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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난 왜 이렇게 못났을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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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23 18:40 조회1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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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변태 도덕론자, 호미미 - 1)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블랙헤드’와 ‘무다리’ ; 나를 정의하는 키워드

거울 앞에서 여러 가지 표정을 취해본다. 어딘가 굉장히 어색하고, 못나게 느껴진다. 유난히 얼굴이 비대칭인 것 같다. 눈동자에는 또 왤케 실핏줄이 많은지, 눈이 깨끗해보이지가 않는다. 아니 근데 헉.. 잠깐만. 더 심각한 건 콧볼에 있는 모공 평수다. 얘는 또 언제 이렇게 넓어졌대~?! 아우 짜증나!! 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일단 나가자.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던 친구들 사이에 껴서 다시 수다를 떨며 걸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코에 있는 모공이 신경 쓰인다. 아까 보니까 까만 블랙헤드도 잔뜩 꼈던데, 아쒸…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는 이 친구는 어릴 적부터 피부가 넘 좋다. 모공 따윈 키우지 않는 너란 여자. 그래서 이 친구 얼굴을 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다. 기분 좋은 아이보리색 도화지를 보고 있는 느낌. 앞에서 다른 친구랑 걸어가는 저 친구는 말을 참~~ 맛깔나게 잘한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한 언어구사력을 펼치는데, 적재적소에 웃음 포인트를 심어놓는 재주까지 있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하지? 또 그 옆에 있는 친구는 다리가 얇고 예쁘다. 종아리선이 어찌나 고운지, 남자들이 진짜 좋아할 것 같다. 난 슈퍼 울트라 무다리라서 저런 다리가 되는 건 꿈도 꿀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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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보이는 친구들은 다들 예쁘다. 얼굴이 막 화려하게 예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있으면 존재적으로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 다들 저마다의 장점을 갖고 있는데, 그게 다 달라서 참 신비롭다. 얘네를 보고 있으면 내 눈과 귀와 마음 등등이 즐겁다. 그에 반해 나는……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누군가가 빈말로라도 ‘너두 예뻐~’라고 하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내가 어디가..??’ 게다가 난 잘하는 것도 딱히 없다. 뭘 해도 엉성하고 서툴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도대체 난 왜 이럴까…….

위와 같은 의식의 흐름은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한 10대 때부터 최근까지,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내 머릿속에서 생생히 울려 퍼지던 목소리다. 짧은 장면이지만 참 강렬하지 않은가? 내 삶의 대부분은 이런 식의 서사로 구성되어있다. 어떤 장면을 건져 올려도 비슷하다. ‘저 사람들은 되게 멋지고 뭐든 잘하네. 근데 난 엄청 부족해..’ 아주 오랫동안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스스로 강화시켜왔다. 왜? 여기에 바로 이번 장의 주인공, ‘호미미’가 있다.

호미미는 내 삶에 끊임없이 ‘결핍’을 불어넣는 녀석이다. 호미미의 숨결은 정말이지 마법에 가깝다. 호미미에 의해서 나는 실제로 삶의 부족함을 목격한다. 부족한 삶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결핍은 만들어지는 것과 동시에 실제 삶이 된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20년을 ‘존재적으로 모자란 사람’, ‘어딘가 덜떨어진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게 진짜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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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진짜 가짜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뭐 어떤 부분에선 실제로 내가 좀 덜떨어진 부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호미미가 들러붙어있음으로써 삶이 어디로 굴러가게 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분명히 호미미가 얻고 있는 게 있다. 나는 그것을 봐야 한다. 그걸 보고나서도 호미미에게 삶을 내어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린 ‘데이트’가 필요해

‘뭔가 부족하다’는 그 목소리는 연애의 장에서도 아주 크게 들려왔다. 과연 나는 연애에서 끝없는 목마름을 느꼈다. 연애를 시작하게 만드는 감정은 몹시 설레고 기쁜 것이었지만, 막상 연애가 시작되고 나니 즐겁고 좋은 일보다는 걱정되는 일이 훨씬 많았다. ‘우리가 잘 해나가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특히 나는 그 애와의 데이트가 늘 마음에 걸렸다. 우린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각자의 공부와 공동체 활동으로 바빴고,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둘이서 뭘 하기는 힘들었다. 그냥 친구처럼 지낼 뿐. 그래서 난 당연히 ‘연인으로서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화도 도란도란 나누고, 얼굴도 좀 보고, 연인 사이의 분위기를 팡팡 풍길 수 있는 그런 시간. 연인이라면 이런 시간이 당연히 필요하지 않나?

하지만 그 애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활동으로 바쁠 때면 그 애는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했다. 난 그게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얘는 내가 여자친구로 안 보이는 건가?’ 난 아무리 그날 하루가 바쁘고 힘들어도 그 애와의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쉬는 거지!

그렇게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때면 나는 이런 논리를 들이밀었다. “우린 데이트도 자주 못하잖아!” 그랬다. 우린 얼굴을 자주 보는 것에 비해 데이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공부하다가 한 번씩 산책을 같이 가고, 출출하면 편의점 가서 같이 간식도 사먹고, 심심하면 살~짝 불러내서 수다도 떨긴 했지만, 그게 ‘데이트’는 아니지 않나?? 그건 그냥 노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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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감과 찐한 교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걸 나눌 수 있는 데이트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으면, 우리의 관계가 금방 소원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애는 도대체 생각이란 게 없었다. 난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는데, 얘는 ‘그런 시간이 따로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단다. 어이가 없었다. 우리 사이에 대해 이렇게나 아무 생각이 없다니!

그 애와 나는 이 문제로 자주 다퉜다. 특히 그 애가 바빠질 때면 다툼이 더 잦았다. 데이트는 고사하고, 평소 같이 가던 산책을 가자고 해도 자기 바쁘다고 홱 거절해버리니 내 눈엔 ‘자기밖에 모르는 놈’으로 비쳤다. 이럴 거면 도대체 연애는 왜 하니?!

공동체에 살다보니 우리가 싸우면 연구실 식구들이 금방 알아본다. 샘들이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그 애는 그걸 또 눈치 없이 다 말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연애에서 느끼는 ‘결핍’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같이 공부하는 근영샘이 그걸 들으시고는 엄청 웃으시면서 “그럼 네가 생각하는 진짜 데이트는 뭔데?”라고 물으셨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거부감도 들었다. 우리가 데이트를 잘 안하는 건 사실인데~!?

하지만 샘은 급기야 글쓰기 모임에서 ‘원하는 데이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써올 것’이라는 과제를 나에게 내주셨다. 이런 걸 쓰게 되다니…우째서…ㅠㅠ. 일단 쓰겠다고 했으니 쓰긴 써야 하는데, 쪽팔림은 둘째 치고 진짜 글이 무슨 똥꼬에 똥이 콱 막힌 것처럼 안 써졌다. 내가 원하는 데이트는 생각보다 너무나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잘 잡히지가 않았다.

그나마 나온 걸 요약해보면 이런 것이었다. ‘한강에서, 츄리닝이 아닌 옷을 입고, 돈가스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글쓰기 모임에서 그걸 읽는데, 정말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게 이게 맞긴 한데…진짜…이것밖에 안 된다고……?

샘이 내주신 과제는 내가 느끼는 결핍의 정체를 스스로 대면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정체를 보게 된 순간 몹시 허무해졌다. 내가 그렇게나 매달리고, 이런 데이트를 안 하는 건 우리 관계에 치명적이라 생각하고, 이렇게만 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그런 데이트의 정체가 고작 ‘돈가스’ 같은 걸로 환원되다니. 내가 그렇게 돈가스만 먹으면 행복할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이었던가? 난 돈가스를 먹지 못해서 그동안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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