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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연암을 만나다 | 50대 공무원, 연암에게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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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20 11:42 조회1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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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주변에 어쩌다보니 공무원 친구들이 많아졌다. 작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공무원 준비생들, 일명 ‘공시생’들이 많았다. 짧게는 1년, 길게는 8년을 준비해서, 그래도 결국 공무원이 되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다!

그 중 8년의 준비 끝에 공무원이 된 친구는 주차딱지를 행정처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헌데 공무원이 된 후 그 친구의 상태는 준비할 때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발령 받은 지 한 달 만에 공황장애가 왔고, 우리와 만나던 날에도 위염과 장염이 동시에 와서 먹는 걸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왜 몸이 그 지경이 되었냐고 물으니, 민원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한다. 잠깐 차를 대놓은 거다, 한번만 봐 달라, 그런 적 없다 등등 민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원칙에 맞추어 친절히 민원에 응대할 뿐이라고.

이 날 친구를 만나고 너무 안타깝고, 씁쓸했다. 이 친구에게 공무원은 꿈에 대한 환상과 그 좌절을 한 번 맛보고, 철저히 현실적으로 택한 직업이었다. (현실적이란 말이 참 이상하긴하다.) 어쨌든 지금 친구의 현실은, 너덜너덜한 몸과 지친 마음이다. 꼴불견인 민원인을 상대하는 방법이 ‘원칙’과 ‘친절’밖에 없다니.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연암어른, 어찌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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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신해년 겨울, 연암은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해 정월 임지에 부임했다. 새로 부임한 현감에게 민원(?)을 넣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지방의 하급관리인 아전들이다. 지금도 지방에 가면 지역 유지들이 힘을 갖고 있듯이,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전들은 연암을 시험 삼아 소송장을 내기도 하고, 익명으로 투서하여 서로의 비리를 들춰내려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사사로이 빼돌리는 곡식들이 엄청났는데, 이에 대처하는 연암의 방법들이 아주 지혜롭다. 연암은 아전들을 몰아넣으면 더 반발할 것을 예상해 비리를 천천히 조사하겠다며 대대적인 조사가 있기 전까지 자수하라고 기회를 준다. 결국 아전들은 스스로 곡식들을 내어놓는다! 오~

1793년에는 큰 흉년이 들어 안의현에 피해가 막심했다고 한다. 보통 큰 흉년이 들면 국가에 공진(公賑)을 요청해도 되는데, 연암은 이 땅에서 나는 곡식으로 공진(公賑)·사진(私賑) 따질 것이 무엇이 있냐며 사진(私賑)으로 백성을 구휼했다고 한다. 오~

단성 현감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예(禮)로써 기민구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의란 일이 생기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요, 법률이란 일이 생긴 뒤에 금지하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법률로 이기기보다 차라리 예의로 굴복시키는 것이 낫다 하겠으니, 왜 그렇겠습니까? 법률로 강요하자면 형벌과 위엄이 뒤를 따르게 되고, 예의를 사용하게 되면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앞을 서게 됩니다.

(박지원 지음, 신호열·김명호 옮김,「진정에 대해 단성 현감 이후에게 답함」, 『연암집 (상)』, 돌베개, 187쪽)

하여 예(禮)로 다스리면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일으키게 되어 저절로 어린아이를 먼저 챙기고, 자기가 먼저 죽을 받겠다고 내세우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방법은 미봉책일 수 없다고 말이다. 아전도 백성들도 그에게 굴복했다. 예(禮)로써!

정말 멋있는 말이었지만,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할까? 꼴불견인 민원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이게 힌트가 될 수 있을까?’

진정(賑政; 흉년을 만나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정사)을 하는 연암의 태도를 보고, 확신이 들었다.

아버지는 동헌에 나와 앉아 먼저 죽 한 그릇을 드셨는데, 그 그릇은 진휼에서 쓰는 것과 똑같았으며 소반이나 상 같은 건 차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을 남김없이 다 드시고 나서,

“이것이 주인의 예(禮)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개, 92~93쪽)

연암은 예(禮)로써 아전들과 백성들을 굴복시켰듯, 자신도 예(禮)를 다해 그들을 대했다. 그는 배고픈 백성들의 마음을 고려하여 구휼미를 제공하지만, 한 번도 지나치게 위로하거나 과하게 나눠주기만 하진 않았다. 남녀, 어른과 아이의 자리를 달리하여 각자의 위치와 순서를 정확히 알려주었고, 예의와 염치를 길렀다. 그러면서도 백성들과 같은 그릇에 같은 죽을 먹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연암은 마음을 정성스럽게 쓰는 것이 지속가능하고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는 아전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지도 않았고, 백성들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하진 않았다. 아전들의 교활한 마음, 백성들의 굶주린 심정을 읽어내며, 그에 맞는 처방전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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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연암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이상적인 옛날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칙’에 맞추어 ‘친절’히만 대한다고 능사가 아니라고. 지금 너의 몸과 마음이 그 길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고. 그렇다면?

연암의 말처럼 법률(원칙)은 후차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친절은 마음을 정성스럽게 쓰는 방법이 아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써서 주인의 예(禮)를 갖춰본다면, 꼴불견인 민원인들도 염치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 길이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한 가장 지혜로운 길임을 보여주었으니 한 번 도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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