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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난 왜 이렇게 못났을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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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30 15:32 조회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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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변태 도덕론자, 호미미 - 1)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자기연민 ? ‘ㄴr’만 생각ㅎㅏ면… 눈물ㅇㅣ.. ㄴr…

내가 아주 중요하다 생각하고 꼭 필요하다 믿었던 무엇이 그냥 ‘느낌’만 있지, 그 안에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경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관념이란 게 실체도 없으면서 얼마나 사람을 맹목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게 되었달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 막연~한 결핍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연애에 있어서, 존재 자체에 대해서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의 정체는 호미미다. 그런데 호미미는 왜 자꾸 내 삶을 부족하다 말하는 걸까?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나 역시 아주 오랫동안 그런 이유인 줄로 알았다. 나는 내가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재에 쉽게 안주하는 게 아닌, 뭔가 더 좋은 걸 계속해서 고민하려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실제 삶에서는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한번 물어보자.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후에 어떤 행동을 할까?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노력을 할까? 관념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기 바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부족한 걸 알면 그걸 깔끔히 인정하고, 행동을 다르게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생길 텐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난 왜 이렇게 못났을까… 우린 왜 마음대로 데이트도 못할까… 왜 나는 이렇게 아무 생각도 없는 놈이랑 사귀고 있을까…’

이 서사 속 ‘나’는 너무 슬프다. 결핍감이 드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내가 젤 불쌍하다. 이런 회로는 나 자신을 ‘한없이 약한 사람’으로 보게 만든다. 나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쓸쓸하고 아련하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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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요새 친구들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는 경우가 많다. ‘나’만 생각하면 왜 그리도 슬픈지, 뭐가 그리도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지, 얘기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눈물샘이 퐁퐁 솟아오른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래서 한때 이런 우리들(요새 청년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성세대(선긋기ㅋ) 근영샘은 공동체에서 자기 얘기만 하면 우는 애들을 모아 조용한 방으로 데려가셨다. 그 모임의 이름은 일명 ‘눈물 정진.’ 무엇이 그토록 슬픈지, 왜 눈물이 나는지를 글로 적어서 같이 얘기해보고, 이제는 그만 눈물을 털어버리자는 뜻에서 결성된 게릴라 모임이었다.

그때 나온 내용들 역시 내 돈가스 사례와 비슷했다. 막연하고 실체 없는 그 글들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들. ‘엄마가 불쌍해요….(어머니 잘 살고 계시는데)’, ‘언니들한테 감정을 말하기가 어려워요….(입도 떼기 전에 눈물 장전)’, ‘전 남자친구가 떠올라요….(몇 년 지났음)’ 그 이야기 속에 있는 ‘나’는 너무나 무력한 존재들이었다. 거기에 얽힌 감정들은 스스로도 이해불가, 소화 불가능한 암흑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객관적인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거나, 슬퍼할 만한 게 아니거나. 헌데 우린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도 슬픈 걸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물을수록 허망하도다…….

탐욕의 다른 이름, 결핍

나 자신하고의 관계만 그렇게 맺는 게 아니다. 이런 식의 ‘슬픈 서사’는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다. 지금 이 시대의 ‘청년 문제’를 논할 때, 우리의 담론은 청년을 마치 ‘구제해줘야 할 대상’으로 놓고 이야기한다. 사회가 바라보는 청년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면, 몹시 유약하고 안타까운 얼굴을 한 젊은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정말 그런가? 이들이 정말로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어하나? 그럼 취직을 했는데도 의미를 모르겠다며, 힘들다며 쉽게 그만둬 버리는 청년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의 담론으로는 그런 청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다룰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청년들 스스로 ‘흙수저’인 자신의 인생을 개탄하는 구호를 내건다. 과연 그런 식의 문제 제기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사회에서 점점 ‘슬픈 존재’가 되어가는 청년들은 세상에 어떤 이야기들을 던질 수 있을까. ‘금수저를 내놓으세요?’, ‘열심히 일할 테니 연봉 높은 일자리를 더 주세요?’ 그런 식의 담론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뭘 좀 해달라는 ‘요구’로밖에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요구’란 것의 내용은 죄다 자신이 뭘 ‘갖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자신이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갖겠다’는 거다.

  나를 괴롭게 하는 저 상사가 하는 일 없이 내 월급의 300% 이상 되는 돈을 가져가는 걸 볼 때마다 속에서 불이 난다. 저 돈은 나같이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회사에서 갑질을 ‘당하는’ 존재다. 거기서 받은 스트레스는 평점 짱짱한 맛집에 가서 맛난 음식을 ‘취하며’ 풀어야겠다. 나도 좀 ‘누려야’겠다.

(직장인 친구의 술자리 회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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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속 ‘나’는 아주 무력하고 약한 존재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한 무력감이 아니다. 엄청난 탐욕을 뒤로 하고 있는, 뭔가를 ‘갖기 위한’ 무력감. 어느새 자신을 ‘당연히 뭔가를 가져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놓는 슈퍼 매직~♬

다시 연애를 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에게로 돌아와 보자. 나는 내가 아주 부족하고 약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거기다가 다른 커플들은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데이트도 자주 못한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쓸쓸했다. ‘이럴 거면 연애는 왜 하니?!’ 이런 식의 말들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내가 했던 일은 그 애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거였다. ‘시간을 좀 더 내봐. 힘들어서 쉬고 싶어도 나를 위해서 조금만 참아. 우리의 연애를 위해 노력 좀 더 해!’

‘부족하다’는 그 쓸쓸한 언표를 통해서 무엇이 작동되고 있는가. 바로 ‘난 널 가져야겠어’라는 소유욕이다. “난 너의 시간을 갖고 싶으니 피로 같은 건 알아서 해결하구~ 나한테 힘 좀 더 써!”라는 뜻이다. 여성들은 특히 이런 식의 언표 사용에 능하다. 연인을 나의 영역 안에 가둬놓고 싶을 때, 여성은 결코 ‘나만 봐!’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관계에 얼마나 중대한 문제가 놓여있는지, 그리고 나는 이것 때문에 얼마나 슬픈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야 자신의 탐욕이 가려지니까!

그렇기 때문에 결핍을 느끼는 이의 가장 큰 특징이 생겨난다. 자신은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 나는 그렇게 숱하게 ‘데이트를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애와 순간순간 만나는 시간들을 ‘데이트’로 만들어보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 애와의 관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그런 것들을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거기에서 정작 자기 자신은 쏙 빠져있다. 나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이렇게 해 줘~ 저렇게 해 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건 참 많다. 관계에 있어 결핍을 느끼는 이런 마음은 사실 상대를 향해 엄청난 권력의지를 행사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난 가만히 있을 테니까 네가 알아서 찾으라는, 날 만족시켜보라는 섬뜩한 신호. “우리 사이엔 뭔가 부족한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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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미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연두를 돕는다. 우리가 느끼는 결핍은 사실 엄청난 소유욕의 발로다. 우리는 거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결코 어떤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관계를 더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마음이 아니다. 도대체 이 근거 없는 결핍감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자, 이제 호미미의 승질머리를 소개할 때가 왔다. 호미미는 사실, 다중이(?)다. 결핍, 뭔가 부족하다는 관념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이 꼭 필요했다. 결핍되지 않은 이상적인 상태, 그게 있어야만 ‘나는 부족해..’라는 쭈구리 호미미가 생겨날 수 있다. 바로 그 쭈구리 호미미의 반대편에 ‘너는 이렇게 되어야 해!’라고 호통을 치는 도덕론자 호미미가 있다. 얘도 참, 증말 골 때리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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