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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천개의 고원 | ‘술[酒]’이 만들어낸 ‘리트로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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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14 13:47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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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감이당)

천관웅 : 내가 회사생활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게 뭔 줄 알아?

장그래 : 글쎄요….

천관웅 : 술을 배운 거. 외로운 거 이놈한테 풀고, 힘든 거 이거 마시며 넘어가고, 싫은 놈한테 굽실거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술 때문이지. 근데 가장 후회하는 것도 술을 배운 거지. 일상이라는 걸 즐겨본 적이 없는 거 같아. 심심한 걸 즐겨본 적도, 한가한 걸 누려본 적도.

장그래 : 천천히 드십시오.

천관웅 : 술. 즐겁게 마셔. 독이 된다고. 수승화강(水升火降)! 차가움은 올리고, 뜨거움은 내려라.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술은 열을 올리거든.

? 드라마 ‘미생’ 中 ?

어둠을 밝히는 노래, ‘술[酒]’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에게 처음 술을 배웠다. 그 후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 자주 술을 마셨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수험생의 고난을 겪을 동안, 나는 술맛의 짜릿함을 누리고 다녔다. 그리고 그 짜릿함은 회사를 다니면서 달콤해지기 시작했다.

Ⅰ. 어둠 속에 한 아이가 있다. 무섭기는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 노래는 카오스 속에서 날아올라 다시 카오스 한가운데서 질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Ⅱ. 이것을 얻으려면 먼저 부서지기 쉬운 불확실한 중심을 둘러싸고 원을 그린 다음 경계가 분명하게 한정된(limite)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Ⅲ. 자신을 <세계>에 던져 이 세계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속삭이는 노랫소리에 몸을 맡기고 자기 집 밖으로 나서보는 것이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2003, 새물결, p589~591)

리트로넬로란 음계(音階)의 ‘반복구’ 또는 ‘후렴구’라는 뜻이다. 그런데 단순히 하나의 음계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동반하며 ‘변주’된다. ‘차이’나는 ‘반복’, 이것이 ‘리트로넬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트로넬로’의 세 가지 조건을 이야기한다. 그 첫 번째는 어둠 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스물한 살, 학교를 벗어나 첫 직장생활의 압박감은 어둠 속에 서 있는 아이처럼 무섭고 불안했다. 매일 계속되는 야근과 주야(晝夜) 교대 근무로 인해 몸은 점점 지쳐갔고, 특히 군(軍) 대체 복무(방위산업체)였기 때문에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만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바로 군대에 입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없는 아부도 할 줄 알아야 했고, 상사의 히스테리도 견뎌야만 했다.

리트로넬로의 두 번째,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둠이 주는 공포를 몰아낸다. 나에게 술은 회사 생활의 압박감과 불안을 날려버리는 아이의 노래와 같았다. ‘아~ 술이 달콤한 것은 삶이 쓰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퇴근 후,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 마시는 술맛은 너무나 달콤했다. 술은 참 묘~하다. 쌓였던 감정을 녹여 주고, 피로에 지친 몸에 활력소가 되어주니 말이다. 거기다 달콤한 잠까지! 기분이 좋을 때는 더 좋게! 기분이 나쁠 때는 아낌없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걷다 서기를 반복하며 자신만의 영토를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처럼 매일 술을 마시는 습관은 내 삶에 견고한 영토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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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이는 어둠과 혼연일체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내 몸과 마음이 회사에 적응해 갈수록 회사 안에서 술로 인해 다양한 커뮤니티(음주가무)와 해프닝을 경험했다. 이제는 회사 때문에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을 마시기 위해 회사에 다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동료들과 술자리를 즐겼다. 어둠과 혼합된 아이에게 노래가 용기를 부여하듯이, 술을 마실 때 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얄미운 상사에게 말 한 마디 할 수 있는 용기도 낼 수 있었다. 나에게 술은 캄캄한 직장 생활을 밝히는 노래였고, 힘들고 반복되는 일상에 차이를 주는 ‘리트로넬로’였다.

또 다시 ‘카오스’ 속으로

“리트로넬로는 반드시 대지의 일부분을 동반한다.” (「리트로넬로」, p592) 대지란, 바로 ‘욕망’이다. 욕망은 리트로넬로의 매개물이다. 술을 이루고 있는 성분은 분명 그대로일 텐데, 내 욕망에 따라 그 맛이 달라졌다.(어떨 때는 쓰고, 어떨 때는 달다) 특히, 나는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할 때, 내 욕망이 확! 솟구쳐 오른다. 왜냐하면 회사 동료나 친구들보다 아버지와의 감정 공유가 더 잘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나는 “만약 술자리의 ‘환경’을 바꾼다면 술맛과 대화의 ‘리듬’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카오스로부터 <환경>과 <리듬>이 태어난다.”(「리트로넬로」, p595) ‘환경’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박자’의 형태라면, ‘리듬’은 차이를 동반하는 ‘반복’의 형태다. 그동안 명절날 지내는 제사는 주기적인 박자의 형태였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사의 형식이 마치 축제의 형식처럼 바뀌었다. 아버지와 마당에서 고기도 굽고, 함께 음식도 만들어가며 정치, 연애, 친구관계 등. 평소 모자랐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럴수록 부자간의 감정이 더욱 진~하게 공유되었다. 그런데 이 욕망이 또 다른 카오스를 연출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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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돌아온 지난 추석 명절, 나는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벽돌을 주어 마당에 쌓았다. 거기에 장작을 피우고, 돌판을 올려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풀었다. ‘리듬’은 환경과 다른 환경의 상호이동으로 탄생한다. 명절의 딱딱한 환경은 낭만적인 캠핑의 리듬으로 재탄생 되었다. 내 욕망은 흥분과 즐거움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야만 했다.

절제력을 잃어버린 나는 제사에 쓸 술까지 모두 마셔버렸다. 거기다 시골에 올 때 가지고 온 엄청난 양의 고기를 모두 먹어 치웠다. 술에 취해 정신이 나간 상태였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술을 들이부었다. 그리고는 결국 동생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옮겨졌다. 다음 날 아침,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고 잠에서 깨어났다. 입에서는 전날 마신 술 냄새가 뿜어져 나왔고, 마당과 거실에는 술병이 정리되지 않은 채 널려 있었다.

  영토란 우선 같은 종류에 속하는 두 개체간의 임계적(critique : 臨界的) 거리를 말하며, 이 거리를 표시하는 것이다. 내 것이란 우선 내가 가진 거리를 말한다. 나에게는 거리밖에 없는 것이다. (…) 이처럼 임계적 거리는 표현의 질료에서 유래하는 하나의 관계이다. 따라서 가까이 다가오는 카오스의 힘을 멀리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 한다.

(「리트로넬로」, p607)

임계적(臨界的) 거리란 영토와 영토 ‘사이’의 ‘경계선’을 말한다. 나는 그 경계선의 거리를 잘 쟀어야만 했다. 나와 술 사이의 거리, 명절과 제사에 대한 경건함의 거리를 재지 못한 채 치닫는 식욕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경계선을 넘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에 비친 것은 전날 먹고 마신 어지러운 흔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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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제사를 치른 후, 그 결과는 가족회의에서 드러났다. 앞으로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장손으로서 아무런 개입도 하지 못한 채 결정된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거리’는 모든 관계들의 표현이다. 집안 안에서 장손으로써, 누군가의 형으로써, 아들로써, 조카로써,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표현들의 거리가 어긋나 버렸다.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카오스를 피하지 못하고 또 다시 카오스 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더 이상 술로 카오스를 밝힐 수도 없었다.

반성(反省)의 ‘리트로넬로’

저자들에게 욕망(대지)이란 멈추지 않는 실천의 집합체다. 이대로 카오스 속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카오스를 밝힐 노래를 찾고 싶었고,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싶었다. 비록 이 참담한 사건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이 일을 발판으로 내 삶에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면 이 사건이 긍정적으로 재구성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는 결코 고독하지 않다. 흩어졌다가 다시 집결하고, 요구하고 나섰다가 분한 눈물을 삼키며, 공격에 나섰다가 다시 반격당하는 유목민들로 가득 차 있다.” (「리트로넬로」, p647)

나는 내가 남긴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창고에 쌓인 술병이며, 페트병,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정리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술과 고기를 먹었던가. 뿐만 아니라 귀한 제사 음식을 제쳐 놓고 매번 라면으로만 식사를 했다. 수북이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나의 추악한 식욕이 생태계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니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했다.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후련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흔적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카오스를 날려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휘감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선 내게 또 다른 노래가 필요했다. 이 사건을 통해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그동안 철학을 한답시고 책을 읽고 뱉은 말과 글이 거짓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쓰기’외에는 다른 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반성문’을 써 내려갔다. 반성문을 통해 술과 육식의 탐닉이 만들어낸 카오스 안에서 조금이나마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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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이겨낸 원심력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진정 대지로부터 춤춰 오르는 것이다.”(리트로넬로, p640)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으로부터 춤춰 오르기 위해서는 급격한 힘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지난 추석 때 느꼈던 긴장감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중력과 같은 무게감이었다. 그 무게감을 이겨내기 위해 쓰레기를 버리고 반성문을 쓰면서 온몸으로 카오스를 밀어냈다. 그 때의 몸부림이 내 삶 속에서 원심력이 되어 앞으로는 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리트로넬로는 프리즘이며, 시-공간의 결정체이다. 리트로넬로는 음과 빛 등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에 작용해 그로부터 다채로운 파동, 분광, 투영 그리고 변형을 끌어내려 한다.

(「리트로넬로」, p662)

리트로넬로는 ‘차이’와 ‘반복’을 통한 시-공간의 재구성(변형)이다. 저자들에게 삶은 프리즘이기 때문에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시-공간이 형성된다. 리트로넬로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건을 통해 재구성된 ‘시-공간’을 어떻게 ‘긍정’할 수 있느냐이다.

지금도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신다. 다만, 술을 마시기 전에 꼭 반성문을 한 번 읽고 마신다. 수승화강(水升火降)!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반성문을 읽으면 머리는 차가워지고, 가슴은 뜨거워진다. 그때 그 사건은 ‘차이’나는 ‘반복’, 반성(反省)의 ‘리트로넬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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