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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난 이렇게 되어야만 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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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5-04 10:41 조회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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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변태 도덕론자, 호미미 - 2)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도덕론1. 저들은 이해 불가의 존재다.

사춘기 남자애들을 보며 혼전순결을 결심한 나의 이야기 속에는 아주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해석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지금부터 바로 그 해석 체계, 호미미의 도덕론을 소개하려 한다.

나는 중학교에 이르러 막 성(性)에 눈을 떠서 호기심이 충만한, 그러나 철이 좀 없는 남자 친구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은 하나의 새 장난감과도 같았을 것이다. 거기다 여자애들이 옆에 잔뜩 있었으니 흥미로움은 자연히 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어찌 보면 그 나이 대 남자애들이 그러고 노는 건, 아예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그 애들을 보며 ‘더럽다’고 느꼈다. ‘도대체 왜 저래?!’ 나의 눈에 그들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물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치도 없긴 했다. 내 앞에 있는 그들, 나와는 달리, 남자인 그 애들은 내게 있어 ‘나쁜’ 존재였다. 선악의 구도에서 보자면, ‘악(惡)’에 해당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원래부터 ‘악’인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진짜 악이었다면, 내가 다닌 학교의 여자애들 대부분이 나처럼 혼전순결주의자가 됐어야 할 거다. ‘저런 짐승 같은 놈들!’이라 외치며, 악에 가까운 남성을 혐오하면서….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친구들만 해도 성에 있어 아주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이었다. 우린 같은 남자애들을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니 중학교 남자애들을 보며 혼전순결을 결심한 나의 경우에, 그 남자애들을 ‘나쁜 존재’로 만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그들에게 ‘더럽다, 고로 악하다’는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금 나의 삶에서도 아주 빈번히 일어난다. 나는 많은 행동들, 사람들에게 ‘저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말을 붙이는 일을 즐겨 한다. 그만큼 내 눈엔 사람들이 가진 부정적인 면들이 시시때때로, 확대된 모습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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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한창 태극기 부대의 열기가 뜨거울 때, 나는 그분들에게 너무나 쉽게 ‘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대행진에 의해 명동 한복판에서 길이 막혔을 때 나는 상당히 짜증나는 얼굴로 그분들을 바라보았고, 생각보다 엄청난 인파와 열기를 마주하면서는 ‘정말 기괴한 현상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미디어에서 태극기 부대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안에서는 불쾌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혐오, 원망, 짜증과 불만 등등……. 이건 중학교 때 같은 반 남자애들을 향한 감정과 아주 똑 닮아있었다.

나는 그분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너무나 심심해서 그러는 것처럼 보였고, 인생을 많이 사신 분들인데 어찌 그렇게 유치한 구호를 내걸 수가 있는 건지 참…씁쓸했다. 그러니까 나는, ‘오직 내 세계의 시선으로만’ 그분들을 보려고 했다. 나는 한번도 ‘그분들의 입장에’ 서보려 하지 않았다. 왜? 곧바로 ‘혐오’의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한번 그 감정에 휩싸이고 나니, 그 사람들을 더 이해해보려 하는 마음은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나는 그들을 이해할 필요를 못 느꼈다. 내가 왜, 뭣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을 이해해야 하지?

여기서 잠시, 내가 그동안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들을 되짚어보자. 난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일들에는 깊이 공감하며 ‘이해한다’고 느낀다. 예를 들면 태극기 부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와 비슷하면서도 대조되는 8-90년대 대학생들의 데모 같은 경우에 나는 온 감정을 동원해 그들을 이해하며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의 입장은 어떨까? 그분들은 과연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대학생들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셨을까? 바로 여기가 시선이 겹치는 지점이다. 태극기 부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데모 학생들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시선…. 우리의 시선은 다르지 않다.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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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나와 비슷한 생각, 내 입맛에 맞는 논리에 그저 손쉽게 동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회로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결코 내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의의 자리에 사랑이 들어오든, 윤리가 들어오든 매한가지다. 중요한 건 그 어떤 게 들어와도 ‘내 맥락 위에 있는 것’에 배치되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엄청난 무능력과 무기력의 증표다. 우린 도대체 뭘 ‘이해했다’고 말하는 걸까? 나의 위치와 다른 곳에 서 있는 이들에게서는 설설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게 아닐까?

도덕론2. 그러므로 나는 선(善)이다.

내 안은 이제 타자의 단점들로 가득 들어찬 곳간이 된다. 비단 태극기 부대만 그런 눈으로 보겠는가? 일상을 함께 하는 옆 사람들, 가족, 남자친구 등에게는 훨씬 더 미세하고 예리한 눈이 작동한다. 그래서 호미미는 종종 사나운 말투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내뱉는다. “쟤는 그게 문제야, 문제~!”

다른 사람을 감시하고 비판하길 좋아하는 이런 성향은 도대체 왜 생겨나는 걸까?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나 자신이 ‘선’에 도달하는 것. 타인의 잘못을 인식하는 동시에, 내 안에서는 ‘나는 저러지 않음’이 비춰진다. 그 짧은 인식의 순간 하나로 인해 나의 ‘무결함’이 입증되는 것이다. 그 순간 아주 손쉽게 ‘나쁜 너’에 반대되는 ‘좋은 나’가 생성된다. 정말 놀랍도록 효율적인 시스템 아닌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어왔다. 내가 혼전순결, 깨끗한 이미지에 집착했던 것도 그와 같은 것을 ‘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게 뭐가 문제지?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상승한다’는 데에 있다. 나는 결코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행동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나의 성취는 오직 타자라는 악의 성립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저 사람의 잘못을 발견해야만 내가 선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그런 ‘상승하는’ 느낌을 사랑한다. 드높여진 존재, 존재적으로 고양되는 느낌. 한마디로 말해,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잘났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받아야만 만족한다. 나는 스스로를 ‘선택받은’ 존재로 여기곤 했다. 실제로 자의식이 왕성히 꽃피어나는 중2 쯤의 시기에, 나는 우주의 어느 특별한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라든지, 전생에 참으로 어여쁜 공주였는데 갑자기 순간이동을 해서 지금 여기로 와버렸다든지 하는 식의 상상을 거의 매일 밤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이야기를 다양하게 변주해나가면서…오늘은 공주님이 됐다가, 그 다음 날은 천사가 됐다가 그 다다음날은…하여간 그때 나의 상상력은 아주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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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상은 재밌기도 무척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아주 ‘간편’했다. 누워서 눈만 감으면 화려한 비디오가 펼쳐졌으니까. 게다가 또 웬만한 텔레비전보다 흥미진진했다.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내 취향으로 꾸밀 수 있는데다가, 스토리도 무한히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작은 방에 들어앉아 혼자서 조용히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온갖 스펙타클한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이 얼마나 좋은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엄청나게 위대한 인물들이 될 수 있는데!

그러니 나는 현실 속에서 지낼 때에도 ‘사실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게임중독자들이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게 있어선 현실보다도 ‘상상 속 세계’가 더 ‘현실적’이었다. 상상이 실제 현실이 되다니, 믿기 힘들지만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그만큼 상상 속 세계는 나 스스로에게 훨씬 더 큰 강렬도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히 받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나의 경우에는 주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거나, 아니면 누가 나를 좋아라 해줄 때, 내가 뭔가를 이뤘을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때 생성되는 느낌은 아주 강렬하다. 그건 말 그대로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자아’가 더욱 ‘강화’되는 느낌인 것이다.

그런 느낌이 오는 순간 이외의 현실은, 내게 있어 지루하고 밋밋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강렬도를 더욱 더 느끼기 위해, 현실보다는 상상 속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의 그 회로는 중2병이 지나간 후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듯했다. 성인이 돼서도 그런 상상 속에 빠져 살 수는 없지 않겠나. 하지만 그건 결코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회로는 조금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내 안에 튼튼하게 자리 잡았다. 그게 바로 앞에서 소개한 ‘타인의 악을 통해 나의 선함을 감상하는’ 해석체계다.

이쯤 되면 호미미의 도덕론이 참으로 끝내주게 창의적이고 편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현실에서 뭔갈 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들에게 아~주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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