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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다른 성욕의 탄생 | 우쒸, 내 장난감이 더러워졌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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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24 08:40 조회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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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유욕의 화신, 연두 - 2)

이호정(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단둘의 세계? ‘나’의 세계!

그 애와 나,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연두가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유욕을 정당화할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내게 있어 연인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애가 내 연인이 된 이상, 다른 이성과 친밀하게 지내는 일은 나로썬 참으로 허용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도 그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인 공부공동체에는 남성이 별로 없어 이성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원천 차단된 덕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애에게 더더욱 떳떳하게 요구했다. “너, 여자애들이랑 너무 노는 거 아니야?”

그 애가 공동체 식구들과 친해질수록, 내가 그 애를 째려보는 날도 비례적으로 늘었다. 그러면 그 애는 내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고, 나는 고개를 홱 돌려 그 애를 무시했다. 이 상황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달 동안, 몇 백 번에 걸쳐 반복됐다. 나중에는 그 애가 ‘자기 좀 제발 살려 달라’며 애원했다. 그땐 ‘살려주긴 뭘 살려줘~? 살아 있잖아!!’라며 모른척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 업보를 어떻게 다 갚나… 싶다.

내가 그 애에게 암묵적으로 끊임없이 주입했던 것은 ‘나만 봐’라는 명령어였다. 우리 사이에 ‘나’와 ‘너’ 말고 다른 것이 끼어들 틈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연인은 ‘단둘’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존재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바라봐야 할 것은 오직 ‘나’뿐!

그 명령어는 내게도 아주 강력하게 작동했다. 정말 놀라운 건, 그 애와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내 눈에 친구들이 더 이상 마냥 ‘친구’로만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은 그 애와 얼마나 친하냐에 따라 ‘나’를 위협하는 ‘적’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어떨 때 친구들은 나와 그 애를 빛나게 하는 ‘들러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 애와 친밀하다는 걸 증명함으로써 이 관계가 특별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했다. 그런 내게 있어 친구들은 이제 더 알고 싶고, 함께 삶을 나누고 싶은 동료들이 아니었다. 그저 ‘나’를 위협하거나, ‘나’를 빛나는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오로지 ‘나’밖에 보이지 않는 세계, 나는 그런 세계를 견고히 하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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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이렇게 좁은 세계에 가두게 되는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고 촘촘하게 맺어지는 또 다른 곳이 있다. 바로 ‘가족.’ 대부분의 이들에게 가족은 세상 소중한 존재로 여겨진다.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아내와 남편의 다른 관계들은 순위권 뒤로 쭈욱 밀려난다. 그런 현상은 아이가 생기면 더욱 심화된다. 가족다운 가족이 되어갈수록, 그들은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들과 점점 더 단절된다.

나의 딸, 나의 아들, 나의 엄마, 나의 아빠. 몇 안 되는 가족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강한 유대감의 실체는 바로 ‘나’다. 부모는 자녀들의 성적?외모를 자신의 프라이드로 삼는다. 그걸 고대로 학습하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부모의 직업과 재산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인 것 마냥 떠벌리고 다니거나, 혹은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숨기곤 한다. 가족은 그 자체로 ‘나’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었다. 모든 것이 ‘나’로 환원되는 그 세계에서 다른 가치, 다른 관계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런 ‘가족’으로 빨려 들어가기 위한 훈련을 연인과의 사이에서부터 착실히 훈련해나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르는 혼몽한 노래

연인과 나의 다른 관계를 모두 끊어내고 난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은 뭘까? 바로 ‘불안’이다. ‘얘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여자한테 한 눈 팔면 어떡하지…?’, ‘우린 왜 이렇게 제대로 못 만나고 있는 것 같지? 우리 사이를 더 좋게 하려면 더 찐하게 만나야 해. 좀 더 자주, 더 많이 봐야 해…….’

둘만 남은 연인에게는 다른 관계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자연히 이 관계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면서 상대의 반응 하나하나를 몹시 예민하게 읽게 된다. 나의 소유, 내 귀여운 장난감이자 나의 분신인 ‘네’가 지금 어떤 사람에게 관심 있어 하는지, 어떤 상황을 새롭게 느끼고 즐거워하는지 등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것이다. 그리고는 거기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상대가 나를 떠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불안에 떨기도 하고, 상대가 나를 원하는 것 같으면 또 너무나 기뻐하고…그렇게 연인의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상태, 이 얼마나 존재적으로 나약한 상태인가!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이라면서 같이 만나면 신나고 즐거워해도 모자랄 판에, 왜 연인끼리 만나서 그런 불안과 결핍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는 건지? 왜 한낱 그런 것들이 둘 사이를 잠식하도록 허용하는지???

보통 연인들이 불안한 이유는 뭔가가 부족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불안은 실제로 뭔가가 부족해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끊임없이 ‘갖고 싶어 하는 마음’, 바로 그런 ‘소유욕’이 불안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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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과 불안 사이의 이 기묘한 관계는 비단 연인들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요즘에는 존재적인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허다해졌다. 내 인생이 어딘가 잘못된 것 같고, 모자란 것 같고,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찾아야만 할 것 같은데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서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찾아 헤맨다. 어딘가 혹은 뭔가가 나를 채워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서.

그럴 때 극약처방이 되어줄 수 있는 건 바로 ‘쇼핑’과 ‘음식’이다. 새로 나온 아이폰을 사거나, 명품 브랜드 화장품을 겟하거나, 평상시 너무나 갖고 싶었던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당장은 머리 아픈 고민들이 싹 날아갈 것 같다. 달콤하고 사르르 녹는 디저트나,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집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잠깐. 이런 것들은 연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 아닌가?

‘데이트팝’이라는 앱에서 소개되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는, 주로 화려한 쇼핑센터나 힙!하고 핫~한 맛집들로 이루어져 있다. 연인들의 시간 역시 신상품을 손에 넣는 일, 혀를 자극시키고 배를 채우는 행위들로 둘러싸이고 있는 것이다. 존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나, 서로가 떠날까봐 불안한 연인들이나 똑같은 것들을 찾고, 그것들로 안도감을 얻는다.

내 것을 더 많이 만드는 것, 그를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 우리는 ‘소유’함으로써 만족감을 얻으려고 든다. 물론 만족은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들은 끝없이 생산되며, 그것들은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으니까. 소유욕의 화신 연두는 바로 이런 곳에서 교묘하게 재주를 부린다. “불안해하라. 어딘가 부족하다는 결핍감을 느껴라. (그러면 저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에 의해 우리는 밑도 끝도 없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정말이지 내용도 없을 뿐더러 엄청나게 추상적이다.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르는 혼몽한 노래, 우리는 거기에 잔뜩 취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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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그랬다. 그 애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우리 사이에 뭔가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수시로 올라왔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애에게 불만감을 토로해댔다. 그렇게 하는 게 우리 사이를 더 좋게 만드는 일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엔 도무지 근거가 없었다. 그 애에게서 주로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였다. 하하. 나의 불안과 결핍을 담은 숱한 불만들은 내가 그 애를 ‘소유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 벌이는 연막작전이었다. ‘넌 내꺼야! 가긴 어딜 가~ 아무데도 못가.’ 사실은 이런 말들을 끝없이 주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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