‘여자로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갑작스레 나를 둘러쌌고, 나는 적잖이 신이 났다.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것도,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재밌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발대식부터 해서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까지도, 학교에 가고 외출하는 모든 시간들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들’로 여겨졌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화장을 할지 고심하며 나를 꾸며냈다.

그렇게 입학 초부터 나는 나름 성공적으로 우리 과의 ‘상큼한 새내기’로 등극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내가 원하는 걸 묻고, 해주고 싶어 했다(고 느껴졌다).

‘남자’를 만난다는 것, 누군가에게 ‘여자’로 여겨지는 건 가만히 있어도 관심을 받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아 즐겁다! 아무래도 ‘여자 되기’는 내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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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여자’로 여겨지는 건 가만히 있어도 관심을 받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2. 우리가 ‘연애’하는 이유

‘남자’와 ‘여자’가 만났으니 뭐가 남았는가? 그렇다. ‘연애’다. 연애 중이거나, 연애하고 싶거나, 모두가 연애에 꽂혀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대학생 때 ‘사랑’ 말고 이 세상에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순간들을 생각해보자.

상대방과 마음이 확- 통했다는 느낌에는 스킨십에 비해도 부족하지 않은 설레임, 긴장했던 온몸이 열리는 편안한 느낌이 있다. 누군갈 좋아하게 되면 대단하지도 않은 상대의 외모나 목소리, 말투 등이 내 온 감각을 곤두세우고 몸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 사람 생각만 해도 하루가 참 알차다.

이렇게 사랑이 피어오르는 순간들은 밋밋하던 일상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부(富)도 영화(榮華)도 무엇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이것은 유일하게 ‘맘만 먹으면 무한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풍요’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이 대단한 즐거움을 ‘꽁으로’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니.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니! 이런 느낌들을 계속 지속시키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이에 비하면 다른 것들-예를 들면 자격증 따기, 시험공부, 스펙 쌓기 등-은 너무 복잡하고 지루한 데다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에는 마음을 잘 주지 못했다. 그저 사랑~ 사랑~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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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랑~ 사랑~을 하고 싶었다.

앞으로 먹고살 준비를 해야 하는 대학생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오로지 연애 타령이라니, 너무 현실감각이 없는 게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전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대학생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대강 이런 거다. ‘취업 준비’, ‘다양한 경험 쌓기’, ‘자아실현’. 연애는 이 모든 것들을 한 큐에 해결해준다.

취업 준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조건에서든 행복할 것 같다. 사랑의 힘으로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을 테니 뭐가 무섭겠는가. 다양한 경험? 연애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겪는가. ‘자아실현’? ‘나’와 꼭 맞는 ‘너’를 만나는 것보다 더한 자아실현이 있을까.

정말이지, 근사한 연애 하나면 만사 오케이일 것 같단 말이다. 그러니 다들 연애~ 연애~ 하고 있는 거다. 적극적으로, 혹은 마음 한편에서, ‘운명의 반쪽’을 찾으며. 내 짝을 찾는 것, 그를 흠뻑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연애는 여러모로 ‘나를 제대로 걸어볼 만’한 사업이었다.

3. 그 이름도 뿌듯한 ‘선남선녀 커플’

나도 두 눈에 불을 켜고 ‘운명의 짝’을 찾아다니다, 그런 사람을 만났다. 2학년이 되던 해, 학기를 시작하는 과 전체행사인 ‘새터(새내기 배움터)’에서 처음 만나 내 눈에 쏙 들어온 그! 알게 모르게 서로 호감을 품고 있던 우리는 조금씩 친해지다가 3학년이 시작하려 할 때 즈음 과 활동으로 엮이게 되었고, 곧 사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오빠가 발렌타인 데이라고 초코렛을 주며 “좋아해서 주는 거야”라는 말을 건넸을 때, 나는 ‘몰래카메라’라도 하는 줄 알았다(우리 과 사람들이 ‘이벤트’를 좋아했다^^;). 그래서 반쯤 포커페이스를 하고, “이거 몰카예요?”라고 물었다.

장난을 치는 거라면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들켜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또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기적! 아, 얼마나 달콤한 일인가!

보고픈 맘에 늘 기웃기웃 거리며 맘에 품고 지내던 그와 이제는 맘 편히 연락하고,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린 같은 학교 같은 과였기 때문에 등하교를 같이하고, 수업도 같이 듣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도 우리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축하(?)를 해줬다.

‘상큼한 새내기’로 입학한 나는 그 당시엔 후배들이 들어와 한창 ‘예쁜 언니’라 불리는 것에 뿌듯해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는 군대를 갔다 와서 나와 같은 학년으로 복학한 과 선배였는데 귀여운 얼굴(남들은 잘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하지만)에 넉살도 좋고 몸도 좋아(^^..) 훈남미(?)를 자랑했다. 형들에게는 ‘괜찮은 후배’, 동생들에게는 ‘좋은 형’, 여자 후배들에게도 ‘그 정도면 괜찮은 오빠’라고 평이 자자했다. 그러니 어땠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과대표 ‘훈남훈녀’, ‘선남선녀’ 커플로 불렸다. 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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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대표 ‘훈남훈녀’, ‘선남선녀’ 커플로 불렸다. 하하. 하하하!

별거 아니지만 이런 게 또 연애하는 맛이다. ‘연애지상주의’의 이 시대에, 모두가 반쪽을 찾아 헤맬 때, 연애를 하는 성공한 자들! 그들은 왠지 대단한 사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다. 연애라는 ‘후광’이 장착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만남으로서, ‘커플’을 이룸으로서 스스로 더 완전한 ‘남자’와 ‘여자’로 거듭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주변에도 더 공고히 자신의 ‘성’을 입증한다. 우린 사랑 받을 만한, 사랑이 가능한 ‘남자와 여자’라고.

그렇게 축복 속에서 연애를 하며 종종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얼굴만 봐도 사랑스러운 남자친구, 그 옆에 ‘예쁜 여자친구’로 자리 잡은 나. 주변 사람들 모두가 칭송해주는(듯한) 완벽한 한 쌍의 커플!

‘선남선녀 커플’이란 타이틀을 얻은 나는 참 의기양양했다. 쥐뿔도 없는 학생이었지만 나는 연애를 하면서 사회적 주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미 내 삶은 ‘성공했다’고 느껴졌다. 다른 것들-돈을 벌고 친구를 사귀고 가족들과 함께하고…-은 내게 ‘부수적인 일’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중요한 것들-예를 들면 정치, 생업, 그 밖의 창작 등-은 단지 이러한 형태의 삶을 만들지 못해서, 맛보지 못해서 추구하는 ‘부족한’ 것들로 보였다.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 ‘완벽한 한 쌍의 커플’을 이룬 내 삶이 최고였다. 다시 한번 말한다. 이 사업, 괜찮다.

4. 폭발하다

‘일석다조’의 인생 사업, 연애는 단연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제대로’, ‘열심히’ 연애하고 싶었던 나는 ‘그’를, ‘연애’를 내 일상에 꽉꽉 채워 넣었다.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함께 등교하고, 수업 듣고, 학교가 끝나면 데이트를 가고.

일이 없는 날엔 당연히 최대한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바쁠 땐 어떻게든 틈을 내서 만났다. 그게 안 되면 문자, 전화, 영상통화 등등. 무슨 일을 하든 거의 옆에 있는 것 마냥 서로 ‘접’할 수 있었다. 그건 우리 사이에 확실한 애정 표현의 방식이기도 했다. 정말 나는 ‘연애하느라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늘 그렇듯 남자친구는 우리가 항상 만나는 집 앞 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발견한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이고 그의 차 옆자리에 올라탔다.

반갑다는 인사를 짧게 나누고 오늘은 또 어디를 갈지 생각할 때였나? 갑자기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우지끈 올라왔다. 호흡이 가빠지고,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지끈하며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늘도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내 옆에 있는 남자친구도(아깐 사랑스럽다더니 너무 갑작스런 태세 전환인 것 같지만 정말 이렇게 느껴졌다.), 이 좁은 차 안도, 뭘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같이 있는 지금 상황도 지루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입고 있는 옷도 답답했고, 내가 이런 화장을 얼굴에 ‘올리고’ 있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얼굴을 당장 씻어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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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할 것 같았다. 너무 갑자기 폭발하긴 싫었던 나는 간신히 호흡을 찾아 “노래 듣자!!”라고 말하며 핸드폰을 들고 당장 생각나는 가장 시끄러운 음악을 켰다. 그리고 창문에 머리를 찧었다. 아니 헤드뱅잉을 했던가? 그리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렇다. 소리를 지르고 창문에 머리를 찧고 헤드뱅잉을 해댔다. 하지만 너무 황당한 일이어서 ‘정말 내가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믿기지 않는 몸의 오작동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잠깐의 침묵이 있고 나서 남자친구는 내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다. 그리고 헤어져 각자 집으로 갔던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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